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이 1997년 12월 개원법회가 열린 길상사를 방문한 고 김수환 추기경과 마주 선 채 합장하고 있다. 법정 스님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이듬해 명동성당에서 특별 강론을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법정스님이 남긴 저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1971년 3월 <현대문학>에 쓴 글에서 법정 스님은 어떤 스님한테서 선물받은 난초 두 뿌리를 정성스레 기른 얘기를 하면서 거기에 일희일비 노심초사하다가 결국 친구에게 줘버린 뒤 비로소 그 몇 년간의 집착에서 벗어난 얘기를 썼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듯 홀가분한 해방감. 유정을 떠나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이니까.”
이 짤막한 에세이에 붙은 ‘무소유’라는 제목은 이후 법정 스님의 일부, 어쩌면 그 자체가 됐다. 1976년 4월 이 글이 포함된 에세이집 <무소유>가 출간됐고 그야말로 장안의 지가를 올렸다. 스님의 이 첫 책은 이제까지 모두 179쇄를 거듭한 우리 시대 최고의 스테디셀러 가운데 하나다.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이 책을 두고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한 말은 유명하다.
2001년 샘터사에서 낸 스님의 9권짜리 전집 중 첫 책인 <서 있는 사람들>은 1978년 무렵에 처음 찍어낸 책인데, 23년 만에 낸 그 개정판 서문에 스님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1970년대 그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 할 말을 할 수 없고 쓰고 싶은 글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던 숨막힌 때였다. 글 한 줄을 쓰려면 활자 밖의 행간에 뜻을 담아야 했던 그런 시절이다. … 책에 실린 글들에서 내 40대의 펄펄한 기상이 엿보여 빛바랜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몇몇 친구들은 긴급 조치에 걸려 억울한 옥살이를 하면서 이 책을 읽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입적을 예감했음인지 스님은 2008년 말에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산문집을 냈다. 이 산문집을 낸 문학의숲 출판사는 지난해 스님의 법문들을 묶은 <일기일회>와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도 출간했다. 스님이 펴낸 책은 모두 20여종에 이르며 그중 상당수가 변함없이 독자의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다.
스님은 대중적 문필활동의 시작을 알린 ‘무소유’에서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 스님은 사유의 향기가 밴 책들만 남기고 빈손으로 떠났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법정 스님이 입적한 11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에서 조문을 마친 불자들이 스님이 모셔진 행지실 들머리를 나서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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