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국가권력’ 세미나
태자가 자기 나라 안에서 여자들이 시집 가기 전에 자신에게 먼저 처녀성을 바칠 것을 요구하며 몸을 빼앗는 등의 전횡을 저질렀다면?
광복절을 앞두고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가 9일 마련한 ‘호국불교 전통의 재조명’이란 학술세미나(서울 견지동 총무원 청사)에서 조준호 고려대 연구교수는 초기 불교 경전인 <세기경>에 언급된 예화를 통해 ‘불교의 국가관과 정교분리의 입장’을 설명했다.
조 교수는 “태자의 행위에 분노한 백성들이 몽둥이를 들고 왕에게 달려가 ‘살고 싶으면 저 태자를 죽이고, 만일 태자를 살리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왕을 죽일 것’이라고 하자 왕은 ‘집안을 위해선 한 사람을 잊고, 마을을 위해선 한 집안을 잊고, 나라를 위해선 한 마을을 잊고, 내 몸을 위해선 세상을 잊는다’고 말하며 태자를 끌고가는 것을 허락하자 백성들이 태자를 처형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적어도 초기 불교에선 국왕을 신성하다거나 절대적인 존재로 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불교는 본래 왕권이나 정치 권력과 완전히 단절되지도, 정치적 이익이나 권력에 개입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그러나 인도 힌두 바라문교와 이슬람교에 의해 수많은 승려들이 집단 학살 당하고 사찰이 파괴되면서 정교분리의 종교가 타종교의 정치적 탄압과 폭력 앞에 얼마나 무력한가를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불교에 공통된 호국불교 전통에 대해 “그런 역사가 있었기에 종교가 정치권력화의 꿈을 저버리지 못하고 매달리는 것인지 모른다”고 분석했다.
조 교수는 “과거 왕권중심의 봉건사회가 아닌 이 시대의 불교도가 시대적 사명감을 갖고 담당해야 할 호국은 불교의 본질 속에서 재조명되어야 한다”며 환경 보호와 인권 보호, 민주주의 수호, 정부나 기업의 부패 방지에 힘쓰는 형태들을 제시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의 김순석 목판연구소장은 불교 인사들이 일제를 돕고 해방 뒤에는 불교계가 정권과 결탁한 사례를 들면서 “문제는 호국불교가 백성을 위한 실천적인 모습으로 전개되기보다는 지배계급의 논리를 옹호하고 나아가서 인명을 살상하는 살육 전쟁까지도 정당화하는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안으로는 종권과 이권 다툼에 골몰하면서 밖으로 정권과 결탁해 호국불교를 외쳐 보아야 돌아오는 것은 냉소와 비웃음뿐”이라며 “불교도들은 그런 승단으로부터 등을 돌릴 것이기 때문에 불교도들은 적어도 자신을 기만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조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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