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님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나를 울린 이 사람]
‘평신도 신학자’는 한국에서 아직도 낯설다. 개신교 신학 교수는 거의 같은 교파의 목사님들이다. 가톨릭 신학 교수는 대부분 신부님이고 드물게 수녀님이다. 불교도 비슷하지 않을까. 평신도가 갑인 종교는 없는 것 같다.
20년쯤 전에 평신도 신학자로 살아보자고, 예수도 평신도였다고, 평생의 업으로 해보자고, 어이없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막막했다. 성직자 중심의 교계 구조가 강한 한국 가톨릭에서 평신도 신학자는 단기필마로 살아야 한다.
지원도 없이 무작정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일하고 공부하자고 다짐했지만, 말도 통하지 않아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뜻이 아무리 거창해도 현실이 받쳐주지 않으면 비뚤어지기 쉽다는 것도 체험했다.
수도회원 유학생들이 너무도 부러웠다. 수도회가 가진 국제적 네트워크와 유무형의 축적된 자본은 휘황찬란했다. 수백명이 먹고살 걱정이 없고, 학비 걱정이 없고, 유복한 정신적 조건과 권위를 지닌 그들의 모임에 나는 독일 유학 9년 동안 한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격려가 좌절을 날려버렸다. 통장에 딱 37유로가 남았을 때다. 막막한 필자에게, 가톨릭 학생회(KHG)를 지도하시던 예수회 뮐러 신부님은 구원이었다. 폐쇄된 작은 학생 술집의 운영을 맡아 보라! 월·화·수 사흘만 열고 방학은 닫는, 작고 어두운 반지하 공간이었다. 나 혼자서 가난하게 공부할 만큼의 돈은 흐느낄 만큼 고마운 것이었다. 그렇게 평신도 신학자의 이상과 미래를 축복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격려하는 것도 중견 사제의 역할이라고 깨달았다. 그 이후 몇 년간은 주경야술집(!)의 생활이었다. 혀 꼬부라진 알코올 독일어는 부수입이었다. 가장 어렵다는 밀맥주 따르기가 독일 학생들에게 인정받을 무렵, 생활도 공부도 틀이 잡혔다. 언제 한번 밀맥주 대접할 기회가 되면 좋겠다. 과거의 고통을 감사하게 만드신 그 신부님은 물론이고 여러분에게도.
주원님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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