어렸을 때의 기억에 가장 좋은 건물은 교회였다. 판잣집이거나 그것을 겨우 벗어난 형태의 집들이 달팽이처럼 다닥다닥 붙어 이루어진 동네에서 고딕 형태의 건축양식에 화강암으로 마감된 교회는 웅장하고 신성했다. 넓은 부지에 3층 높이로 솟아오른 교회와 도시빈민들의 거주지는 명확하게 구획되었다. 마치 중세기 농노(農奴) 마을의 중앙에 건설된 영주의 성과 흡사했다. 교회 건물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첨탑(尖塔) 꼭대기의 피뢰침이었다. 십자가 위에 설치되어 교회에서도 가장 높은 곳을 점유한 피뢰침은 하늘을 향해 뻗은 손가락처럼 보였다. 그것의 용도를 몰랐을 때는 애타게 기도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인줄로만 알았었다.
일요일이 되면 교회는 우리와 전혀 다르게 차린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내가 좋아했던 여자아이도 그 교회를 다녔다. 고무줄놀이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눈깔사탕을 오물거렸던 여자아이는 교회에 갈 때면 구미호가 둔갑한 것처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내가 그 여자아이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그리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 교회 가는 모습을 보고 반했던 것 같다. 요즘도 가끔씩 근엄한 정장 차림에 성경을 옆에 낀 부모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들어가는 여자아이의 꿈을 꿀 정도니까.
나도 교회에 다니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한 번 이상 절에 다니는 집안의 분위기로 보아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만일 내가 교회에서 목격되었다가는 다리가 부러지고도 남을 것이 분명했다. 교회 밖에 쭈그리고 앉아 그 여자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릴 때 들리는 찬송가가 왜 그렇게 가슴을 저미었는지 모르겠다. 애타는 기다림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나의 기다림은 그저 기다림으로 끝났다. 애꿎은 돌멩이를 톡톡 차며 돌아오다가 교회를 바라보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향해 꼿꼿이 발기한 피뢰침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피뢰침의 용도를 알게 된 다음부터 화두(話頭)가 따라왔다. 다른 곳은 몰라도 교회에는 피뢰침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하늘에 계신다는 절대자께서 자신을 숭배하기 위해 지어진 교회에 벼락을 때릴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교회에 피뢰침을 설치하는 것은 산꼭대기에 방파제를 축조하는 것만큼이나 어이없어 보였다.
그 의문은 공업고등학교의 건축과에 진학하면서 확실하게 풀렸다. 연건평과 높이가 일정규모 이상이 되거나 여러 사람이 모이는 건축물에는 반드시 피뢰침을 설치해야 했는데, 어렸을 때 교회의 피뢰침은 규정에 의해 설치 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의문은 풀렸지만 의혹은 남았다. 그러나 미션스쿨의 문제 해결 방식은 단호하고 신속했다. 교회에 피뢰침을 설치하지 않아도 낙뢰(落雷)에서 안전하지 않겠느냐는 어이없는 질문은 빳다로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왜 교회에 피뢰침을 달아야만 하느냐는 의혹은 아직까지도 견고하게 똬리를 틀고 있다. 천문학적 액수의 헌금을 아낌없이 바치면서도 비정규직을 가혹하게 쥐어짜는 이랜드나 가지 말라는 곳에 신도들을 보냈다가 살려달라고 절규하게 만드는 목회자를 볼 때마다 의혹이 확대재생산 된다. 비단 그것뿐이겠는가, 정작 피뢰침이 설치되어야 할 장소는 아무래도 그들의 머리 꼭대기 일 것 같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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