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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한국교회가 교황 말씀에 응답할 차례

등록 2014-08-27 20:29수정 2014-08-27 22:29

[교황 방한 이후 우리의 길]
연속기고ㅣ김희중 대주교 천주교광주대교구 교구장
2014년 8월, 우리나라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4박5일 여정은 한 종교의 차원을 넘어서서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감동을 남겨주었다. 교황의 방한은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청량제가 되었으며 기쁨의 여운으로 기억될 것이다. 기억을 그리스도교적인 개념으로 해석하면 ‘과거의 현재화’라고 표현할 수 있다. 과거 소중한 기억의 조각들을 되살려 현실을 풍요롭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 때 기억은 새로운 미래의 힘이요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한국방한 동안 교황은 밑바닥까지 뿌리내린 세속화된 우리의 모습을 직시하여 쇄신하는 용기를 지니도록 끊임없이 기도하며 일깨워주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주교들에게 ‘기억의 지킴이’와 ‘희망의 지킴이’가 되어달라고 당부하셨다.

김희중 대주교 천주교광주대교구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천주교광주대교구 교구장
우리 모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온화한 미소와 탈권위적이며 소탈하고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그 분의 모습을 만나면서 깊은 영혼의 울림으로 다가왔다. 주교회의를 방문하신 기념으로 서명을 부탁드렸는데 큰 종이에 아주 작은 글씨로 단순히 “Francisco” 라는 이름만 쓰셨다. 그것은 본인이 내세울 것 없는 아주 작은 존재라는 뜻에서 표현하신 것이리라. 교황은 자신의 신분이나 소임을 내세워 윗자리로 대접받고자 하지 않았다. 꽃동네에서 장애아의 율동을 보실 때도 높은 자리를 마다하시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에서 눈높이를 맞추셨다. 가장 가난한 자에게 당신이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먼저 눈을 맞추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위로의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신 말씀 중에 많이 표현하신 언어는 ‘사랑’, ‘마음’, ‘한국’, ‘사람’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구체적인 삶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었던 말씀이었다. 한국이라는 말도 많이 사용하셨는데 우리국민을 깊이 사랑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씀이라 생각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함께하는 배려’로 사랑을 낮은 곳에서부터 실천하시는 분이시다. 한국을 떠나시는 날 교황은 방한기간 중에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교통경찰 60여명을 당신이 머무셨던 대사관에 초대하여 깊은 감사의 인사와 따스한 손길을 나누시고 사진도 찍어주셨다. 그가 누구이든지 언제어디서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자 하셨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그 분 마음의 첫 자리에 놓여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격식과 관행과 규정보다 본래적 가치의 고귀함을 잃지 않는 구체적인 사랑으로 함께 하고자 함이 아니겠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 사회의 어떠한 가치보다 우선적으로 ‘사람’이 중심이라는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그리스도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사고는 바로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을 담고 있는 보이는 ‘사람’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섬기며 사랑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교황이 언급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의 여러 가지 말씀들은 바로 위와 같은 네 가지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살리는 하나의 구체적인 사례들 가운데 하나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 모두가 화해의 도구가 되도록 당부하신 것은 막연한 감상적 차원으로 본 화해의 도구가 아니다. 불복할 수밖에 없는 사회의 제반 제도나 관행에 대한 쇄신과 변혁을 위해 적극적으로 연대하여 사회갈등을 치유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데 적극 나서라는 권고 말씀이다. 이러한 현실을 방치할 경우 ‘정글의 법칙’에 따라 사회의 비인간화를 촉발하여 죽음의 문화라는 소용돌이에 모두가 휘말릴 수 있는 위험이 내재되어 있음을 보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떻게 증시가 2포인트 떨어지면 뉴스가 되고 노숙자가 거리에서 죽어가는 건 뉴스가 되지 않는가. 어떻게 사람들이 굶어죽어 가는데 음식을 내다버리는 일을 참고 지켜볼 수 있는가”라고 개탄하였다. 인간의 존엄성을 최소한으로라도 지키는데 위협을 주고 있는 경제위기의 배경엔 돈을 우상화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맘몬주의가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인간이 목적이 아니라 소비의 한 단위로만 다루는 소비사회의 경제시스템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교황의 말씀에 응답해야 할 차례이다. 사회 구조악으로 인해 여러 가지 폭력으로 고통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 장애인, 이주민, 난민, 편견의 그늘 밑에 살아가는 다문화가정에 어떻게 교회가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품고 가야하는지, 교황의 방한이 우리에게 남겨준 커다란 과제이다.

희망의 지킴이가 됨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로서 성직자들로부터 시작하여 교회구성원 개개인 모두가 사회의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예언자적인 증거의 삶을 구체적으로 드러낼 때 비로소 아름다운 기억의 현실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김희중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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