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 임인덕(독일명 하인리히 제바스티안 로틀러) 신부
왜관수도원 분도출판사 맡으며
‘아낌없이 주는…’ 등 400여편 내
영화와 민주화운동에도 큰 기여
‘아낌없이 주는…’ 등 400여편 내
영화와 민주화운동에도 큰 기여
한국에서 40여년 동안 종교 영화와 출판의 선구자로 활약하며 민주화에도 기여한 독일인 임인덕(독일명 하인리히 제바스티안 로틀러·사진) 신부가 지난 13일 새벽 독일 뮌스터슈바르차흐 수도원에서 병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78.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나 1955년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차흐 수도원에 입회한 임 신부는 뮌헨대학에서 종교심리학을 공부한 뒤 1965년 사제서품을 받고 이듬해 한국 왜관수도원에 선교사로 파견됐다.
고인은 1972년부터 왜관수도원의 분도출판사 사장에 부임해 20여년 동안 구티에레스의 <해방신학>과 ‘브라질의 마틴 루서 킹’이라는 돔 엘데르 카마라 주교의 <정의에 목마른 소리>를 비롯해 <아낌없이 주는 나무>, <꽃들에게 희망을> 등 400여편을 펴냈다. <몽실언니>와 김지하 시인의 <검은 산 하얀 방>, <밥>, 이해인 수녀 시인의 시집 등도 그의 손을 거쳐 출간됐다. 임 신부는 출판뿐 아니라 영화를 통해서도 영성과 시민의식을 깨웠다. 그는 <사계절의 사나이>, <나사렛 예수>, <찰리 채플린> 등 16㎜ 필름을 한국어로 더빙해 대학가와 공장 노동자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영사기를 돌렸다. 그는 특히 1987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한 골반 파열로 네 차례 큰 수술을 받으면서도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활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임 신부는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 직후 현지에서 빠져나온 신학생을 통해 ‘시민 폭동으로 네 명의 군인과 한 명의 시민만이 희생됐다’는 국내 언론의 보도가 왜곡됐음을 안 뒤 광주 현장의 증언을 밤새도록 녹음한 테이프를 서울의 성당으로 올려 보내 미사에 나눠주도록 한 사실이 발각돼 출국당할 뻔하기도 했다.
불의에 숙이지 않는 그의 남다른 정의감은 수도자로서 영성과 함께 부친의 영향으로 알려진다. 전기기술자였던 그의 부친은 나치에 반대하다가 고향에서 쫓겨났지만 한번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임 신부는 초등학교 시절 교실에서 히틀러의 사진을 가리키며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교사의 질문에 “전쟁을 일으킨 범죄자”라고 답했다가 교사가 밤늦게 집에 찾아와 그의 부모에게 “위험한 아이니 주의를 시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임 신부는 건강이 악화되자 2년 전 46년의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독일로 돌아가 치료를 받아왔다. 왜관수도원은 14일 아침 장례미사를 가진 데 이어 오는 31일 오전 10시30분에는 추모미사를 연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사진 <경향잡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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