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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마지막 미소 띠며 떠난 김사무관

등록 2013-11-19 20:00

성해영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성해영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휴심정] 나를 울린 이 사람
‘김충’ 사무관을 처음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이다. 지금은 종교학자가 되었지만, 나는 사회생활을 문화체육부 공무원으로 시작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선한 미소, 곱슬머리의 그는 내 전임자였다. 모든 게 서툴러 자주 귀찮게 굴던 나를 군말 없이 많이도 도와주었다. 더욱 친해진 건 나와 관심사가 비슷하다는 걸 알고서였다. 만화와 무협소설을 비롯해 책이라면 뭐든 좋아했고, 무엇보다 종교와 수행에 관심이 많았다.

윤회, 최면, 초능력, 유에프오(UFO), 미스터리와 같은 어른이라면 더 이상 하지 않는 얘기를 하며 소년들처럼 함께 킥킥댔다. 그래서일까. 정말 재미있는 책은 다 읽는 게 싫어 일부러 천천히 읽는 것처럼 우리는 만남을 아꼈다. 두고두고 대화의 즐거움을 만끽하려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라며 두권의 책을 갑자기 내게 빌려주었다.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와 <스베덴보리 평전>을.

그런데 한달도 안 돼 그는 전신이 마비되는 치명적인 사고를 당했다. 말을 전혀 못 했고 그저 눈만 움직일 수 있었다. 겁이 나 차마 못 가던 면회를 갔다. 한참의 입원으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그는 손끝도 까딱할 수 없었지만, 나를 보고 오랫동안 눈으로 웃어주었다. 그게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는 며칠 뒤 빌려준 책 제목처럼 침묵의 세계에 있다가, 스베덴보리가 보고 왔다는 천계(天界)로 떠났다.

사고가 나기 직전에 왜 하필 그 책들을 내게 빌려주었는지 이유를 아직도 모른다. 책은 돌려주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은 공무원을 그만두고 내가 종교학을 하게 만든 큰 이유 중 하나다. 누구 못지않게 자유롭고 유쾌했던 그는 내가 닮고 싶었던 영혼이었다. 젊은 나이에 훌쩍 저세상으로 간 그가 요즘도 가끔 생각난다. 그럴 때마다 그립다. 마지막 만남에서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의 웃음은 여전히 나를 울린다. 다시 만나게 되면 아끼느라 미처 못 했던 이야기들을 깔깔대며 나누고 싶다.

성해영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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