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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김 추기경 장례미사 고별사 요지

등록 2009-02-20 13:22

20일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을 떠나 보내며 연 장례미사에는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 교황대사를 비롯한 5명의 고별사가 이어졌다.

정부 대표로는 한승수 국무총리가 나서 이명박 대통령의 추도사를 대신 읽었다.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 교황대사 =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교황님과 교황청과 각별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셨습니다. 또 언젠가 "나는 그저 당신 양떼에게 비천한 종일뿐"이라고 저에게 하신 말씀과는 달리 사제요, 영적 지도자로서 당신에게 맡겨진 양떼에게는 충실하고도 선견지명을 갖춘 훌륭한 목자셨습니다.

추기경님은 당신 민족의 영적이고 물적인 안녕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셨던 분이십니다. 생명과 인권,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정의의 충실한 변호사이셨습니다.

교구장 지위에서 물러난 후에도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항상 낙천적이고 기쁜 모습을 보여줬던 참 신앙인이셨으며 당신의 전 생애와 영면을 통해 당신이 참된 하느님의 사람이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주님의 사랑 안에 영원히 머무르실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와 함께 주님께서 김 추기경님을 영원히 사랑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강우일 주교 = 온 국민이 마음으로 의지하던 아버지같은 분을 잃은 슬픔에 젖어있습니다. 명동만이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심지어 제주에서조차 조문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지금 세상살이가 너무 어렵고 희망은 안 보이고 어디를 봐도 의지할 데가 없어보입니다. 그래서 추기경님의 떠나심이 더욱 안타깝고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추기경님이 계속되는 육신의 한계를 온몸으로 겪어내며 정신적으로도 고통과 외로움 속에 홀로 힘겹게 싸우는 걸 봤습니다. 그 싸움은 아무도 도와드릴 수 없었습니다. 저는 몇주전에 주님 이제 그만하면 되지 않습니까, 편히 쉬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추기경께서는 투병과 죽음을 통해 경제위기와 사회불안으로 깜깜하고 싸늘하게 식어버린 국민 마음을 따뜻하게 덥히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이들이 추기경님의 가르침에 희망과 용기를 얻으면서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명동과 각 성당으로 몰려왔습니다. 추기경께서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곳에서 말씀을 했을 때보다 지금 더 많은 이들이 말씀을 음미하고 가르침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제 혜화동 할아버지가 아니라 한국의 할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연세가 많아지신 다음에는 도저히 빚을 갚을 길이 없음을 알고 요모양 요꼴이라고 탄식하며 자신에게 '바보야'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분명 이렇게 말하실 것입니다. '어서 오너라. 내 사랑하는 바보야. 그만하면 다 이뤘다'.

편안히 가십시오. 주님 나라 들어가시면 평소 불쌍히 여기시던 백성을 위해 주님께 간구해주십시오.

▲한승수 국무총리(이명박 대통령 고별사 대독) = 오늘 우리는 이 나라를 지탱해온 큰 기둥이었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가르쳐준 큰 어른인 김 추기경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려 합니다. 작년 성탄절때 저희 부부가 찾아뵙고 여러 말씀 나눌 수 있었는데 그게 마지막일지 몰랐습니다. 힘들어 뵐 때마다 기도해주고 용기와 격려를 준 추기경님의 숨결을 지금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쉬시기 바랍니다.

추기경께서는 가톨릭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지도자로서 항상 병든 자, 가난한 자, 약한 자와 함께 했습니다. 산업화시대에는 소외된 노동자편에서, 때로는 불의와 부정에 맞서 정의를 말씀하고 행동했습니다. 민주화시대에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편에서 권위주의에 맞서 정권의 압박을 온몸으로 막아냈습니다. 이분법이 팽배한 요즘에는 타인을 존중하고 마음을 열고 대화할 걸 가르쳤고 그러면서도 원칙을 잃지 않았습니다.

권력이 오만해지거나 부패할 때는 준엄히 꾸짖었고 시류에 휩쓸려 흔들릴 때에는 가야할 바른 길을 일러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서 소중한 분을 데려가시면서 우리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변화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추기경님이 말씀과 행동으로 이 세상에 남긴 메시지는 감사, 사랑, 그리고 나눔이었습니다. 빈손으로 와 사랑을 남기고 간 추기경님은 이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현재에 감사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손을 내밀 것을 바라시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뜻을 받들어 서로 사랑합시다. 추기경님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최승룡 전 가톨릭대학 총장 = 예수님이 빵 5개, 물고기 2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기적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가 갑자기 뻥하고 산처럼 솟아오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즐거운 상상을 해보면 예수님이 먼저 당신 도시락을 옆에 있는 사람들과 나눴습니다. 이를 보고 너도나도 감춰뒀던 것까지 다 꺼내서 옆 사람과 나눠먹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 배불러서 그만 먹겠소하고 남은 것이 열두광주리가 되고 나눠먹은 사람 숫자는 오천명이 됐을 것입니다.

추기경께서 돌아가시면서 각막을 기증하셨습니다. 물론 신체를 다 기증했지만 다른 기관들은 너무 오래돼 못 쓰고 눈만은 너무 맑으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기증으로 누군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이 빛을 보게 됐다고 합니다. 장기기증 행렬이 줄을 잇고있습니다. 평소보다 다섯 배 늘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어떤 장관도 본 받아서 기증서에 서명했다고 합니다. 추기경님의 배려와 사랑이 주위 사람들에게 감염돼 기증자와 수혜자가 늘게 되고 5천명이 빛을 보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각막 이식 대기자가 모두 빛을 보려면 5년9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 기간을 1년 혹은 6개월로 단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 마음의 눈이 멀었습니다. 추기경을 모범으로 이 눈을 열게 되면 이는 더 큰 기적이 될 것입니다. 미움, 갈등, 욕심의 각막을 벗겨내고 사랑, 화해, 희생의 각막을 이식하면 평화와 행복이 올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한홍순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 = 이승에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저희 마음은 한없는 슬픔으로, 그러나 동시에 기쁜 희망과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온 국민이 추기경님의 선종을 애도하는 것을 보며 저희는 평생을 착한 목자의 삶을 사신 추기경님이 자랑스럽고 고맙고, 그리고 이런 목자를 우리 민족에게 보내주신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추기경님은 당신 죽음까지도 도구삼아 우리와 모든 이를 구원의 빛으로 인도하는 영원한 사제요, 선교사이십니다.

저희도 하느님께 나아가 추기경님을 다시 뵈올 때까지 가르침을 따라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 같은 삶을 살기로 다짐합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하는데 이바지하기로 다짐합니다.

성모님께 추기경님의 영혼을 돌봐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경수현 기자 evan@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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