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총재 어떻게 미국서 영향력 얻었나
“전세계가 내 손안에 있고, 나는 전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할 것이다.”
고 문선명(92) 통일교 총재는 1976년 미국 주간지 <타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계 언론은 3일 전세계를 품고 싶어했던 이 “불가사의하고 논쟁적인”(<워싱턴 포스트>) 종교 지도자의 별세 소식을 긴급 타전했다. 문 총재의 이름 앞에는 ‘자칭 메시아’ ‘성공한 사업가’ ‘반공주의 투사’ ‘보수 우파의 권력가’ ‘좌절당한 과대망상증 환자’ 등 다양한 수식어가 동원됐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문 총재가 1970년대 컬트 운동의 상징으로 미국 학생들을 사로잡은 뒤, 미국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과정에 큰 관심을 보였다. 통일교는 베트남 전쟁 이후 부모세대와 다른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던 미국 학생들을 매료했다. 기독교와 유교와 한국 토속신앙이 혼합된 통일교 교리가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학생 신자들은 거리에서 장시간 꽃·땅콩·초를 팔아 교회 자금을 댔고, 이를 ‘세뇌’ 탓으로 여긴 부모들은 자식을 데려오기 위해 재교육 전문가까지 고용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문 총재는 막대한 자금과 사업수완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영향력을 넓혀갔다. 워싱턴 지역의 통일교 계열사 규모만 3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언론사부터 발레 아카데미, 보석점 체인, 비디오 회사까지 업종도 다양하다. 특히 <시카고 트리뷴>은 2006년 문 총재의 수산회사 트루월드푸즈가 미 전역 초밥 레스토랑의 회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화당 소속인 리처드 닉슨 대통령(1969~1974) 때부터는 워싱턴 정계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신이 ‘미국은 닉슨을 사랑해야 한다’고 선언했다”고 밝힌 게 인연이 됐다. 1982년에는 자유주의 성향의 <워싱턴 포스트>의 대항마로 보수 우파 신문인 <워싱턴 타임스>를 창간해 정치력 확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한때 발행부수가 10만부에 이를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이 신문을 매일 구독했다. 통일교에서는 “미국에서 우리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공직에 출마할 수 없게 하겠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문 총재는 ‘마르크시즘’에 대항하는 ‘가디즘’(Godism)을 주창할 만큼 열렬한 반공주의자이기도 했다.
한편 <에이피>(AP) 통신은 통일교에서는 미국 10만명을 비롯해 신도 수가 300만명이라고 주장하지만, 비판자들은 전체 신도 수가 10만명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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