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원(원불교 안암교당 교무, 마음공부학사 사감)
[나를 울린 이 사람]
24년 전 내가 예비교무였을 때이다. 당시 11살 위 큰누나가 큰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큰누나는 결혼하여 자녀 둘을 낳고 오붓하게 살고 있었는데, 그만 임신중독 후유증으로 콩팥 두 개가 모두 망가져 평생 투석을 받지 않으려면 이식수술을 받아야 했다.
나는 기도하며 무사한 수술을 빌었다. 그런데 큰누나가 수술을 받는 날 아침, 아버지는 전화로 수술 소식을 전해듣고 울컥 흐느끼면서 “힘든 수술이라는데, 만약 네 누나 잘못되면 어쩌냐?” 하시며 갑자기 큰 소리로 우셨다.
나는 아버지를 위로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놀라고 당황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살면서 그렇게 눈물 흘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아버지는 다정다감함과는 거리가 먼 분이셨다. 항상 근엄한 모습에 감정표현도 잘 안 하셨다. 내 기억으론 아버지 품에 안겨본 적이 없다. 어릴 때 아버지는 회초리를 드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잘못한 것을 일일이 하나씩 짚어가면서 종아리를 때리셨다. 그런 날이면 나는 육신의 고통을 느끼는 감각의 작용을 아예 포기해야 할 정도였다. 어린 내게는 그처럼 무섭기만 한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큰딸의 수술을 앞두고 어린아이처럼 우셨던 것이다.
요즈음도 가끔 아버지를 찾아가 깊어져가는 얼굴 주름을 뵐 때면 그때 아버지의 첫 눈물이 생각나곤 한다. 엊그제 큰누나와 통화하면서 24년 전 이런 일이 있었노라고 그날의 풍경을 처음으로 이야기하였다. 큰누나도 많이 의외라는 눈치였다. “그랬었니? 난 전혀 모르고 있었어. 아버지께 더 잘해야겠네.” 철없는 아이의 눈에 비친 냉정한 아버지와 자식의 병고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 그 아버지들은 둘이 아닌 한 분이시다.
김제원(원불교 안암교당 교무, 마음공부학사 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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