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길 신부
가신이의 발자취
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 안승길 신부
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 안승길 신부
천주교 원주교구 안승길(사진·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 신부가 24일 밤,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승을 떠났다. 향년 69. 이 죽음을 생각하면, 문득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받아들고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보았습니다”라고 탄성을 지르던 시메온이 떠오른다. 의롭고 독실한 시메온은 ‘죽음이 그늘진 땅’에서 자기 백성들에게 위로를 주는 메시야를 보기 전까지 죽을 수 없었다. 안 신부는 성탄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쉬움을 남기고 가셨다.
돌아가시기 직전 그는 후배 사제들에게 “길에서 지내던 나날들, 그 때가 나는 사제로서 가장 떳떳하고 행복했어!”라고 말했다. 그 후배들의 강복을 받고 나뭇가지에서 새가 날아가듯이, 그렇게 몸 가볍게 지상을 떠났다. 그는 늘 ‘길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용산참사 현장으로, 제주 강정마을로, 대한문으로, 삼척으로, 밀양으로 암투병을 하는 동안에도 늘 사방에서 벌어지는 길거리 미사를 봉헌하러 가는 길 위에 서 있었다.
안 신부의 사제생활은 처음부터 ‘반(反)정부’였다. 세상의 권력과 탐욕에 맞서는 투쟁 가운데서 그는 기도했다. 시국미사 중 제대 앞에서 늘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기도하는 사제를 보게 된다면, 그분이 곧 안 신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1971년 원주교구 학성동성당 보좌로 처음 사제생활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그해 10월에 원동 주교좌성당에선 열린 부정부패 규탄대회를 만났다. 지학순 주교의 주례로 시작된 미사에서는 “이제 권력만 믿고 부정만 일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악과 불의의 표본인 5·16장학회(현 정수장학회)와 이를 비호하는 부패권력은 정의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발표되었다. 74년 지학순 주교가 ‘유신헌법은 무효이고 진리에 반하는 것’이라는 <양심선언>을 발표하고 구속되자, 안 신부는 신현봉 신부를 도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을 도왔다. 원주교육원에서 열린 성직자 세미나에 모인 젊은 사제들은 단체를 결성하고, 이튿날 원동성당에서 교회사상 처음으로 성직자 가두시위에 나섰다.
이때부터 길거리는 안 신부에게 ‘또 하나의 제대’가 되었다.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데 성당과 거리가 다르지 않았다. 하느님의 백성들이 모인 곳은 어디나 거룩한 땅으로 축성되었다. 그는 “교회는 성직자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민중)을 위해 존재한다. 그 백성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구원이 나의 사명”이라고 믿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는 야전병원”처럼 상처받은 이들을 싸매주는 곳이 되어야 하며, 성직자는 실험실이 아니라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이르신 것처럼, 그에게 현장은 곧 하느님을 발견하고 자신의 신앙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여기서는 ‘정치’마저도 성화된다. 새만금 해창갯벌에서 삼보일배를 시작하고, 평택 대추리와 용산 남일당에서 언 손을 모아 기도하고, 대한문에서 촛불을 밝히는 동안, 안승길 신부는 ‘길에서 오히려 행복했다.’ 27일 오전 10시 원주 주교좌 원동성당에서 장례미사가 봉헌된다.
한상봉/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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