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께 계 받은 변택주 ‘맑고향기롭게’ 이사
"스님께서 극락전 앞에서 부처님께 마지막 세 번 인사를 올리고 떠나실 때는 제 마음이…"
법정스님께 받았다는 법명 '지광(智光)거사'로 자신을 소개한 변택주(58) ㈔시민모임 맑고향기롭게(맑고향기롭게) 이사는 법정(法頂)스님의 마지막 모습을 그리며 마음이 애통한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안경을 들어 올려 눈물을 닦았다.
그는 "스님께서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하셨지만, 제자 된 입장에서는 왜 (마음속에) 울림이 없었겠느냐"며 스승을 잃은 제자의 슬픈 심정을 내비쳤다.
13일 성북동 길상사에 있는 '맑고향기롭게'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변 이사는 2000년 법정스님께 계를 받은 스님의 제자다.
"사실은 26년 전에 이미 계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꼭 법정스님께 받고 싶은 마음이 들어 특별히 다시 부탁드렸던 거죠. 어떻게 보면 욕심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처음 법정스님을 만난 것은 길상사가 창건되던 1998년 법회에서였다. 평소 스님의 글을 읽고 흠모해왔던 그가 스님을 뵙고 싶어 이날 길상사를 찾았던 것. 이후 그는 그해 가을부터 10여년 동안 꾸준히 법정스님 법회의 진행을 도맡아 해왔다. 그는 "스님의 '무소유' 정신이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스님이 늘 하셨던 말씀은 '착하게 살라'는 단순한 메시지였다"며 "부처와 보살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부처와 보살이 돼가는 것이라고 설파하셨다"고 회고했다. 그가 지금 '맑고향기롭게' 이사직을 맡아 일하는 것도 '착하게 살라'는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원래 '맑고향기롭게'는 1993년 법정스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법정스님의 뜻을 받들어 만든 사회봉사 단체다. 이들은 결식아동과 독거노인을 돕고, 양로원을 찾아가 봉사하는 등 몸으로 하는 봉사를 꾸준히 해왔다. 고(故) 정채봉 동화작가를 비롯해 이계진 의원, 윤청강 불교 작가 등이 법정스님의 뜻에 공감해 발기인격으로 모임에 참여했고, 이후 각지에서 종교를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이 동참했다. 지금은 지역모임만도 부산과 대전, 대구, 광주와 경남 등 5곳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2003년 길상사 회주 직을 비롯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강원도 오두막으로 들어간 법정스님이 마지막까지 내려놓지 않았던 것이 '맑고향기롭게' 이사장직이라는 것만 봐도 이 모임의 상징적 의미를 짐작할 만하다. 변 이사는 "모임을 운영하면서도 스님은 '무소유' 정신을 실천하셨다"고 강조했다. 구청에서 자금지원 제의를 해왔는데도 "그 자금은 다른 기관에서도 필요한 곳이 많을 것"이라며 "약소해도 내 주머니에서, 힘들어도 내 몸으로 봉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는 "스님은 당시 많이 썼던 '베품'이라는 말 대신 '나눔'이라는 말을 좋아하셨다"며 "아마 나눔이라는 말이 보여주는 수평적인 모습이 마음에 드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맑고향기롭게'는 앞으로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어려운 곳을 찾아 도움으로써 스님의 뜻을 실천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권영전 기자 comma@yna.co.kr (서울=연합뉴스)
그가 처음 법정스님을 만난 것은 길상사가 창건되던 1998년 법회에서였다. 평소 스님의 글을 읽고 흠모해왔던 그가 스님을 뵙고 싶어 이날 길상사를 찾았던 것. 이후 그는 그해 가을부터 10여년 동안 꾸준히 법정스님 법회의 진행을 도맡아 해왔다. 그는 "스님의 '무소유' 정신이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스님이 늘 하셨던 말씀은 '착하게 살라'는 단순한 메시지였다"며 "부처와 보살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부처와 보살이 돼가는 것이라고 설파하셨다"고 회고했다. 그가 지금 '맑고향기롭게' 이사직을 맡아 일하는 것도 '착하게 살라'는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원래 '맑고향기롭게'는 1993년 법정스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법정스님의 뜻을 받들어 만든 사회봉사 단체다. 이들은 결식아동과 독거노인을 돕고, 양로원을 찾아가 봉사하는 등 몸으로 하는 봉사를 꾸준히 해왔다. 고(故) 정채봉 동화작가를 비롯해 이계진 의원, 윤청강 불교 작가 등이 법정스님의 뜻에 공감해 발기인격으로 모임에 참여했고, 이후 각지에서 종교를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이 동참했다. 지금은 지역모임만도 부산과 대전, 대구, 광주와 경남 등 5곳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2003년 길상사 회주 직을 비롯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강원도 오두막으로 들어간 법정스님이 마지막까지 내려놓지 않았던 것이 '맑고향기롭게' 이사장직이라는 것만 봐도 이 모임의 상징적 의미를 짐작할 만하다. 변 이사는 "모임을 운영하면서도 스님은 '무소유' 정신을 실천하셨다"고 강조했다. 구청에서 자금지원 제의를 해왔는데도 "그 자금은 다른 기관에서도 필요한 곳이 많을 것"이라며 "약소해도 내 주머니에서, 힘들어도 내 몸으로 봉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는 "스님은 당시 많이 썼던 '베품'이라는 말 대신 '나눔'이라는 말을 좋아하셨다"며 "아마 나눔이라는 말이 보여주는 수평적인 모습이 마음에 드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맑고향기롭게'는 앞으로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어려운 곳을 찾아 도움으로써 스님의 뜻을 실천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권영전 기자 comma@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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