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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낙산사 ‘극락진경’ 회복은 나눔이 만든 기적

등록 2011-08-31 20:27

무료급식 등 활동, 복원돕기 물결로 돌아와
화마 딛고 단원 `낙산사도’ 따라 환골탈태
동해풍경과 조화속 모두에게 열린 쉼터로
6년 전 대형 화재로 처참하게 불탄 낙산사 모습(위)과 말끔하게 복원된 현재(아래).  <한겨레> 자료사진
6년 전 대형 화재로 처참하게 불탄 낙산사 모습(위)과 말끔하게 복원된 현재(아래). <한겨레> 자료사진

끝없이 펼쳐진 동해바다와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 오봉산의 솔바람, 눈앞에 펼쳐진 설악산과 백두대간, 해안가 기암절벽, 그리고 이곳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 한두가지를 갖기도 어려운 천혜의 조건들을 빠짐없이 갖춘 곳이 강원도 양양 낙산사다. 그래서 시인 고은은 낙산사엔 반드시 ‘동해 낙산사!’라고 감탄사가 붙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시샘 때문이었을까. 2005년 4월 양양 일대를 덮친 대형 산불로 낙산사는 전각 20채 중 14채가 불타고 경내 80%가 소실되는 중화상을 입고 말았다.

지난 27일 화마가 할퀴고 간 낙산사를 방문한 지 6년여 만에 다시 낙산사를 찾았다. 당시 낙산사 심장 원통보전은 홀라당 타 주저앉았고, 타다 만 소나무들은 숯기둥이 되어 있었으며, 인근 바다마저 잿빛으로 물든 듯했다. 그처럼 그을린 영상을 이고 낙산사 경내에 들어선 순간 펼쳐진 전경은 눈을 의심하게 했다.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높이 솟아 자비의 미소를 짓고 있는 해수관음보살상만은 분명히 옛모습인데, 화마의 자취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단원 김홍도가 그렸던 <낙산사도>를 기본모형으로 삼았다는 빈일루와 응향각, 정취전, 설선당, 고향실, 송월요, 근행당 등의 전각의 복원도 복원이지만 정작 놀라운 것은 전반적인 조화다. 환골탈태란 이를 두고 한 말인가. 전각들이 답답하게 들어차 인근 산세나 바다와 조화롭지 못했던 옛 옷을 벗어버리고, 눈부신 나신이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 형세다. 6·25때 전소된 뒤 형편 될 때마다 무계획적으로 전각을 지어 볼품이 없었던 낙산사가 화마를 오히려 부활의 계기로 삼은 듯하다.

땅은 돋고 솔숲은 적당히 시야를 터 경내 어디서든 동해와 설악산과 백두대간을 조망할 수 있게 했다. 전각들을 요란하지 않은 단청으로 풋내 나지 않게 한 것이나 상당히 자란 소나무들을 배치한 것도 신축건물이란 사실을 잊게 하기에 충분하다. 콘크리트는 어디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대신 돌담과 돌층계가 단단함을 더했고, 길도 자동차는 다닐 수 없는 호젓한 오솔길로 바꾼데다 하수구마저 멋진 표석을 올려 명물로 만든 섬세함이 배어 있다. 돈으로 대치하기 어려운 정성과 안목이다. 곳곳에 배치된 벤치에서 평화롭게 앉아 있는 관람객들과 어우러진 풍경이 극락진경이 아닐 수 없다.

낙산사 원통보전(위), 동해바다가 훤히 보이는 경내 찻집에서 차를 마시는 관람객들(아래).
낙산사 원통보전(위), 동해바다가 훤히 보이는 경내 찻집에서 차를 마시는 관람객들(아래).
관람객들의 만족은 ‘외경’으로 그치지 않는다. 경내 10여개의 자판기에서 커피가 무료로 제공되고, 의상기념관 국수공양실에선 점심 때면 국수도 무료로 준다. 연간 10만명이 먹었다는 깔끔한 국수를 맛보니 별미다. 원통보전 앞 전각에선 무료로 차도를 배우며 전통차를 시음할 수도 있다.

낙산사 주지로 부임한 지 보름 만에 대형 산불로 화마를 입고도 “부덕한 탓”이라던 한주 정념 스님은 “불자든 아니든 누구나 편하게 와서 쉬고 갈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가장 궁핍할 때 오히려 자비를 베푸는 역발상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는 산불로 낙산사가 불타 복원이 시급해 한푼이 아쉬운 시점에 오히려 낙산사 입장료를 없애고, 양양시내 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을 시행한 장본인이다. 그것이 복이 된 것인지 전국에서 낙산사 복원에 동참하는 불길이 화마보다 더 강하게 일었고, 불교 외에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인들까지 나서 도왔다. 2년 전 복원불사를 하자마자 그가 가장 먼저 한 것도 은혜를 지역민들에게 돌리는 일이었다.

60여억원을 들여 양양시내 2500여평에 유치원과 공부방, 도서관을 지어 양양의 아이들이 무료로 좋은 시설에서 지내는 ‘특혜’를 누리게 했다. 이곳에선 자기들만 별도로 ‘무료’ 혜택을 받는 것을 싫어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가정 아이들을 위해 차상위계층 아이들도 똑같은 혜택을 준다고 한다. 수혜자가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복지다. 또 낙산사는 100여명이 사는 노인요양원과 무료로 식사를 대접받으며 여가생활을 할 수 있는 노인복지관도 양양시내에 운영하고 있다.


양양시민의 마음이고 낙산사의 마음일까. 경내 찻집 벽엔 ‘오유지족’(吾唯知足·너와 내가 만족하니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이란 글씨가 걸려 있다. 낙산(洛山)은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보타락가산의 줄임말이다. 무언가를 구하는 중생보다 늘 주면서도 관음보살이 더 평화롭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낙산은 나눔의 기적을 통해 동해바다에 화마의 상처를 씻고 떠오른 한송이 연꽃이다. 드디어 모두가 함께 즐거운 낙산(樂山)이 되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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