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시트콤처럼 유머를 즐기는 삶으로 주위를 환하게 밝히는 민영진 교수 부부.
성서학자 민영진 교수와 부인 김명현씨
“권위적 아닌 온유한 성격에 맞게 고쳐야”
‘표준새번역…’서 사회 약자 편견 해소 앞장
불신의 빗장 사랑 가득한 유머로 풀어내
“권위적 아닌 온유한 성격에 맞게 고쳐야”
‘표준새번역…’서 사회 약자 편견 해소 앞장
불신의 빗장 사랑 가득한 유머로 풀어내
올해는 신약과 구약을 함께 담은 한글 성경이 우리나라에서 <셩경젼서>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한글 보급과 문맹 퇴치 등 문화적으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한글성경 100돌’을 맞아 대표적인 성서학자이자 목사인 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민영진(71) 교수를 지난 9일 만났다.
민 교수는 1988년 감리교신학대 교수 17년을 뒤로하고 대한성서공회로 옮겨 성서번역실장과 번역담당 부총무 등으로 1993년 출간된 <표준새번역 성경>을 번역하고, 5년간 대한성서공회 총무를 지냈다. 그는 2007년 말 은퇴한 뒤 몽골과 베트남, 라오스에 있는 소수민족의 성경 번역을 돕는 세계성서공회 컨설턴트로 자원봉사를 하면서 이달부터 대전침례신학대 특임교수로 구약을 강의하고 있다.
민 교수는 연세대 등 신학대들과 어린이·청소년 성경 공부 때 널리 애용되는 <표준새번역 성경> 번역에서 여성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 데 앞장선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그는 예수의 말을 반말이 아닌 존댓말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우리 주님은 겸손하고 온유하신 분인데 우리 성경의 예수님은 아주 권위적으로 아무에게나 반말하는 분으로 보여진다”는 게 그의 견해다. 하지만 목회자로 구성된 감수위원들을 비롯한 목회자들의 반발로 그의 뜻은 <표준새번역 성경>에도 반영되지 못했다. 만약 그의 번역이 관철되었더라면 목사들의 권위주의를 해소하고, 좀더 유연한 교회 문화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고 많은 이들은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그의 이런 번역론은 교리나 신념이라기보다는 삶으로 체화된 인격의 반영인 듯싶다. 그의 지인들은 그에게서 여유와 인격과 겸손을 먼저 떠올린다. 그는 무슨 모임에도 부인 김명현(67)씨와 동행하며, 늘 부인을 먼저 배려한다. 그런 배려가 가족들에게만 특별한 게 아니다. 그는 대한성서공회에서 일할 때 다른 간부들이 모두 함께 일하기를 꺼려 하던 여직원을 골라 자신의 방에 배치해 늘 존대하며 일했던 인물이다. 자기 비서에게도 반말을 한 적이 없을 만큼 차별심을 넘어선 그 인격의 최대 수혜자가 부인과 가족임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다 만난 민 교수 부부는 어느 모임에서나 인기 최고다. 둘은 어떤 우울증도 날려버리는 마술사 같은 유머를 지니고 있다. 그들의 유머는 유머집에서 빌린 것들이 아니라, 삶의 이야기여서 더욱 생생하다.
민 교수가 출장을 가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는 날 부인 김씨는 거실 탁자에 멋진 꽃을 꽂아두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부인이 꽃 쪽을 보며 “뭐 달라진 것 없느냐?”고 묻자, 그는 부인을 가리키며 “이 꽃 하나만 보기도 바쁜데 다른 꽃이 눈에 들어오느냐”고 말했단다. 또 초대받은 집을 찾아갈 때 길눈이 어두운 민 교수에게 “예전에 와봤으면서 그렇게 못 알아보느냐”고 부인이 핀잔을 주면 민 교수는 “어쩌면 당신과 이렇게 똑같냐. 매일 봐도 처음 본 것처럼 새로우니!”라고 답해 부인을 환하게 바꿔놓고 만단다.
민 교수는 경식(42·연세대 교양학부 교수)·한식(40·서울 대치동 연합감리교회 목사) 두 아들을 유치원 때부터 설거지를 시키며 어머니를 돕는 ‘페미니스트 2세’로 키웠다. 민 교수 부부는 유치원 때 림프샘(임파선)암을 앓아 병원에서도 살기 어렵다고 할 만큼 아픔을 겪은 뒤 살아난 둘째아들의 병 때문에 자식들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워 “공부하라”는 말 한번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1등 하면 스트레스 받으니 1등은 양보하라”고 한 ‘이상한’ 부모였다. 아들이 어느 날 방과후 부모 몰래 오락실에 갔다가 가방까지 잃어버린 채 잔뜩 긴장해 돌아온 것을 보고선 “살아온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이냐”고 안아줬다는 부부다.
부인 김씨의 유머와 마음 씀도 민 교수에게 지지 않는다. 둘째아들이 대학생 때 민주화시위에 나간다고 하자, “공부하느라 바쁜 너보다 시간 많은 내가 나가는 게 낫다. ‘민주엄마’ 나갈게”라고 하고, 도로에서 시위하느라 밤늦게 돌아온 아들에게 밥상을 잘 차려주며 “장한 내 아들”이라고 한 엄마였다. 부모들로부터 ‘시위에 나가면 등록금도 안 주겠다’고 으름장을 듣던 아들의 동료들은 급기야 ‘이상한 엄마’를 구경하겠다며 집에까지 찾아왔고, 그때 함께 온 여학생 중 한명이 둘째 며느리가 되었다.
연세대와 이화여대, 감신대 등에서 강사를 하고 감리교 여선교회 교육부장을 지내기도 한 김씨의 유머는 성경 공부를 하는 중에도 예외 없이 솟아난다. 성경 공부를 하던 한 청년이 마리아의 처녀 수태에 대해 “다른 건 다 믿어도 도저히 이건 못 믿겠다”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김씨는 “남편인 요셉도 가만히 있는데, 네가 왜 그러니?” 했단다. 그러면 그토록 질긴 불신의 빗장이 웃음 속에서 허물어져버리는 신비의 세계가 열린다. ‘성경 번역’에서도 미완으로 그친 ‘치유의 역사’는 성서학자 부부의 유머를 통해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연세대와 이화여대, 감신대 등에서 강사를 하고 감리교 여선교회 교육부장을 지내기도 한 김씨의 유머는 성경 공부를 하는 중에도 예외 없이 솟아난다. 성경 공부를 하던 한 청년이 마리아의 처녀 수태에 대해 “다른 건 다 믿어도 도저히 이건 못 믿겠다”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김씨는 “남편인 요셉도 가만히 있는데, 네가 왜 그러니?” 했단다. 그러면 그토록 질긴 불신의 빗장이 웃음 속에서 허물어져버리는 신비의 세계가 열린다. ‘성경 번역’에서도 미완으로 그친 ‘치유의 역사’는 성서학자 부부의 유머를 통해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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