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 조계종 총무원장(가운데)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전국 본사 주지회의에서 정부·여당의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과 종교편향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불난 범어사 찾은 의원들에
산문출입 허용한 주지 비판
산문출입 허용한 주지 비판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17일 아침 확대간부회의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을 출입하게 한 부산 범어사 주지 정여 스님의 처신을 문제삼았다. 자승 스님은 “정부 여당에서 회유하더라도 과감히 물리치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한목소리를 내야 할 때 ‘부적절한 처사’”라고 말했다.
정부·여당이 4대강 사업 예산은 포함하고 템플스테이 예산은 삭감한 내년도 예산안을 강행 처리한 다음날인 지난 9일 조계종 총무원은 ‘정부·여당 인사에 대한 산문 출입 금지’를 선언했음에도, 지난 15일 밤 불이 난 범어사에 여당 의원들이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지적한 것이다. 정여 스님은 16일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와 서병수 최고위원, 김정훈 부산시당위원장, 허원제 의원 등이 범어사를 방문하자 이들에게 화재 현장을 소개하고 점심도 함께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승 스님은 국내 다른 종단 지도자들과 함께 중동·유럽 성지 순례와 가톨릭 교황 예방을 마치고 16일 돌아왔다.
자승 스님은 이어 열린 전국 교구본사주지회의에서 다시 한 번 정부·여당의 회유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자승 스님은 3년 전 종교편향 규탄 범불교도대회 당시를 언급하며 “정부는 기관장, 국회의원 등을 통해 종단 여론을 분산시키고자 했고, 이번에도 사찰을 찾아가 도움을 주겠다고 할 것”이라며 “아쉬움과 불이익을 감내하고서라도 변화해야 하며,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자승 스님은 “문화재 보호를 위해 정부 지원을 받다보니 신도들의 십시일반에 기반한 불사와 신도교육은 소홀히해 온 게 사실”이라며 “신도들의 힘으로 자생할 것과 의식전환을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계종 안팎에선 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으로부터 ‘좌파 주지들을 척결하라는 정부·여당의 외압을 받았다’고 공격당했던 자승 스님의 강공 자세에 놀라는 눈치다. 조계종 관계자는 “문화재 예산조차 불교계에 시혜를 베푸는 듯한 정부·여당의 자세에 인내심이 한계에 다달아 현 정부 아래선 더 이상 의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자승 스님의 집안 단속 의지를 반영하듯 이날 전국 25개 교구본사주지들도 “4대강 사업을 반대하고, 정부 및 한나라당 인사들과 개별접촉을 하지 않을 것이며 이들의 사찰 출입을 거부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정여 스님은 본사주지회의에서 “경황중에 발생한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었음을 깊이 인식하며 종단의 지침을 엄수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참회했다.
이어 85개 템플스테이 사찰 주지들은 회의를 열어 “템플스테이 예산에 대한 일체의 지원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결의했다. 원로회의 의원들도 “불교계가 사회문제나 정치문제라 하여 무조건 방관하는 것은 옳지 않은 법”이라며 “정견을 가지고 삿됨을 끊고 오로지 정법을 행해야 한다”는 유시를 전 종도들에게 내렸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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