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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때리는 자도 아프다

등록 2014-11-25 19:54

쉼과 깸
작년 말 땅끝마을 대흥사 일지암 산중에 들어오면서 이웃에게 나의 결심을 선포한 게 있다. 그것은 한 달에 십일 이상 암자를 이웃과 나누어 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근의 해군부대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일공 법사와 협약을 맺었다. 사병을 위한 템플스테이가 그것이다. 덕분에 고요한 산중은 청춘의 발걸음이 깃들고 활기가 넘쳐난다. 암자는 큰 절과 다른 독특한 분위기와 멋이 있다. 절인 듯, 별장인 듯, 시골집인 듯 한 그런 공간이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안온하고 평화롭게 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정직하게 내면을 바라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템플스테이에 7명의 사병이 참가했다. 처음엔 그들이 이른바 ‘관심사병’인 줄 몰랐다. 착한 눈과 다소 수줍은 표정을 한 그들은 여느 청년들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들이 자살과 자해를 시도한 사병이라는 사실을 알고 가슴이 아프고 저렸다. 동시에 노심초사하고 애태우고 있을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 사랑은 아픔에 대한 공감에서 출발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들과 같이 지내면서 이들의 문제는 어느 한쪽에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를 일으키는 환경이 존재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있다’는 연기법의 이치는 어디에나 통한다. 우리는 피해자와 같이 가해자에게도 관심과 애정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가해자는 부도덕하고 악한 사람이라는 선악의 이분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가해자에 대한 극한 징벌만이 해법이 아니다.

맞는 자도 괴롭지만 때리는 자도 마음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된 이치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분노와 멸시로 가득 찬 마음이, 친구를 괴롭혀 자신의 불만을 해소하고 쾌감을 얻는 그 마음이 어찌 진정 행복하다 할 것인가? 선량한 사람이 피해를 당하는 환경과 함께 가해자가 생겨나는 환경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한 사람의 가해자가 생겨날 환경을 만들면 우리 모두 그 환경에서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위험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심이 깊은 어느 장군이 당장에 눈앞에서 지옥과 극락을 보여 달라고 고승에게 간청했다. 고승은 지옥과 극락을 보여준다고 하고서 주장자로 사정없이 장군을 후려친다. 많은 매를 맞은 장군은 분노가 극에 달해 칼을 뽑아 고승을 해치려 한다. 그때 고승이 말한다. “지금이 지옥이다.” 내가 이성을 잃고 큰스님을 죽이려 했다니, 장군은 정신을 차리고 크게 뉘우친다. “스님, 제가 그만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그때 고승이 답한다. “지금이 극락이다.”

법인 스님(일지암 암주)
법인 스님(일지암 암주)
지옥과 극락은 현실 너머 사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생각과 증오가 곧 지옥이고 바른 생각과 배려가 곧 극락이다. 때리는 자도 무지와 증오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그대로 지옥이다. 타인을 가해하는 즉시 자신도 피해자이고, 타인을 사랑하는 즉시 자신이 사랑의 수혜자라고 하는 사실 앞에 모두가 함께하면 좋겠다.

법인 스님(일지암 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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