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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참수 순간에도 신앙고백한 ‘동굴 속 성녀’

등록 2011-12-07 20:24

로마 성 밖 갈리스도 카타콤베 안에 있는 성녀 체칠리아 석상.
로마 성 밖 갈리스도 카타콤베 안에 있는 성녀 체칠리아 석상.
로마 순례지 갈리스도 묘지
종교 박해 피해 숨은 피신처
신앙 위해 숨진 600만 순교자
`부활의 믿음’ 죽음으로 증거
영화 <쿠오바디스>에서 군중들의 함성에 둘러싸여 대결을 벌이던 검투사의 살기 띤 눈빛과 맹수의 포효, 그리고 굶주린 맹수에게 던져진 그리스도인들의 비명이 들리던 콜로세움(원형경기장). 이 콜로세움과 성베드로성당(바티칸 교황청)이 있는 로마 시내에서 성 밖을 벗어나야 ‘로마의 가톨릭 3대 순례지’ 가운데 나머지 하나인 갈리스도(칼리스토)묘지가 나온다. 로마에 있는 51개의 카타콤베(지하 동굴 묘지) 가운데서도 순례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동굴은 좁은 통로를 따라 지하로 지하로 이어져 있다. 통상 현재 건축물의 지하 1~2층 정도가 아니다. 지하 1층, 2층, 3층, 4층…. 미로처럼 사방으로 뚫려 있는 길을 따라가다 헤매면 자칫 미아가 될 수 있다. 서기 31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반포해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기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이 무덤 속에 숨어 지내며 신앙을 지켜갔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을 희망했기에 예수 그리스도처럼 주검을 아마천으로 싸서 무덤 문을 돌로 막는 매장을 원했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노예들이거나 가난했기에 개인 무덤을 만들 수 없어서 땅속 깊숙이 5~6층 정도의 통로를 뚫고 장사를 지냈다. 이로 인해 로마 51곳엔 총길이 900㎞의 카타콤베에 300년 동안 약 600만명이 매장됐다.

로마 성 밖 땅은 화산석 가운데 응회암이 많다. 돌인데도 손쉽게 파지면서, 공기 중에 노출되면 단단하게 굳어지고 습기와 냄새를 빨아들이는 지질적 특성으로 인해 무덤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적격이다.

당시 로마법은 모든 무덤을 신성불가침 지역으로 지정했기에, 박해 받는 그리스도인들도 무덤에서만은 자신들의 종교 예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무덤 안이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들의 피신처가 된 이유다.

그리스도인들이 숨어든 지하동굴엔 이제 전등 불빛이 어둠을 밝혀주고 있다. 그러나 1700년 전 이 지하에 불빛이 있었을 리 없다. 만약 당장 전등이 꺼져 깜깜해진 채 즐비한 주검들과 함께한다면 어떨까.

그들은 왜, 무엇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그처럼 버리면서 고난의 삶을 자초했을까? 이 세상에 ‘현세의 삶’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인가? 커다란 물음은 깊은 지하 동굴 밑 같은 내면의 심층 안으로 파고든다.

얼마나 내려가고 전진했을까. 넓어진 동굴 광장 옆 벽에 한 여인의 주검이 놓여 있다. 미라처럼 생동감 있게 보인 그 주검은 실은 성녀 체칠리아의 석상이다. 체칠리아는 ‘천상의 백합’이란 뜻이다. 석상은 어원 그대로 한떨기 백합을 연상케 한다. 로마의 귀족 여인이었던 체칠리아는 이교도인 남편을 개종시켜 동정을 지키며 신앙생활을 하다가 체포돼 뜨거운 목욕탕에 가둬두는 고문을 당했지만 신앙을 굽히지 않아 결국 참수를 당했다. 이 석상은 1599년 관을 열었을 때 주검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음을 목격한 스테파노 마데르노가 남긴 작품의 모조품이다.


카타콤베 통로 옆 4층으로 관을 넣는 칸들이 있다.
카타콤베 통로 옆 4층으로 관을 넣는 칸들이 있다.

칼을 맞고도 3일간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전설을 간직한 체칠리아의 석상은 목에 칼자국이 나있다. 오른손가락으론 셋, 왼손가락은 하나란 숫자를 보여주고 있다. 죽어가면서도 삼위일체인 하느님께 신앙고백을 했다는 것이다. 백합꽃처럼 연약하면서도 현세보다 영원한 세상을 철두철미하게 믿었던 강고한 영혼의 소유자였던 여인의 석상은 깊은 물음을 삼킨다.

이 지하동굴은 19세기 4대 박해로 인해 무려 1만~2만명이 순교를 당한 ‘신앙의 조상들’을 둔 한국의 가톨릭 신자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순례 성지다. 한국인 순례객들 안내를 위해 이곳에 상주하는 살레시오수도회의 염동규(53) 신부는 “로마 황제들은 원형경기장의 맹수에게 그리스도인들을 던져주어 잘못을 빌며 울고 살려주기를 애원할 것을 기대했지만,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웃으면서 자신을 박해한 자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죽어가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고 말했다.

긴긴 동굴 속을 빠져나오니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익투스(물고기 문양)와 ‘영원한 항구에 정박했다’는 닻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띈다. 이 카타콤베 옆엔 쿠오바디스 성당이 있다.

“쿠오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한 네로 황제의 혹독한 박해를 피해 로마를 탈출하던 베드로(1대 교황)가 자신과 반대로 로마를 향해 걸어들어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물었다는 자리에 선 성당이다. 당시 예수는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해 로마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답했다고 전한다. 이에 부끄러워진 베드로는 즉시 로마로 돌아가 십자가에 못박혔다. 베드로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죽을 수 없다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고 전한다. 자주 예수를 외면한 자로 그려지는 베드로는 결국 ‘부활의 믿음’을 죽음으로 증거함으로써 교회를 ‘반석’ 위에 올렸다.

로마/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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