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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빈자 위해 다 버린 ‘제2의 예수’…소유 너머 행복 일깨워

등록 2011-11-23 20:33

다미아노성당에서 한 신부가 기도하고 있다.
다미아노성당에서 한 신부가 기도하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의 고향
이탈리아 아시시 지방
토굴같은 거처 등에서
‘무소유 삶’ 흔적 오롯이
그의 유해 안치된 곳은
‘천국의 언덕’이라 불려
가톨릭은 예수 그리스도 이후 2천년간 끊어지지 않고 단일한 맥을 이어온 종교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발간한 <2011년 연감>을 보면, 세계 가톨릭 신자 수는 2009년 말 기준 11억6500여만명이다. 세계 인구의 17.4%다. 이슬람이 약 15억, 개신교도 8억~9억, 불교 4억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가톨릭 외 다른 종교는 수많은 종단으로 나눠져 있다. 반면 가톨릭은 바티칸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정치·군사의 최강국인 미국과 함께 가톨릭은 지구의 ‘양대 슈퍼파워’로 불리기도 한다. 가톨릭은 종교적 광기가 합리적 이성을 구속했던 암흑기와 부패의 시대, 종교개혁을 통한 교회 분리 등의 진통을 겪었다. 하지만 계몽주의와 민주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아성을 더욱더 굳건하게 하고 있다.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한국가톨릭주교회의가 14~24일 진행한 유럽영성순례에 함께하며 그 비밀을 엿본다. 주교회의의 순례 여정이 전통을 고수하는 수도원 등에 초점을 맞춘 만큼 가톨릭 전통의 힘에 초점을 맞췄다.

욕망을 타고 달리는 자본주의 전차가 전복될 수 있다는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이탈리아다. 지난 21일 로마에서 차로 2~3시간 떨어진 목가적인 지방 아시시로 향했다. ‘제2의 예수’라고 불릴 정도로, 성자 중의 성자로 꼽히는 프란치스코(1182~1226)가 태어나고 죽은 곳이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 프란치스코는 스무살 때 기사가 되기 위해 전쟁에 나가지만 포로가 되고 만다. 1년 동안 포로로 잡혀 있다가 풀려나 병을 앓고 난 뒤 회심한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무소유의 탁발승이 된다.

성문 들머리에서 10분 남짓 걸으니 프란치스코가 모든 것을 버린 광장이 나온다. 회심한 뒤 한센병 환자들과 걸인들에게 집안의 금전과 옷감을 퍼내준 아들의 배은망덕함을 주교에게 고발하는 부친 앞에서 프란치스코가 입고 있던 옷까지 실오라기 하나 남김없이 벗어버리고, 빈 손으로 태어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곳이다. 모두가 더 가지려고 안달하는 세상에서, 그가 모든 것을 벗어버리자 주교가 당황한 나머지 자신의 망토로 프란치스코를 가려주었던 현장이다.

그러나 그 망토는 이미 모든 걸 버려버린 프란치스코의 ‘무소유’를 가릴 수 없었다. 그의 모습에 부모와 주교와 귀족들은 괴로워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의지했다. 그는 광장 인근 다미아노성당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도하던 중 “프란치스코야, 쓰러져가는 나의 집을 수리하여라”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는 처음엔 말 그대로 건물을 복구하라는 뜻으로 알았으나 나중에 쓰러져가는 집이 무엇이고, 수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제비뽑기를 통해 복음서를 세번 펼쳐 보았다.

이렇게 해서 뽑힌 세 구절이 △완전하게 되려거든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서 나를 따르라(마태복음 19장 21절) △여행 중에 아무것도 지니고 다니지 말라(루가복음 9장 3절) △나를 따르려면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마태복음 16장 24절) 였다.

프란치스코는 이 구절대로 세상적 욕망을 포기하고 가장 가난하고 약한 자들과 마찬가지로 누더기만을 걸치고 맨발로 다니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광장 부근엔 말구유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의 생가터가 있다. 그의 어머니가 산통이 심해 목숨이 경각에 이르자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기도하라는 사제의 말을 듣고 말구유로 가 기도하던 중 프란치스코를 순산했다는 곳이다.


그가 머물던 ‘천사들의 성모마리아 대성당’의 토굴 같은 거처와 ‘가장 작은 자’를 뜻하는 포르치운쿨라성당이 그의 겸손한 삶을 말해준다.

‘죽음의 언덕’에서 ‘희망의 언덕’이 된 프란치스코대성당.
‘죽음의 언덕’에서 ‘희망의 언덕’이 된 프란치스코대성당.
현대인들에겐 절망의 상징이 되어버린 가난이 어떻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일까. 프란치스코의 삶을 따라 살겠다고 51년 전 수도회에 들어온 구알 티에로(67) 수사는 “바깥 사람들은 이 세상은 잠깐 지나는 순례의 길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버리곤 한다. 재산 같은 소유는 잠시뿐 영원한 행복은 소유 너머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상의 삶에서 단순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한다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구알 티에로 수사의 동료로 새성당수도회의 원장인 프란치스코 데 라자리(68) 신부는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따랐다”며 “성경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성경 말씀 그대로 살았다”고 프란치스코를 기렸다.

프란치스코는 생전에 사제서품도 받지 못한 채 겨우 부제품만 받았지만 이미 빛나는 성덕으로 인해 생전부터 세상의 빛이 된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 고을에서 사형수들의 처형장이던 서쪽 ‘죽음의 언덕’에 묻히기를 원했다. 아시시 사람들이 죽어서도 가기를 원치 않던 곳을 그만은 원했다. 서쪽 언덕은 이제 성프란치스코대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프란치스코의 유해가 안치된 이곳을 희망을 주는 ‘파라다이스(천국) 언덕’이라고 부른다. 남부러울 것 없는 그가 기득권을 버리고 가장 낮은 자들의 친구가 된 그곳이 바로 천국이었다.

아시시(이탈리아)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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