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마당 바위에서 놀고 있는 알로원의 아이들.
(상) 세상밖 세상 알라원 우리들의 낙원은 도대체 어디쯤 있는 것일까. 천혜의 자연조건을 지녔음에도 아시아의 대표적인 분쟁지역이 되어버린 필리핀 남단의 민다나오섬. 국내의 자선구호단체 제이티에스(JTS)가 갈등과 개발의 와중에서 낙원을 되찾으려 애쓰는 원주민과 분쟁지역민들 속으로 들어가 자비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제이티에스 실무자들과 함께 민다나오의 산간지대 100㎞를 행군하며 오지 마을 등을 찾았다. 국내 자선단체 ‘JTS’ 원주민 도와 학교 건립
오랜 꿈 실현되나 했지만 교사 없어 ‘발동동’ 지난달 27일 섬 중부 산골도시 말라이발라이에서 새벽 4시 차를 타고 끝도 없는 파인애플밭을 지나 실리폰마을 산등성이에서 내려 간단히 요기를 한 뒤 아침8시부터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민다나오 원주민들을 돕고 있는 자선구호단체 제이티에스(JTS) 이사장 법륜 스님을 비롯한 제이티에스 활동가 등 30여명과 함께였다. 민다나오 두메 카라수얀에 지은 학교, 송코에 지은 평화홀 준공식에 참여하기 위해 온 이들은 먼저 2년 전 학교를 지은 알라원을 찾아나섰다. 숲에서 떨어지는 거머리에 물려 피를 흘리면서도,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그런 덤불 속 길 없는 길을 따라 18㎞. 낭떠러지 옆을 지나 계곡을 건너니 마침내 정글 밖으로 툭 터진 새 세상이 펼쳐졌다. 해발 2005미터에 있는 세상 밖 세상 알라원이다. 비가 내릴 때마다 쏟아지는 100여미터의 수직폭포 아래 흰구름 감도는 언덕마다 새둥지 같은 나무집 20~30채가 앉아 있었다. 그 한가운데 평지 마당 한편 바위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원주민 아이들은 먼 나라에서 온 한 무리의 이방인들을 신기한 듯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바라보고, 그 뒤 잔디밭에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 옆에선 원주민 청년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었다. 원주민들은 네 시간 넘게 정글을 헤치고 온 이방인들을 위해 장작불 위에서 삶은 카모테(고구마) 한 솥과, 야생커피를 끓여 내놓는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대접이다. 이들에겐 더 내놓으려야 내놓을 것이 없다. 이들은 세 끼를 거의 카모테로 해결한다. 이들도 쌀밥을 먹고 싶지만, 카모테 한 부대를 지고 먼 길을 내려가 봐야 한 가족이 한 끼 먹을 쌀도 구하기 어렵기에 그저 이 산골에서 나는 카모테와 야생 커피로 끼니를 때울 뿐이다.
알로원부족학교를 세우기 위해 힘을 모은 알로원 이장 리투와 필리핀제이티에스 이원주 회장, 최정연 간사, 법륜 스님, 가와한 추장, 송현자 간사, 최기진 간사(왼쪽부터).
‘JTS’만의 특별한 구호정신은 ‘구원’보다 ‘자립’ 키우는 게 최우선 29개 마을에 교실 64칸 지어 제이티에스(JTS·Join Together Society)는 지금까지 민다나오섬 29개 마을에 64칸의 교실을 지었다. 29개 마을은 하나같이 필리핀 정부의 행정력이 조금도 미치지 못하는 오지로 학교가 없거나 분쟁지역이어서 어느 종교단체나 엔지오도 들어가기를 꺼리는 무슬림 구역이다. 제이티에스가 처음 민다나오에 발을 디딘 것은 2002년. 이사장인 법륜 스님이 막사이사이상을 받을 때 가톨릭국가인 필리핀의 가톨릭 지도자들이 ‘살상의 땅’ 민다나오의 평화를 위해 일해 달라고 법륜 스님에게 구원을 요청하면서부터였다. 그 뒤 민다나오의 정신적 지도자인 토니 주교의 제자인 엔지오 대표 도동-세비어대 트레시 교수 부부가 제이티에스 프로젝트에 앞장섰다. 또 마닐라에서 사업을 하는 이원주, 노재국, 이종섭, 이규초씨 등이 한국에서 파견된 최기진, 최정연, 송현자씨 실무자들과 함께 오지 산간지대와 분쟁지역을 누비면서 시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지원해가자 토니 주교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원주민들을 ‘구원’하지 않았다.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협조’해 줄 뿐이었다. 지금까지 수백년 동안 민다나오에 온 스페인과 미국, 일본 등의 제국들은 민다나오의 기름진 땅과 무한한 자원에 탐을 내며 당근을 내밀었고, 종교인들은 자신의 종교를 심는 데만 주력해 민다나오를 종교 분쟁의 땅으로 만들었다. 대부분이 민다나오를 그들의 낙원으로 만들려고 했지 원주민들의 낙원이 되도록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이티에스(jts.or.kr)는 정토회라는 불교단체를 모태로 한 엔지오이지만, ‘종교’ 얘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다. 포교를 목표로 하지도 않는다. 원주민들이 기독교를 믿건 이슬람을 믿건 그들의 기도 방식대로 함께 기도할 뿐이다. 제이티에스는 돕는 방식도 독특하다. 학교를 지어주는 게 아니라 재료만 공급하고,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땅에다 자신들의 힘으로 재료를 날라다가 스스로 짓도록 한다. 그런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이 협력해 마을의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힘이 생기고, 학교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것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법륜 스님은 “자칫 잘못하면 돕는 기관과 사람은 만족할 수 있지만, 상대를 영원히 거지와 노예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제이티에스가 송코라는 원주민 마을에 33개를 민다나오의 원주민들이 모임 갖고 대화하면서 갈등을 풀고, 자신들의 전통과 가치를 이어갈 수 있도록 ‘평화홀’을 짓도록 지원해준 것도, 외세와 여러 종교들에 의해 찢어지고 상처 입은 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낙원을 되찾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조현 기자
민다나오는 천혜의 자연 속 분쟁 속앓이
민다나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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