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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목마른 이웃을 내 가족처럼 여기는 게 깨달음”

등록 2012-07-18 19:14수정 2012-07-19 10:32

조계종 총무원장 시절 개혁 주도
이후 북한동포 인도적 지원 앞장
2003년부터 기아·물부족 국가에
우물 파주고 초등학교 설립 도움
“자비가 곧 부처, 사랑이 곧 하나님”
만해대상 평화상 송월주 스님

김제역에서 너른 평야를 가로지르는 길가엔 무궁화가 피어 있다. 호남의 영산 모악산 기슭 금산사는 통일신라시대 중기 이 지역 출신의 고승 진표율사(718~?)가 미륵불상을 봉안한 곳이다. 미륵불은 불교에서 미래의 구세불이다. 그래서 금산사 미륵불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구세불이 오기를 소망하는 중생들에게 고난의 시기마다 희망의 등불이었다.

‘歸一心源饒益衆生’(귀일심원요익중생).

미륵전 뒤 만월당 안에 들어서니 이 글귀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청정한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 중생에게 풍요로운 이익을 준다’는 뜻이다. 구도와 자비를 동시에 담은 것이다. 곧 ‘깨달음을 이 세상의 유익함을 위해 펼친다’는 ‘깨달음의 사회화’다.

올해 만해대상 평화상을 받는 금산사 조실 송월주(78·사진) 스님이 직접 쓴 글이다. 만월(보름달) 같은 얼굴로 맞는 그는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로는 믿기지 않을 만큼 꼿꼿하다.

“수행과 구세원력이 강한 용이 많으면 살아나고, 뱀떼만이 넘치면 망하는 법이오.”

일성은 최근 도박사건 이후 지탄받고 있는 조계종단에 대해 질책이다.

“계행을 함부로 내팽개치는 뱀떼가 넘치지 않으려면 종단의 정화는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어야 합니다. 물이 고이면 썩을 수밖에 없지요.”

청정수를 만들기 위함일까. 그는 쉬지 않고 흐르는 물줄기가 되었다. 지금도 캄보디아로, 몽골로, 사회단체로, 지방의 법회장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그래서 혹자들은 그를 기(氣)가 세기로 조계종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3대 인물’ 중 한명으로 평하기도 한다.

그는 그런 기백이 아니었다면 헤쳐나올 수 없는 삶을 살았다. 불과 27살의 나이에 전북 불교의 중심 도량인 금산사 주지를 맡았다. 그러나 1961년 당시만 해도 전북 일대 130개 사찰 가운데 3곳만 빼고 나머지는 대처승들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구본사 주지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었다. 대처승을 권유했던 왜색불교가 만연해 독신 비구승은 전국에 겨우 350여명에 불과한 상태였고, 금산사도 소송이 진행중인 ‘분규 사찰’이었다.

종단에선 금산사 일대에 송씨 문중이 많고, 그의 형이 전북도의원이라서 그나마 비빌 데가 있다는 이유로 그를 홀로 내려보낸 것이었다. 전북 일대 사찰들을 독신 비구들의 도량으로 돌려놓는 지난한 싸움은 그의 인생의 서막에 불과했다.

그의 은사는 당대의 선승 금오 선사(1896~1968)다. 그가 스승처럼 선승의 길을 걷지 않고, 종단으로 나온 것은 왜색에서 벗어나 제대로 부처의 깨달음과 자비를 실천하고 포교할 수 있는 한국 불교를 만들고 싶은 원력 때문이었다.

그는 1980년 40대에 조계종 총무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6개월 만에 신군부가 군홧발로 전국의 사찰을 짓밟은 ‘10·27법난’ 당시 보안사 서빙고분실에 끌려가 23일간 고초를 겪고 신군부의 강요로 물러났다.

그런데 1994년 종단 개혁세력의 옹립으로 총무원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개혁종단을 이끌어 종단을 정비했다.

4년 뒤 총무원장직에서 물러나서도 왕성한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북한 동포의 기아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발족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로서 8년 동안 북녘동포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앞장섰다. 또 1998년 구제금융 위기로 실업대란이 발생하자 김수환 추기경, 강원룡 목사 등과 함께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를 발족시켜 활동했다. 그는 종교를 넘어선 우정을 나눴던 김 추기경과 강 목사가 떠난 지금도 그 단체의 후신인 ‘함께일하는재단’ 이사장을 맡아 고용 확장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03년부터 지구촌공생회라는 구호단체를 만들어, 마실 물조차 없어 고통받고 있는 캄보디아에 우물 1600여개를 파고 초등학교를 설립해주는 등 미얀마·캄보디아·라오스·몽골·네팔·케냐 등 6개 저개발국에서 교육 및 주민 생활환경 개선사업에 심혈을 쏟고 있다.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젊은 시절 만해의 시 <나룻배와 행인>을 애송했다는 그는 빈곤지역에 대한 기부를 얻을 수 있는 곳이면 여전히 노구로 ‘산 넘고 물 건너는’ 고초를 마다지 않는다. 캄보디아 어린이들을 위한 다목적 교육시설을 짓는데 창원시가 1억원을 내놓기로 했다는 전화를 받은 그는 “며칠뒤 창원에 가야 한다”면서 마치 소풍 전날의 소년처럼 들뜬다.

“지금도 지구상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9억5000만명이나 되고, 변변한 하수시설조차 없이 물이 오염된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26억명이나 되고, 물로 인한 질병으로 1년이면 800만명이 죽어갑니다. 우리도 불과 수십년 전까지도 굶주리며 원조로 끼니를 때우지 않았습니까. 물 없이 목 말라 죽어가는 그들이 바로 내 가족이고 내 가정이라는 데 눈을 뜨는 게 깨달음이지요.”

미륵전에 선 그는 “미륵이란 자씨(慈氏), 곧 ‘자비로운 분’”이라며 다시 한번 강조했다.

“자비가 곧 부처님이요, 사랑이 곧 하나님이오.”

김제 금산사/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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