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기어 참여 사진전 내달 24일까지
사진전 <순례자의 길> 홍보를 위해 방한해 21일 서울 조계종 총무원과 조계사를 찾은 할리우드 배우 리처드 기어(62)는 겉모습은 미국인이지만 정신은 ‘티베트 승려’다.
기독교 신자였던 그가 티베트의 정신적인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만난 것은 1982년. 그는 티베트불교를 만난 뒤 삶의 방황을 끝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에겐 티베트불교가 구원자였지만, 티베트로서는 그가 오히려 구원자였다.
리처드 기어는 달라이 라마를 만난 뒤 중국의 침공으로 나라를 잃고 살해, 고문 등의 핍박을 받으며, 무수한 난민들이 고통 속에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뒤 그가 티베트인들에게 보인 연민은 1990년 줄리아 로버츠와 함께 열연한 <귀여운 여인>에서 나오는 ‘백마 탄 왕자’의 모습이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멸시받는 콜걸의 신선한 매력을 발견해 사랑하게 되는 영화 속 자신처럼 그는 중국의 위세에 눌려 세상의 따돌림을 받는 ‘망명정부 티베트’의 대변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는 1993년 전세계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티베트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강압을 비판한 뒤 중국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리처드 기어는 굴하지 않았다. 그의 용기있는 행동은 해리슨 포드와 샤론 스톤, 스티븐 시걸 등이 공개적으로 친티베트 행보를 보이도록 고무하는 기폭제가 됐다.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1997년 ‘중국 정부의 침공에 고난받는 달라이 라마의 생애’를 그린 영화 <쿤둔>을 만들게 된 것도 기어의 역할이 컸다. 그가 나서서 감독과 달라이 라마를 연결시켜줬다. 한국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달라이 라마의 방한 비자를 거부하자 “같은 노벨평화상 수상자끼리 그럴 수 있느냐”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압박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정부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티베트인들을 핍박해 유혈사태를 야기하자 “중국이 티베트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은 비양심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티베트 인권 운동에 앞장설 뿐 아니라 티베트불교 수행에도 심취한 그는 스승 달라이 라마에게 티베트불교 승려로 출가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달라이 라마가 “지금 머문 자리에서 배우로서 충실한 것이 자신과 세상을 위해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출가를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사진전은 다음달 2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작은 그가 히말라야 지역을 순례하며 순수한 사람들과 자연의 모습을 직접 찍은 것들이다. 리처드 기어는 23~24일 경남 양산 통도사와 대구 동화사를 방문해 전통 사찰 문화를 체험하며 서울 인사동, 창덕궁 후원 등도 둘러본 뒤 25일 출국한다.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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