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약재를 갈 때 쓰는 전통 맷돌과 절구. 2 전통 맷돌과 절구로 커피콩을 가는 스님.
3 경남 합천 가야산 해인사 문수암에서 한문 경전을 번역하며 살아가는 원철 스님
그 자리서 자란 차나무로
잠 쫓아내던 제자들이
이젠 찻잎 대신 커피 찾으니
대세는 성인도 어쩔 수 없는 일
혀를 끌끌 차던 달마대사도
제자들의 ‘절집 스타일 커피’
내심으론 가상히 여길 터 깨 볶는 실력과 커피콩 볶는 솜씨는 같다 경남 합천 해인사 일주문 근처에서 차문화원을 운영하는 해외파 바리스타 주인장은 가마솥을 사용하여 직접 볶은 원두로 만든 것이라고 하면서 덤으로 한잔을 더 줬다. 주방의 솥 온도를 충분히 올리지 못한 까닭에 원하는 맛을 제대로 얻지 못했노라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노천의 부뚜막에 큰솥을 걸고 참나무 장작불을 이용한다면 고온도 충분히 가능하며 또 ‘불맛’까지 가미되어 상업적으로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하긴 원두 볶는 실력이나 옛날 할머니들의 깨 볶는 솜씨나 알고 보면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에도 온도와 시간의 절묘한 조화가 깨의 고소함을 좌우하는 노하우였다. 참기름을 짜는 용도와 깨소금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볶는 온도와 시간이 달랐다. 멀리서 소포로 부쳐온 커피콩은 가게에서 마신 원두에 비해 항상 볶은 정도가 약했다. 미루어 보건대 커피 역시 바로 먹는 것과 오래 두고 마실 것은 가공법에서 당연히 차이를 둔 것이었다. 깨 볶는 기계로 커피 볶는 기계를 만들다 수입품 일색이던 커피콩 볶는 기계의 국산화에 성공한 기업도 원래 깨 볶는 기계를 만들던 회사였다. 그 기계를 만들게 된 동기는 사소한 것이었다. 어느 날 방앗간 앞을 지나는데, 나이가 들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기름을 짜기 위해 손으로 오랜 시간 힘들게 깨를 볶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이후 자동으로 깨 볶는 기계를 만들어 보급했다고 한다. 세월이 흘렀다. 커피가 유행할 징조를 보이던 90년대 끝 무렵이었다. 어느 커피수입 회사의 독일제 커피기계가 탈이 났다. 제대로 수리하려면 해외에서 기술자가 오든지 그 나라로 기계를 보내든지 해야 할 형편이었다. 시간과 비용이 만만찮았다. 고심하던 회사는 재야 실력자인 그를 알아보고 수리를 요청했다. 보란 듯이 수입품을 사용하지 않고 자체 기술로 단숨에 고쳤다. 그것을 계기로 아예 그 기계를 직접 만들어볼 것을 권한 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깨 볶는 원리나 커피콩 볶는 이치는 같은 것이었다. 주저 없이 수월하게 로스팅 기계를 만들 수 있었다. 수입품 일색이던 국내 시장을 일거에 평정하고 이제 해외 시장까지 넘보게 되었다. 어쨌거나 결론은 깨 볶는 기계를 만든 아저씨는 커피콩 볶는 기계도 만들 수 있고, 깨를 잘 볶을 수 있는 아주머니라면 커피콩도 잘 볶을 수 있으며, 두부콩 맷돌을 잘 돌리는 할머니는 커피콩도 잘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한 것이라 하겠다. 대세는 성인도 어찌할 수 없다 수도원의 커피처럼 차 역시 잠을 쫓는 효능에서 시작되었다. 절집에는 달마 대사와 차나무에 대한 전설이 전해온다. 그 옛날 달마 대사가 참선을 하고 있는데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게 졸릴 때 눈꺼풀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참아도 참아도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었다. 비몽사몽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떼낸다면 졸음이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졸음을 이겨내지 못하는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서 망설임 없이 눈꺼풀을 잘라 마당으로 던져버렸다. 얼마 후 그 자리에서 새싹이 돋더니 이내 나무로 성장했다. 그리고 좁고 긴 푸른 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고 그 잎을 따서 우려 마셨더니 잠이 확 달아났다. 이것이 차나무의 시원인 셈이다. 천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제자들의 잠을 쫓아주는 커피열매가 찻잎을 대신하여 그 자리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 본 달마 대사는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대세는 성인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인지라 꾹꾹 참아야 했다. 하긴 내심으로는 제자들이 그동안 나름대로 ‘절집 스타일’의 커피를 창조하려는 노력을 가상히 여기던 터였다. 글·사진 원철 스님/해인사 문수암 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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