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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6번의 옥살이·이단 시비…문선명 총재는 누구인가?

등록 2012-09-03 13:19수정 2012-09-03 13:20

고 문선명 통일교 총재
고 문선명 통일교 총재
3일 새벽, 폐렴 합병증으로 향년 92세 별세
통일교 창시…언론·교육사업 등 국제적 영향력
3일 별세한 문선명 통일교 교주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 중 한명이었다. 그는 희대의 사이비 교주라는 비난과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한국인이라는 유명세가 함께했다. 그가 지난 2009년 출간해 100만부가 팔렸다는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에서 “이름 석 자만 말해도 세상이 와글와글 시끄러워지는 세상의 문제 인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대로였다.

1951년 통일교(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시해 전세계 194개국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1976년 워싱턴에서 30만명 군중 집회를 열어 <뉴스위크>에 의해 ‘올해의 인물’로 뽑히는가 하면, 미국 <유피아이>통신과 <워싱턴타임스> 소유주로서 국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특히 고인은 구순을 넘어서도 선 채로 10시간 이상 설교를 하거나 거의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왕성한 정력과 카리스마로 교인들을 사로잡고, 미국 우익 정치인들과 해외에서 퇴임한 전직 국가원수급들을 불러들여 ‘실력’을 과시하곤 했다.

고인은 1920년 1월6일 평북 정주에서 태어났다. 8남매 중 차남이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눈이 작아 ‘쪼금눈이’로 불리고, 한번 울기 시작하면 하루종일 울어서 ‘하루울이’라고 불리는 고집불통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런 그가 기독교인이 된 것은 15살 되던 해라고 한다. 집안의 큰 재난이 동기가 되어 집안 사람 모두가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통일교에서는 고인이 만 16살이던 해 4월17일 부활절 아침 기도 중에 예수가 나타나 인류구원사업에 대한 엄중한 당부를 함으로써, 하늘섭리를 위한 문 교주의 노정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18살에 정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서울 경성상공실무학교 전기과에 입학하여 예수교회 명수대예배당의 반사로 신앙생활을 했다. 1941년엔 일본 도쿄 와세다 대학 부설 고등공업학교 전기과에 입학했다고 한다.

그가 종교인으로 활동을 시작한 곳은 1946년 개척교회를 세운 평양이었다. 그는 1948년 공산당에 의해 ‘사회질서 문란죄’로 구속돼 5년형을 언도 받고 흥남감옥에서 2년 8개월의 옥고를 치르던 중 한국전쟁을 맞아 월남하게 된다.

그는 1951년 5월 부산 범6동의 2평짜리 토담집에서 새출발해 1954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통일교)를 창립한다. 1년 뒤인 1955년 기독교재단인 이화여대와 연세대의 학생과 교수들이 통일교에 입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개신교쪽은 입교자들을 퇴학·퇴직시키고, 통일교에 대해 비상한 경계태세에 돌입한다.

이에 따라 국내 선굣길이 막힌 문 교주는 국외 돌파구를 찾아 1958년 일본에, 59년엔 미국에 각각 선교사를 파송해 본격적인 국외 개척에 나선다. 1961년엔 오랫동안 통일교에서 2인자로 군림했던 박보희씨가 주미대사관 무관보좌관으로 발령받으면서 통일교는 미국 선교에 날개를 달게 된다. 1966년엔 통일교 경전인 <원리강론>을 펴낸다.

1970년대엔 문교주의 미국시대가 열린다. 그는 반공정책을 표방하면서 대도시의 대규모 집회를 이끌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78년 그의 특별보좌관인 박보희씨가 미하원 국제관계소위원회(위원장 프레이저)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 등 그의 미국 내 활동이 제약을 받는다. 그는 또 탈세 혐의로 댄버리교도소에 수감돼 13개월 동안 복역하고 85년 출감한다. 통일교에서는 문 교주가 평생 6번에 걸쳐 옥살이를 하는 시련을 당했다고 말한다.

1968년 국제승공연합을 창시해 승공·멸공운동을 벌이던 그는 1982년 <워싱턴타임스>를 창간해 미국 정가에서 극우보수 인사들의 입을 대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는 1990년 모스크바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단독 면담을 했다. 한 해 뒤인 1991년 11월 30일엔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만난다. 남북간 경색이 장기화하던 당시 그와 김 주석의 만남은 상당한 관심을 모았다. 이에 대해 통일교 쪽은 “당시 김일성 주석이 만나주지 않으려 했지만, 호텔에서 잠도 자지 않은 채 하나님 이야기를 하며 ‘공산주의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문 교주의 배포에 반해 형제의 연을 맺고, 김정일 위원장에게도 각별히 배려하도록 유언을 했다”고 한다. 지난 구순 때 김정일 위원장이 산삼을 선물로 보내는 등 늘 각별히 대한 것도 이 유언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 교주 부부는 자신이 ‘참부모’라며 지난 1960년부터 수천쌍 또는 수만쌍의 합동결혼식을 열어 축복해주는 등 돈키호테적 이벤트를 많이 벌였다. 통일교 쪽은 지금까지 비신자를 포함해 5억쌍이 절대순결과 절대사랑을 하는 참가정 서약을 하는 축복결혼에 참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01년엔 아프리카 잠비아의 가톨릭 밀링고 대주교가 문 교주가 맺어준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로마 교황청의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2005년엔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된 유엔을 대체할 곳이 필요하다면서 천주평화연합(UPF)을 창설하기도 했다.

문 교주는 종교와 언론분야 외에도 선화예술학교·고교, 경복초, 선정중고, 선문대, 청심국제중·고 등 교육계와 일화, 일성종합건설, 일신석재 등 다양한 사업에도 진출했다.

기독교로부터 끊임없는 이단·사이비 시비에 시달린 문 교주는 구순을 맞으면서 통일교는 기독교가 아니라면서 교단 본부인 서울 용산 천복궁에 4대 종교 교주와 상징물을 설치하는 등 기독교색 탈피를 꾀했다. 통일교 쪽은 이와 함께 문 교주가 메시아라고 외부에도 알리기 시작한다.

통일교는 그의 구순을 맞은 지난 2009년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500만평 규모의 ‘통일교 왕국 센터’ 격인 일명 ‘천정궁(天正宮)’을 외부에 공개했다. 이날 행사에서 문 교주는 ‘재림주’, ‘구세주’, ‘평화의 왕’으로 일컬어진 데 이어 그는 부인과 함께 ‘만왕의 왕 하나님 해방권 대관식’을 열었다. 이렇게 ‘하나님으로 취임’하는 행사를 열면서 자신의 신격화와 메시아화에 막바지 정열을 불태웠다.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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