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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숨긴 실탄을 거두어준 심상병

등록 2014-09-30 19:39

나를 울린 이 사람
요즈음 병영 사고가 주요 뉴스를 채운다. 내 그 시절은 26년이 지났다. 약 120명의 사병들이 근무하는 본부대는 경비대, 군악대, 관리대 등 특기가 다양했다. 내무생활엔 사소하게 충돌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졌다. 집합과 구타가 상응했다. ‘이곳은 어디며,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새벽에 눈을 뜨면 내가 누운 내무실과 산등성이에 철책을 치고 등을 켠 채 잠든 이 부대가 늘 낯설고 생경했다.

집합은 주로 ㅂ병장에게서 시작되었다. 상병 시절 폭행사건으로 영창까지 다녀온 그였지만 여전히 내무실의 스탈린이었다. 그가 집합을 걸면 열중쉬어 자세로 눈을 감기는 것이다. <양들의 침묵>같이 잔인한 행사였다. 눈을 감고 바짝 긴장을 하고 있으면 그의 침착한 목소리와 군홧발 소리만 내무실을 울렸다. 어디선가 소리가 멈추면 주먹이 날아오는 것이다.

어느 날 야간사격훈련 때 나는 M16 실탄 두 발을 몰래 주머니에 넣었다. 묻지도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순간적 행동이었다. 푸시킨의 <그 한 발>에 나오는 빚갚음의 ‘그 한 발’을 생각했던 것인지, 지금 와서는 아주 모르게 됐다.

몸살을 앓던 날이었다. 과업 정렬 때 ㅂ병장이 말했다. “요즘 쫄병은 기합 빠져 몸살도 걸린다.” 모포를 뒤집어쓴 채 누웠지만 가시방석 같은 열외였다. 당장 오후에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어, 오한 든 몸만큼이나 그냥 이대로 딱 죽었으면 싶은 마음이었다.

주머니 속 실탄을 만지작거리며 ‘그 한 발’을 생각하는 중에 심 상병이 들어왔다. 평창 대화가 고향이라는 그는 느긋한 강원도 사투리에 수줍음을 잘 타 간혹 놀림감이 되기도 했지만 기수별 구타가 꼭 그에게서 멈추곤 했던 선임이었다. 그는 델 만큼 뜨거운 ‘광동탕’ 두 병을 내 손에 쥐여줬다. “다 마셔라.” 광동탕을 삼키다 나는 울컥하고 목이 메었다. 눈물이 뜨거웠다. 심이 중늙은이 혼잣말하듯 위로했다. “뭘, 이딴 걸로 눈물까지 흘리나? 대한민국 사내새끼들 다 하는 거 아니나? 쫌만 참아라. 다 지나간다.” 그날 나는 나로서도 풀지 못한 ‘그 한 발’의 비밀을 그에게 털어놓았다. 그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하아~, 니 정말 희한한 놈 아니나? 지 생각만 하는 놈 아니나? 어머니 생각도 안 해봤나?” 그러고는 내게서 실탄 두 발을 거두어 갔다.

천정근(안양 자유인교회) 목사
천정근(안양 자유인교회) 목사
‘칼이 보습이 되고 창이 낫이 된다’(<이사야> 2:4)고. 탄피를 제거하고 난 탄알은 두 개의 금목걸이가 되었다. 그 하나를 심은 애인에게 주라며 내 첫 휴가 선물로 주었다. 나는 그 목걸이를 어머니께 드렸다. 심재원 상병,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천정근(안양 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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