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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블로그] 지배계급의 통치수단으로 전락한 종교의 비극 / 마광수

등록 2008-11-07 16:17

종교는 그것이 발생된 지역의 전래신앙이나 그 지역의 풍토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련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육식을 위주로 하는 유목민족의 종교인 기독교(또는 유태교)와, 채식을 위주로 하는 농경민족의 종교인 불교(또는 힌두교)는 그 표상의 양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종교를 논할 때 그 나라의 생활양식과 문화풍토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함석헌은 ‘들사람 얼’이라는 글에서, “모든 신화는 요컨대 하나다. 하느님과 인간과 만물이 서로 통했다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참으로 적절한 지적이라 하겠다. 신화와 종교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맺어져 있는 만큼, 모든 종교의 교리도 결국은 하나인 것이 아닐까? 즉, 인간이 곧 하느님이며 모든 만물은 존귀하다는 진리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사랑’이나 부처님의 ‘자비’나, 표현은 비록 다를지언정 행동목표는 같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유교의 ‘인(仁)’도 마찬가지다.

예수의 비유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탕자의 비유’가 있는데, 이 비유는 불교의 ‘법화경’에 나와 있는 ‘궁자(窮子)의 비유’와 유사하다. ‘탕자의 비유’는 아버지를 거역하고 방탕에 빠져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던 아들이 지쳐서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가 아들을 꾸짖지 않고 기쁘게 맞아들인다는 얘기다. 그리고 ‘궁자의 비유’는 아버지가 왕인지도 모르고 거지처럼 거리를 헤매 다니던 아들이 결국 아버지에게 발견되어 영광된 왕자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는 얘기다. 여기서 ‘아버지’의 상징이 여호와 하느님이든 불법(佛法)이든 간에, 인간이 자신의 존귀한 가치를 모르고 미망 속을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 점은 결국 같다고 하겠다.

예수가 말한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은 따지고 보면 불교의 ‘공증시색(空卽是色)’ 즉, 마음을 비우면 색(재물 등의 현세적 복락)이 생긴다는 말과 통하는 말이요, “부자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은 자선과 보시(布施)를 강조한 말로서 불교와 속뜻이 통한다.


불교든 기독교든 이렇듯 겉으로 보기엔 마냥 긍정적이고 희망찬 내용의 교리로 충만 되어 있다. 인간이 곧 하느님이요 부처님이란 얘기는, 인간이 운명의 지배를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얼마든지 운명을 창조해나갈 수 있는 존재라는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아직껏 전쟁과 기아와 질병과 인권 유린 등 온갖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으며, 중생들은 운명(또는 섭리)의 힘 앞에 오직 두려워 떨며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해나가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석가나 예수가 말한 것이 진리라고 가정할 때, 여태껏 지배엘리트들이 그들의 진리를 곡해하거나 악용해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내가 ‘악용’이라는 말을 쓴 까닭은, 불교든 기독교든 결국에 가서는 그것이 갖고 있는 원시적 순수성을 상실해 버리고, 기득권을 가진 지배계급의 통치수단으로 전락해버리고 마는 역사가 지금껏 되풀이되어왔기 때문이다.

예수가 말한 ‘하늘나라’나 석가가 말한 ‘극락정토’는 둘 다 인간의 노력에 의해 지상에서 이룩되는 이상적인 복지사회를 상징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적인 복지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혁명이 필요한 법이고, 혁명은 기성 지배질서의 붕괴를 뜻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든 기독교든 기득권화된 종교체제의 틀 속으로 편입된 이후에는 혁명을 두려워하는 기득권 세력에 유리하도록 교리가 조작되고, 민생은 오히려 더욱 비참한 지경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의 경우에는 서양의 중세시대나 18세기 앙샹 레짐(구제도)하의 프랑스 등이 좋은 보기이고, 불교의 경우엔 다른 나라를 차치하고 우리나라 삼국시대나 고려시대가 좋은 보기이다.

역사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예컨대 통일신라 말기에 구제도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궁예(弓裔)는 현세에 미륵정토를 건설하기위해 신분차별을 없애고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세우려고 상당히 노력했던 사람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그렇지만 그는 결국 당시 기득권 세력이었던 토호(土豪)들의 수장(首長)이 된 왕건(王建)에 의해 쫓겨날 수밖에 없었고, 결국에 가서는 ‘해괴한 짓거리만 하다가 스스로 망해버린 과대망상광’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왕건을 중심으로 한 토호들이 궁예를 떠받들었던 것은, 토지 소유를 더 증대해나가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의도에서였지 민중을 위해 땅을 나눠주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그런데 궁예가 민중 쪽에 섰기 때문에 그들은 궁예를 몰아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려 말의 승려인 신돈(辛旽) 역시 그래서, 그의 개혁정책은 기득권 세력에 의해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그 또한 궁예처럼 ‘여색(女色)에 미쳐 날뛴 파계승’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말았다. 역사는 언제나 승리자의 입장에서 기술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불교는 실천적 이념으로서가 아니라 권력에 기생하는 어용적(御用的) 호국불교나 사변적 형이상학으로 변질돼버렸고, 속세를 도피하여 은둔하는 자들의 정신적 피난처 구실밖에 못하게 되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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