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무슬림들에게도 성산으로 여겨지는 시나이산. 일출의 빛을 머금은 호쾌한 기상이 장엄하다. 오른쪽 위 사진은 영화 <십계>의 한장면.
[성서의 현장] 이집트에서 이스라일까지 ①
경술국치 100년이다. 100년 전 한민족은 나라를 잃었다. 일본은 거대한 제국이었고, 대한제국은 완전히 꺼져가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망의 등불을 찾아야 했던 선구자들. 그들은 어디에서 희망을 보았을까. 당시 기독교(개신교)는 전국민의 1~2%에 불과해 여전히 배척받는 소수종교였지만 ‘창조적 소수’들의 상당수가 주목한 것은 당시 유대땅의 상황과 기독교의 역할이었다. 그들은 노예 상태의 동포들을 이끌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연 모세의 성서에서 희망의 빛을 발견했다. 성서의 인물들은 안창호, 조만식, 서재필, 이상재, 이승훈, 유영모, 함석헌, 김약연, 이동휘, 김구, 유일한 등 기독교 선각자들의 멘토였다. 지난 2일부터 8일까지 분당 새에덴교회(담임 소강석 목사) 순례단과 함께 그들의 숨결이 배어 있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찾았다. 그 순례의 길을 앞으로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집트에 속한 ‘황무지 성산’
여호와 명령 따른 일화 유명 낙타 불러 오른지 꼬박 세시간
해발 2286m호쾌한 기상 ‘장관’ 광야다. 하지만 풀 한포기 찾을 수 없는 모래뿐이다. 숨막히는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사막이 가도가도 끝이 없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시나이산으로 향하는 길 양편의 모습이다. 메마른 모래언덕 너머로 홍해가 잡힐듯 말듯 아련한 꿈처럼 스쳐지나기도 하지만 곧 시야를 막막하게 채우는 것은 다시 사막이다. 이집트의 방대한 땅의 대부분은 이런 사막이다. 그래서 전체 면적의 4%에 불과한 나일강 유역에서 8천만 국민의 대다수가 살고 있다. 시나이반도는 나일강에서 벗어나 이스라엘 및 홍해와 접해 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에 뺏고 뺏기는 전장이었던 이곳은 현재 이집트에 속한다. 사막에 있는 숙소에서 쉬다 길을 나선 것은 4일 새벽 1시30분.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나이산에 오르기 위해서다. 어둠 속의 시나이산길 초입엔 벌써부터 시나이산 일출을 보기 위해 산을 오르려는 순례객들로 가득하다. 길가엔 순례객들을 태우려 한밤중에 불려나온 낙타들이 졸린 듯 앉아 있다. 시나이산은 풀 한포기 없는 황무지산이다. 어둠 속의 좁은 길을 함께 가야 하는 낙타의 발에 채지 않으면서 모래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발걸음은 매우 조심스러워진다. 80 노구를 이끌고 모세가 오르던 그 길이다. 지금은 요소요소에 순례객들이 쉬며 차나 물을 마실 수 있는 휴게소들이 있지만 3천여년 전엔 휴게소도 손전등도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모세는 혼자였다. 그는 지도자였지만, 그에게는 한 뼘의 땅도 주어지지 않았고, 그를 환영해줄 곳 하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여호와의 명령으로 애굽(이집트)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수많은 동족들을 데리고 나왔다. 오직 자신만을 바라본 채 광야에 나선 사람들을 먹이고 재우고 길을 가고 가나안까지 입성시켜야 할 막중한 책임뿐이었다.
새에덴교회 이종민 목사는 “시나이산은 모세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곳이어서 영광만을 생각했는데, 정작 영광을 얻기까지 홀로 감내해야 했던 외로움과 고난이 더 절절히 느껴진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시련이 그 앞에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기에 모세는 외로웠을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달빛과 별빛이 그의 마음에 더욱 깊게 스며들었을까. 시나이산을 오르던 새에덴교회 박요셉 협동목사는 “홀로 편안한 삶을 구가할 수 있는 이집트 왕자의 삶을 버리고 동족들을 위해 고난의 길을 택한 모세는 이미 40년 동안 광야에서 동족들을 이끌 훈련을 홀로 감당해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출 전인데도 한발 한발 오를 때마다 달빛과 별빛은 옅어지고,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산중턱을 넘어서면서부터 어스름한 시야에 시나이산의 나신이 정체를 드러낸다. 수억년 동안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익은 때문일까. 달아오른 몸처럼 붉다. 마침내 해발 2286 정상에 다다르면 일출을 보기 위해 담요를 덮어쓰고 바위 틈새에 진을 치고 있는 순례객들과 바위가 마치 반인반수의 스핑크스처럼 어우러져 있다.
시나이산은 이집트인의 90%를 차지하는 무슬림들에게도 성산으로 여겨진다. 나무 하나 풀 한포기 없음에도 호쾌한 기상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일출을 보기 위해 산을 오른 지 세시간. 기다림은 지루하다. 하지만 오름과 기다림은 연단의 시간이다. 그토록 뜨지 않던 해가 오르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어떤 손이 해를 밀어올리듯 ‘쑥쑥’ 떠오른다. 어둠에 묻혀 있던 시나이산이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에 있는 자’(여호와)이면서도 결코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자는 어떻게 나타날까.
모든 것을 불태우는 태양의 열기 아래서도 시나이산의 바위들은 녹지 않고 더욱더 빛을 발하고 있다. 온갖 고난 속에서 부유한 집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자유를 찾아 사막행을 자처한 유랑객들의 정신처럼.
거친 광야에 시나이산이 홀로 서 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여호와 명령 따른 일화 유명 낙타 불러 오른지 꼬박 세시간
해발 2286m호쾌한 기상 ‘장관’ 광야다. 하지만 풀 한포기 찾을 수 없는 모래뿐이다. 숨막히는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사막이 가도가도 끝이 없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시나이산으로 향하는 길 양편의 모습이다. 메마른 모래언덕 너머로 홍해가 잡힐듯 말듯 아련한 꿈처럼 스쳐지나기도 하지만 곧 시야를 막막하게 채우는 것은 다시 사막이다. 이집트의 방대한 땅의 대부분은 이런 사막이다. 그래서 전체 면적의 4%에 불과한 나일강 유역에서 8천만 국민의 대다수가 살고 있다. 시나이반도는 나일강에서 벗어나 이스라엘 및 홍해와 접해 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에 뺏고 뺏기는 전장이었던 이곳은 현재 이집트에 속한다. 사막에 있는 숙소에서 쉬다 길을 나선 것은 4일 새벽 1시30분.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나이산에 오르기 위해서다. 어둠 속의 시나이산길 초입엔 벌써부터 시나이산 일출을 보기 위해 산을 오르려는 순례객들로 가득하다. 길가엔 순례객들을 태우려 한밤중에 불려나온 낙타들이 졸린 듯 앉아 있다. 시나이산은 풀 한포기 없는 황무지산이다. 어둠 속의 좁은 길을 함께 가야 하는 낙타의 발에 채지 않으면서 모래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발걸음은 매우 조심스러워진다. 80 노구를 이끌고 모세가 오르던 그 길이다. 지금은 요소요소에 순례객들이 쉬며 차나 물을 마실 수 있는 휴게소들이 있지만 3천여년 전엔 휴게소도 손전등도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모세는 혼자였다. 그는 지도자였지만, 그에게는 한 뼘의 땅도 주어지지 않았고, 그를 환영해줄 곳 하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여호와의 명령으로 애굽(이집트)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수많은 동족들을 데리고 나왔다. 오직 자신만을 바라본 채 광야에 나선 사람들을 먹이고 재우고 길을 가고 가나안까지 입성시켜야 할 막중한 책임뿐이었다.
시나이산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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