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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김종철 교수 “지율 스님 단식 때 빨리 쓰러지길 바랐다”

등록 2008-11-25 19:17

‘녹색평론’ 김종철 교수 즉문즉설
50~60일 단식 따라할 수 없어…편한 생명운동 방법 좋아
자식 대안학교 보내고 대학 안보내는 사람들 제일 존경
시골 마을 상실이 모든 문제 원인…동아시아 진보는 소농

지난 20일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수도회 강당에서 생명평화결사가 탁발순례를 마치면서 마련한 ‘생명평화의 길을 묻다’란 주제의 네번째 즉문즉설이 펼쳐졌다. 김종철(61) <녹색평론> 발행인은 청중 100여명의 질문에 진솔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김 발행인은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영남대 교수를 지내던 중 1991년 <녹색평론>을 창간해 생태환경 문제를 대중적으로 일깨우는 데 주도적인 구실을 해온 선구자다.

-우리나라에선 종교인들이 생명운동을 주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김 선생은 종교인이 아닌가?

“일요일에도 늦게까지 잠자고 충동적으로 불경이나 성경을 보고, 몹시 괴로울 때만 하느님이 입에서 나오는 나 같은 사람이 종교인이겠는가. 영국 작가 로런스는 소설 <무지개>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다가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라고 느낀다. 그는 교회에 욕을 하기도 했지만 굉장히 종교적이었다. 이런 의미에선 나도 종교적 감수성이 예민한 편이다.”

-자본주의 문명을 극복하는 데 종교가 한몫을 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한다. 종교라는 게 우주 속에서 자기라는 존재를 의식하자는 깨침 아닌가. 이런 깨침 없이 우리가 부닥친 생명의 위기, 이 사태를 제대로 읽을 수 있으며,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기성 교단은 종교라는 이름의 영리사업을 하는 단체 같으니 오히려 우리가 극복을 해 나가야 될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서 각자가 겸손, 자기 한계를 인식하는 종교적인 시선은 반드시 필요하다.”

-김 선생과 도법 스님이 추구하신 바가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함께 운동할 생각은 없는가?


“지금 여기 같이하고 있지 않으냐. 뭘 원하는가. 스님, 목사, 신부들이 직접 거리에 나와 생명운동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없지 싶다. 그분들의 방식으로 운동을 하니 세속인들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지율 스님이 한참 단식할 때 만날 잔소리했다. 빨리 쓰러지라고. 단식이 그렇게 50일, 60일 넘어가면 앞으로는 한국에선 단식할 사람이 없다고 그랬다. 농담이지만 순농담만이 아니었다. 도법 스님의 걷는 방법이 누구나 할 수 있는 편한 방법이어서 좋다.”

-종교인들과 힘을 합쳐 좀더 생태운동의 성과를 낼 수 있지 않겠는가?

“성과를 처음부터 생각하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녹색평론> 안 하면 미칠 것 같아서 하는 것일 뿐이다. 사회에 뜻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이걸 안 하면 이 신경질을 풀 길이 없다. 도법 스님도 걷는 게 좋아서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다. ‘생태운동 해서 2015년에 이 나라 접수하자.’ 이런 것은 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우리는 국가 권력을 뺏으려고 하는 게 아니고 우리 자신의 권력을 빼려고 하는 것이다. 일관되게 성실하게 나가는 것 그 자체가 성공이다. 뜻대로 되느냐 안 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일생 동안 잡념 없이 길을 갔다는 게 정신적인 자산이 될 것이다.”

-어떻게 해서 <녹색평론>을 시작하게 됐나?

“40대에 들어서며 몸이 안 좋아졌다. 그래서 예민해지니 주위의 살아 있는 것, 목숨도 예민하게 다가왔다. 단식을 두어번 했는데 단식 때 들길에서 풀을 밟고 싶지 않았다. 이것도 내 생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건강을 잃었는지 생각해보니, 바깥이든 안이든 결국 환경과 조화를 잃어버린 때문이었다. 구체적인 계기는 91년 봄에 농민들이 보리타작을 해봐야 돈이 안 된다면서 보리밭을 불태우는 사건을 보고서였다. 보릿고개를 경험해본 분들에게 보리밭을 태운다는 것은 절망적이고 세상이 끝장났다는 충격이었다.”

-생태적으로 살면서도 행복한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생태적 삶을 따를 것 같은데, 그런 사람들이 어디 있는가?

“시골에 가면 사람들 속에서 사심 없이 무사하게 돕고 어울려 재미있게 사는 이들이 많지 않은가. 우리 부모세대들은 자신도 먹을 것이 부족해도 당장 굶어죽는 사람은 도와야 한다고 했고. 마을 사람들이 앞다투어 도왔다. 그것이 마을의 힘이다. 모든 문제가 마을을 잃어버린 데서 왔다.”

-아이를 대안학교 보내고 있는 게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분들은 자식들 대안학교 보내는 분들과 자기 자식 대학 안 보내는 사람들이다. <녹색평론>은 내년부터 아이들 대학 보내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일 것이다. 농민들이 자식 도시학교 보내고, 대학 보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노예가 된다. 아이들 교육 생각하면 겸업 해서 뼈가 빠지게 작물을 심어야 한다. 그래서 1년 내내 고달프기 짝이 없다. 농민들이 자식을 대학 안 보내고, 도시 학교 안 보낸다는 각오로 살면 농촌 삶이 좀더 편해질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진보는 소농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녹색평론>에 이슬람의 가난의 영성을 소개했는데, 이슬람 패권주의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그들의 신비주의 전통에서 가난에 대한 영성은 대단하다. 이란 전 교육부 장관 마지드 라네마는 공생공락의 가난을 주창했다. 가난하지 않은데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필요하겠는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재산은 타자다. 가난하기 때문에 서로 만난다. 그래서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폭력을 제3자가 겪어보지도 않고 쉽게 얘기할 수 없다. 근대 일본의 양심적 지성 중 쓰루미 슌스케는 전후 2차대전 말기 전향자들을 인터뷰해 정리했다. 그 뒤 그는 전향자들의 심리를 이해한다고 했다. 그는 절체절명에 직면해 보지 않고 전향을 무조건 욕하는 사람들을 도리어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세상에 제일 믿을 수 없는 게 미전향의 사상이다. 타자들의 극한적 상황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는 것은 굉장히 불합리하다. 그래서 자살폭탄에 대해서도 절대 규정지을 자신이 없다.”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살 생각은 없는가?

“1주일에 한번씩 만나서 밥을 먹고, 생각을 나누고 이자 없는 금융운동을 통해 서로 도우며 산다. 몸은 상주하며 한곳에 살지 못하지만, 정신적인 공동체 운동을 하고 있다. 지금 당장 시골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라도, 도시에서 가능한 공동체적 삶을 조금이라도 해 가는 게 중요하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전문은 ‘조현기자의 휴심정’(we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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