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옷가게에서 서영남 대표와 아내 베로니카, 딸 모니카가 함께했다.
나눔 실천하는 인천 ‘민들레타운’
가톨릭 수사 출신인 서영남 대표
10년 전 300만원으로 국숫집 열어
노숙인·홀몸노인에 무료식사 제공
부인은 돈 받지 않고 옷 챙겨주고
딸은 공부방 운영하며 아이들 교육
‘무소유 삶’ 민들레 홀씨처럼 번져
노숙인 10여명 정착…마을봉사자로
가톨릭 수사 출신인 서영남 대표
10년 전 300만원으로 국숫집 열어
노숙인·홀몸노인에 무료식사 제공
부인은 돈 받지 않고 옷 챙겨주고
딸은 공부방 운영하며 아이들 교육
‘무소유 삶’ 민들레 홀씨처럼 번져
노숙인 10여명 정착…마을봉사자로
내가 직장을 잃고 가족들에게조차 버림을 받아 거리를 방황하게 됐을 때, 누군가가 나를 최상의 손님이나 가족으로 받아준다면? 배가 고프면 언제든 맛있는 제육볶음과 국수를 주고, 따뜻한 방에서 씻고 낮잠을 잘 수 있게 해 준다면 어떨까.
꿈속에서나 가당할 법한 일이 현실로 이뤄진 곳이 있다. 수도권전철 1호선 동인천역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인천시 동구 화수동 일대 ‘민들레 타운’이다. 수도권에서 얼마 남지 않은 달동네인 이곳을 부활절을 앞둔 지난 25일 찾았다.
민들레국수집은 이 달동네 골목 네거리에 있다. 국숫집에선 노숙인 10여명이 식판에 하얀 쌀밥과 제육볶음을 양껏 담아 식사를 하고있다. 그 옆에 최근 문을 연 ‘어르신들을 위한 민들레국수집’에선 홀몸노인들이 맛있는 국수를 먹는다. 가톨릭 수사 출신인 서영남(60) 대표가 10년 전 문을 연 민들레국수집에는 목·금 이틀을 빼고 토~수요일 매주 5일간 하루 400~500명이 찾아와 무료로 식사를 하고 간다. 뭔가 쫓기는 듯하거나 겸연쩍게 식판을 내밀거나 고개를 숙이며 밥을 먹는 표정이 아니다. 스스럼없이 식판을 내밀고 자유롭게 식사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안식이 느껴진다. 이곳엔 간혹 정부의 고위층이나 각계 지도자들도 후원이나 봉사를 위해 얼굴을 내밀지만, 서 대표는 그들이 아닌 노숙인들을 ‘브이아이피(VIP) 손님’이라고 칭한다. 걸인에게 던져주는 빵 한 덩이와 브이아이피에게 대접하는 밥의 온기가 같을 수 없다.
국숫집에서 배를 채운 노숙인들 중 몇몇은 인근 민들레가게로 가서 서 대표의 부인 베로니카에게 필요한 옷을 요청한다. 베로니카는 노숙인이 요청한 점퍼뿐 아니라 팬티와 양말까지 챙겨 넣어준다. 민들레가게는 ‘돈을 받지 않은 채 퍼주기만 하는 유일한 가게’다. 이곳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민들레희망지원센터에선 매일 오후 50여명의 노숙인이 찾아와 책을 읽고 독후감 발표회를 연다. 이들이 독후감을 발표하면 3천원씩을 챙겨주는 것도 베로니카의 몫이다.
민들레국수집 인근에서 운영중인 민들레공부방엔 학교를 마친 동네 아이들 10여명이 들어와 방금 만든 떡볶이를 먹으며 재잘댄다. 공부방은 베로니카의 딸 모니카가 운영한다.
서 대표가 25년간의 수도원 생활을 접고 나와 전재산 300만원을 털어 민들레국수집을 차려놓고 운영 걱정에 노심초사할 때 베로니카·모니카 모녀는 오갈 데 없던 그를 한 식구로 받아들였다. 이 모녀에게 서 대표는 여느 가장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자기 손에 들어온 모든 것을 가족 대신 나눔과 봉사를 위해 쓰기 때문이다. 서 대표는 얼마 전 독지가가 2억원 상당의 ‘희망센터 건물’을 기부하자 이 건물조차 곧바로 인천대교구에 헌납한 무소유자다.
아내 베로니카는 그런 가장을 타박하기는커녕 이제 동인천역 지하상가 옷가게에서 번 돈을 몽땅 민들레국수집에 털어놓는 최고의 후원자가 됐다.
서 대표는 27일엔 포스코청암상(봉사부문)을 수상해 상금 2억원을 받았다. 그중 1억원은 며칠 전 ‘어르신들을 위한 국수집’을 여는 데 썼고, 남은 1억원은 필리핀 마닐라의 쓰레기산 파야타스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먹이고 돌보며 공부시켜 줄 파야타스공부방을 여는 데 쓸 계획이다. ‘아빠’의 사랑 바이러스에 엄마 못지않게 깊게 감염된 모니카는 벌써 파야타스행을 자원했다.
행복한 것은 세 식구만이 아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오가다가 이 동네에 정착하고 싶어한 노숙인들에게 방을 얻어주어 ‘민들레’ 식구가 된 노숙인들이 10명이 넘는다. 얼마 전까지만도 거리를 배회하던 노숙인들이 국숫집과 공부방, 희망센터 운영봉사자들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깜짝 놀란다.
이들이 얼마나 평화로운 미소로 또다른 노숙인들을 정성스럽게 섬기는지는 보지 않고는 믿기 어렵다. 이 국숫집에서 봉사하면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몸과 마음이 안정을 되찾았는데도, 이 무소유 공동체의 사랑에 취한 이들이 이곳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게 민들레공동체의 걱정이라면 걱정일 뿐이다.
민들레국수집에 봉사하러 온 이들도 ‘민들레’의 사랑에 흠뻑 젖기는 마찬가지다. 개신교 장로인 김정택(72)씨는 매일 민들레국수집으로 나와 봉사하면서도 월 10만원씩을 내놓는다. 이 마을 주민인 박영임(61)씨는 수술한 아픈 다리를 끌고 와서도 공부방에 매일처럼 나와 동네 아이들을 거둔다. 박씨는 “이렇게 돕다 보면 아픈 것도 다 잊어버린다”며 수줍게 웃는다. 국숫집에서 봉사하던 나정애(58)씨는 이날 국숫집의 도시가스 설치비 70만원을 내놓았다. 나씨는 “이제 통장 잔고가 3만원밖에 안 남았다”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머금는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서 대표의 이런 ‘무소유 사랑’은 탐욕의 광풍이 멈춘 무풍지대 공동체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 달동네는 가난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나누지 않아서 불행하고, 나눔이 받는 자보다 주는 자를 얼마나 더 치유케 하고 행복하게 하는지를 말해주는 ‘삶의 학교’다.
‘민들레’의 홀씨는 지금도 날아 메마른 가슴에 사랑의 불씨를 옮겨놓아 부활시키고 있다. ‘민들레국수집’은 창립 10돌을 맞아 새달 2일 오전 11시 가톨릭 인천대교구장 최기산 주교가 집전하는 미사를 열고, 브이아이피 손님들과 갈비탕을 나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휴심정(well.hani.co.kr)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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