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우 신부 영결미사
‘빈민사목’ 정일우 신부 영결미사
500명 참석 추억담 끝없이 이어져
500명 참석 추억담 끝없이 이어져
정일우 신부(미국명 존 데일리)가 우리 곁을 떠났다. 세상에 온 지 79년, 한국에 온 지 54년 만이다. 그러나 떠난 것은 그의 육신 뿐이었다. 4일 오전 8시30분 서울 신수동 예수회센터 성당에서 봉헌된 영결미사(사진)는 그가 더 생생히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예수회 소속 등 사제 50여명과 수도자 200여명 등 500여명이 함께 한 마지막 미사에선 병석에 누워 있던 말년을 빼고는 평생을 빈민, 약자들 속으로 들어가 함께 살며 일하고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밤새워 놀고 이야기하던, 너무도 평범한 이웃이자 특별한 영성가였던 고인에 대한 추억담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미사를 주례한 한국예수회 관구장 신원식 신부는 “정 신부님은 8일간 피정을 하고 나면 늘 5일동안 설사를 했는데 아마 그동안 빨아들인 세상의 독을 피정하면서 내보내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며 “그분이 하느님 나라에 가시지 못한다면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장담했다.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는 “누군가 ‘예수회 창립자 이냐시오 성인이 보편교회에 준 선물이 프란치스코 교황이다’라고 한 말을 들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 못지 않은 최고의 선물이 바로 정 신부님”이라고 말했다.
이날 강론은 같은 미국인으로 고인과 빈민사목을 함께한 박문수 신부가 맡았다. 그는 “유신 초기 엄혹한 시기에 정 신부님이 혼자 광화문에 나가 영문으로 ‘한국이여 슬프네. 언론 자유가 죽어가네’란 푯말을 들고 서 있었다”며 “예수회 수련장 시절 수련자들에게 꼭 시위 현장과 달동네를 체험해보도록 권유했다”고 말했다.
서울 상계동 빈민가에서 고인과 빈민 활동을 함께 한 손인숙 수녀(성심수녀회)는 “정 신부님은 ‘어디를 가든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그들과 함께 살아라’고 했다”며 “움막이든 처마밑이든 가리지 않고 자고 생활했던 정 신부님은 때때로 가난한 사람들과 똑같이 악도 쓰고 화를 내기도 했는데,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가진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정 신부와 함께 빈민운동을 했던 고 제정구씨의 부인인 신명자(복음자리 이사장)씨는 “신부님은 아이들과 물장난을 쳐 온집안을 난장판을 만들어놓던 개구쟁이였고, 사람들과 날밤을 새워 이야기하고, 온종일 어울려 춤을 추는 끼가 넘치는 분이었다”며 “무엇이든 온전히 몽땅 줘버리는 그 분의 영성과 자유로운 품 속에서 부족한 우리들이 커왔다”고 눈물을 흘렸다.
지난 2일 선종한 고인은 이날 경기도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에 묻혔다. 그를 보내며 모두들 고인의 천국행을 확신했다. 하지만 정 신부는 가난하고 슬픈 영혼들의 특별한 친구로서, 그들에게 행복과 기쁨을 안겨주며 세상에서 천국을 살았다. 그래서 그들의 가슴에 별로 남았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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