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종교

어머니의 아픈 마음이 밴 법복

등록 2013-12-17 19:43

[휴심정] 나를 울린 이 사람
계절이 바뀌면 아침 예불에 입을 법복을 새로 꺼내어 다려둔다. 하도 입었던지라 이젠 얇아져서 힘껏 눌러 다리니 얇은 종이 같다. 무릎도 깁고 엉덩이도 깁고 허벅지도 기워 이제는 덧댄 천 무게에 옷이 미어질 지경이다.

2008년도엔가 부산 해운대정토회 법륜 스님의 법문을 준비하러 갔을 때 어머니가 와서 마련해준 법복이다.

법문 들으러 오신 어머니는 녹음 준비하고 있던 내게 살짝 손짓해 “이따가 시간 되면 잠깐 갈 데가 있다”고 했다. 법회를 마치자마자 어머니 손에 이끌려 버스를 타고 10분쯤 가서 내린 곳이 한복 가게였다.

“얘 입을 건데요, 법복 좀 맞춥시다.”

얼떨결에 치수를 재고 나왔다. 웬 법복이냐며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어머니는 말했다. “아부지 옷 하는데 니도 하나 해라”고 했다. 날이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고 한 번씩 전화를 하는 어머니였다. 결혼도 안 하고 남들처럼 살지 않는 딸이 늘 걸리는 어머니는 그럼에도 딸이 일하는 데 방해될까봐 얼른 가라며 곧장 버스정류장으로 나를 밀었다.

다음주 법복이 다 되었다고 해서 가보니 아뿔싸! 개량한복이었다. 절에서 살며 예불하고 기도하는 이들은 스님들이 입는 법복을 입는데, 어깨와 허리에 라인이 잡혀 예쁜 수가 놓인 하늘하늘한 외출용 개량한복이었다. 어머니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주인에게 말했다.

“어짜노. 내가 말을 안 했네. 죄송합니다. 얘가 절에 살거든예. 절에서 입는 걸로 해야 하는데, 아이구, 어짜꼬.”

가게를 나와서는 엄마는 말이 없었다. ‘절에 사는 스님들이 입는 법복’이란 말을 남에게 해야 하는 게 몹시 힘드셨을 것이다.

종이처럼 얇아진 그 법복을 빨고 다릴 때면 꼭 그때 생각이 난다. 두 번 지은 법복. 절에 사는 스님들이 입는 법복이다.

남들 같지 않은 삶을 사는 딸을 둔 어머니의 아픈 마음이 밴 법복이 늘 내게 묻는 것 같다. 잘 살고 있는가. 이 법복 입고 내일 아침에도 법당 내려가 기도할 생각 하니 괜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임혜진 정토회 출판팀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