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명 변호사(오른쪽)가 1988년 6월4일 17년 만에 풀려난 서준식씨와 함께 서울 명동성당을 방문해 김수환 추기경과 이야기하고 있다. 김 추기경은 “우리가 아무것도 못해 부끄럽다”는 위로의 말을 전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김수환 추기경과 나’
‘동갑내기’ 민청학련 때 인연…인권운동 전폭 후원
“죽는건 피할수 없지만…남은 사람들이 잘해야지”
‘동갑내기’ 민청학련 때 인연…인권운동 전폭 후원
“죽는건 피할수 없지만…남은 사람들이 잘해야지”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 것이니 피할 도리가 없지만…세상이 좋은 분을 또 잃었어. 남은 사람들이 잘해야제.”
‘인권 운동의 대부’ 이돈명(87·사진) 변호사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에 애써 담담한 소회를 밝혔다. 두 사람은 가톨릭 신부와 신자로서만이 아니라 민주화의 길을 함께 개척해온 동지로서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다.
“우리가 1922년생 동갑이여. 그 양반이 나보다 생일이 석달쯤 먼저야. 말년에 귀도 어둡고 걷지를 잘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노환증세도 나랑 비슷하다 생각했지. 문병을 한 번도 못 간 게 제일 안타까워.”
두 사람의 인연은 1974년 12월 이 변호사가 가톨릭에 귀의(세례명 토마스 모어)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해 여름 ‘민청학련’ 사건으로 지학순 주교가 구속된 사태를 맞아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는 신부들을 보러 갔는데, 초저녁 어스름에 흰 사제복에 촛불을 들고 성모동상 앞에서 시위하는 신부들 모습이 천상에서 내려온 듯 거룩했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야.”
그날의 촛불행렬은 그해 9월 정의구현사제단의 발족으로 이어졌다. 이 변호사는 김 추기경과 첫 대면 순간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교류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가톨릭 신자로 그와 인권변론 활동을 함께 한 유현석 변호사의 권유도 큰 영향을 줬다. 79년 당시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 위원장이던 유 변호사의 추천으로 ‘위원’이 된 이 변호사는 82~87년 인권위원장을 맡아 맹활약했다.
“명동성당 추기경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던 시절이었지. 우리를 전폭적으로 믿어주고 밀어줬거든. 우리 요청으로 서너 차례나 청와대를 극비 방문해 박정희와 비공식 면담을 하고 온 적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두 사람은 “호칭을 따로 할 필요도 없이 그냥 만나면 언제든 대화가 통할 정도로” 서로 좋아하는 지기로 지냈다.
김 추기경은 82년 이 변호사의 회갑기념문집 발간 잔치 때 기꺼이 참석해 축하해주었고, 2003년에 발간된 전기 <돈명이 할아버지>에도 축사를 써주었다. “ 내가 만일 훈장을 줄 수 있다면 이분들(인권변호사)의 가슴 위에 크고 아름다운 것을 달아주고 싶다.” 86년 ‘5·3 인천 노동자 시위’ 사태로 수배중이던 이부영씨를 도와줬다는 혐의로 이 변호사가 8개월 동안 수감중일 때도 김 추기경은 그를 두 번이나 옥중면회를 와 위로했다. “제일 먼저 조문을 가야 했는데…몸이 불편해 혼자서는 못 나서고 있었어.” 수감 때 얻은 심장병으로 수술을 한 뒤 지금까지 갖가지 병에 시달리고 있는 이 변호사는 몇 번이고 “참 좋은 양반”이라고 되뇌었다. 그는 18일 저녁 후배 변호사들과 함께 명동성당 추모 미사에 참석했다. 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한겨레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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