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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부르더 호프 공동체에 ‘뒷담화’가 없는 까닭은

등록 2012-10-30 15:08수정 2012-10-30 15:49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누군가의 험담을 몰래 하는 건 방송을 타는 것과 같다
‘사랑으로 직접 말하기’ 수행 강조
자리에 없는 사람 일체 언급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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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다(루가 12,1-7).”

問: 천주 무량하시뇨?

答: 천주 무량하시니, 아니 계신데 없이 곳곳에 다 계시나니라.

1950년대 교리서 ‘요리문답(要理問答)’에 나오는 말입니다(그 무렵 박신부는 왼쪽 가슴에 콧수건 달고 다니던 유년기, 모두 이쁘고 잘생겼다고들 했는데... 지금 내 얼굴로 상상하지 말것!).

우리는 하느님이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고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분이라 고백합니다. 공기처럼 어느 순간 어느 공간에도 존재하신다는 뜻이고, 인간의 생각이 미칠 수 있는 한계를 너머도 초월하는 크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자선과 기도와 단식할 때에는 보이려고 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서 하라.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께만 보여라.”고 하셨습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골방에서 은밀히 속삭인 음해나 야합도 모두 알려지게 마련이다(루가 12,2-3).” 하느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표현이 감시처럼 느껴질 런지 모르지만, 결국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의 단순성은 곧 ‘현존의식’입니다.

‘하느님은 내 안에 계시고 내 곁에 계시고 나와 함께 계시는 분!’ 이란 것이지요. 기도란 것이 하느님의 현존의식을 바탕으로 가능한 것 아닙니까? 임마누엘의 하느님 개념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일과 태도에 대해서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데 그런 의식은 혼자 있을 때의 자유와 무책임한 방종의 태도로 드러나게 됩니다. 함께 있건 홀로 있건 공공의 장소에 있건 가정에 있건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순간에도 하느님의 눈길만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지요.

하늘에 계신 하느님은 우리의 양심, 염치, 수오심, 측은심으로 계십니다. 그런 것들이 내 안에 현존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나 혼자 뿐인 순간에도 결코 홀로 있지 않습니다. 양심은 마음의 눈길입니다. 나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눈길이며 속삭이는 음성이고 수호천사의 손길이고 훈육의 채찍입니다.

조선 유림(儒林)들의 수행에는 신독(삼갈 愼· 홀로 獨)이 강조되었습니다. 선비는 혼자 있을 때라도 생각과 복장과 행위의 태도가 방정하고 조신해야 하며 스스로 삼가는 태도로 분망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인 거지요.

홀로 있을 때도 욕심이나 복수심, 나쁜 흉계를 생각하거나 분노하거나 반항하는 것도 자기 마음의 눈길에 목격되고 하느님의 눈앞에 숨길 수 없을진데, 하물며 둘 셋이서 모여 누군가에 대해 험담을 한다든가 허물을 들추는 수다를 떤다든가 한다면 그 일은 절대 비밀이 아니고 지붕위에서가 아니라 방송을 타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부르더 호프 공동체에서는 ‘사랑으로 직접 말하기’ 수행을 강조한다고 합니다. 누군가와 이야기 나눌 때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할 수 없다는 규정입니다. 이웃들이 아니라 부부간에도 엄격히 금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 대한 불만이 있거나 감정이 상했거나 충돌이 있었다면 둘이 풀어야 합니다. “그를 찾아가 직접 충고하라.”는 공동체 설교(마태 18장)의 복음적 권고에 따라야지 정작 본인과는 대화를 나누지 않고 뒷말로 험담을 나누는 것은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첫째는 그를 인격적으로 모독했고, 둘째는 그 말이 전해졌을 때는 사실보다 과장될 확률이 높아서 오해를 더 크게 할수 있고, 셋째는 ‘혹시 저 이들끼리 모여서 나에 대해 말하고 있지는 않을까?’하고 막연한 두려움이나 소외감을 줄 수 있어서 공동생활에 대한 불신을 퍼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부재불급(不在不及: 없을 때는 언급하지 않는다)’의 원리가 공동생활에서는 참으로 중요한 덕목입니다. ‘부재불급(사랑으로 직접 말하기)’는 사랑과 신뢰의 공동생활로 이끄는 비결이라도 생각합니다.


글쓴이 : 박기호 신부

늘 병을 달고 다니는 체질인 박기호 신부. 김정효 기자 <A href=”mailto:hyopd@hani.co.kr”>hyopd@hani.co.kr</A>
늘 병을 달고 다니는 체질인 박기호 신부.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991년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1998년 ‘소비주의 시대의 그리스도 따르기’를 위해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들어 실천적 예수운동을 전개했다. 소비주의 시대에 주체적 젊은이를 양성하기 위한 배동교육 실시했고, 5년 전 충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 마을에서 일반 신자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animal@catholic.or.kr

* 이 글은 휴심정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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