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뫼농장 식구들이 차린 정 신부의 환갑 잔치날. 정 신부는 '진짜농부'의 길을 걷기 위해 농촌정착을 결심했다. 이상엽 사진가 제공.
하나.
97년이나 98년 일게다..정일우 신부님은 당시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있는 예수회 누룩공동체에 계셨다.
수사로 있을 당시 그곳을 방문해서 며칠을 머무르곤 했다. 젊은 예수회원들뿐만 아니라 많는 사람들이 자주 신부님을 찾아왔다. 공동체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신부님은 자주 막걸리에 취해 얼굴이 불그스레했다. 그러니 농사를 짓는다고 했지만 매년 이익을 내기는커녕 적자인 게 당연했다. 지금 생각하면 신부님은 ‘사람 농사’를 지으셨던것 같다.
한번은 신부님께서 미사를 드릴 때 포도주가 떨어져 막걸리를 사용하셨다. 신부님께서는 예수님이 한국에 태어나셨더라면 막걸리로 분명 미사를 드렸을 것이며 아일랜드면 위스키로 중국에서는 빼갈,일본이면 사케였을 것이라고 하셨다.
마포 공덕동에 계실 때는..
신부님께서는 이미 동네 빵집에 누룩 안든 빵을 특별주문해서 성체로 사용하시기도 하셨던터라..
머리로는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마음은 불편했었다…많이….
“그래도…그래도…예수님의 핀데…”라는 말을 되뇌이며 신부님의 주장을 궤변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머 일종의 ‘서양 땡중’이라고 여겼던것 같다. 지금은 신부님의 그 생각이나 행위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과연 막걸리로 미사를 드릴 수 있을까?’하면 못하겠다.
신부님의 그 큰 마음은 흉내낼 수 있는게 아닌듯 하다.
둘.
괴산의 낡은 집 마루턱에 담배를 태우시며 걸터 앉아 계시면서 그 특유한 억양으로 내게 물으셨다.
“만영아~ 사람이 무엇이요?”
뜬 구름 잡는 질문이었다.
나는 신부님을 웃으며 쳐다보면서 “글쎄요...잘 모르겠는데요...” 했다. 사실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이게 무슨 질문이야..물을 것을 물어야지..’하는 마음이었다.
신부님은 그런 나를 다 아셨던 것인지…. 니코틴으로 변색된 누런 이를 들어내 보이시며 실실 웃으셨다. 사실 이빨뿐만 아니라 콧수염도 담배 연기에 누렇게 물들어 있기도 했다.
오늘 아침 신부님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신부님의 그때 그 웃으시는 얼굴과 함께 울컥하며
‘젠장 아직도 모르겠네..당신은 사람이 무엇인지 알고 물었나?’ 하는 마음의 소리가 난다.
셋.
한달 전 즈음 병원에 계시는 신부님을 방문했다.
당시에도 신부님은 한번 위독한 시기를 넘기셨다.
“신부님 저 왔어요…” 하는 말에 “예…” 라고 대답하셨다.
신부님을 이리저리 보며 혼자 말을 하다 “신부님 기도해 드릴까요?”라는 말에 “예,기도해주세요…” 하셨다.
두 눈을 꼭 감은 신부님의 손을 붙잡고
속으로 “하느님 정일우 신부님의 이 고통을 끝내주시고 당신 곁으로 어서 데려가세요…” 라고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근 10년의 투병 기간중 2년여간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기도를 한 밤에 몹시 괴롭고 후회를 많이했다. 몹쓸 기도를 한 내 자신이 미웠다.
병실을 막 나오면서
“신부님, 이강서 신부님 보고 싶어요?”라고 물었더니… “예 보고 싶어요…”라는 말에 이강서 신부님에게 연락을 드렸다.
이 대화가 또렷한 의식을 가진 신부님과 내가 이승에서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넷.
신부님의 별명은 “능구”이시다.
사람을 마음속 같이 바라보시는 눈빛이나 생각하고 하시는 말씀들을 듣고 있으면 신부님 마음안에 능구렁이가 한 두 마리도 아니고 수백만마리가 들어 앉아있는 듯 했다.
해서 언젠가부터 신부님을 “능구렁이”를 줄여 “능구”라고 부르곤 했다.
이런 별명을 들을 때마다 신부님은 예의 그 징그러우면서도 해맑고 능구렁이같은 웃음으로 화답하셨다. 누런 콧수염과 니코틴낀 이빨을 다 들어내 보이면서 말이다. 그 별명을 신부님도 싫어하지 않으신듯 했다.
다섯.
신부님을 알고 지낸 이후 한번도… 심지어 병원에 계실 때조차 몇번이나 작별인사를 했으면서도 “신부님 사랑해요…”라는 이 말을 못했다.
동기 신부가 “능구 사랑해요” 라며 마지막 작별인사를 귀에 대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순간 ‘나도 할걸…’ 하는 생각이 잠시들었지만 신부님은 내 마음을 아실 게다.
내가 굳이 하지 않았어도.
신부님이 누구신가? “능구”이지 않은가…
“만영아~사람이 무엇이요?”라는 질문에 이젠 답할 수 있겠다.
“신부님은 능구요,능구!”
예수회 정만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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