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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사람들 안에 있는 하느님의 거처

등록 2014-12-09 19:36수정 2014-12-10 11:17

쉼과 깸
박해가 끝나자 구원의 확실한 보증인 순교의 길 역시 막혔다. 길이 끊기자 중세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구원된 이들의 흔적을 더듬어서라도 구원에 이르길 열망했다. 순교자들의 유해가 발굴되고 피로 물들었던 형장 위에 멋스런 성전이 지어졌다. 뼛조각과 마른 장부들이 고가에 거래되었고 무수히 쪼개져 견고한 함과 제단의 초석으로 모셔졌다. 구원이 화려하고 견고한 함 따위에 담길 리 없고, 세속적 열망으로 지은 집에 하느님이 기거할 리 만무하다.

마땅한 거처가 없는 것은 하느님이나 그를 닮았다는 인간이나 마찬가지다. 입주자의 모욕적 언사에 세상을 등진 아파트 경비원의 안타까운 사연이 채 잊히기도 전에 동료 경비원 전체가 계약해지 당했다. 무덤하게 이를 전하는 신문 활자에서 눈을 떼지 못한 것은 세상의 무자비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옹색하게 남루해진 우리 삶의 거처가 생각나서다. 산다는 것은 윤리적 판단의 내용이 아니다. 사는 것만큼 무구한 욕망이자 숭고한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과거에는 말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올곧고 양심 있는 자라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를 알았든 몰랐든 상관없이 입주자인 이유로 이 상처의 가해자다. 사는 것이 그저 사는 것만으로 결백할 수 없는 시절이다. 고단한 삶의 내밀한 안식처, 저마다의 지성소는 어느새 양심을 시험받는 자리가 되었다. 입주자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연유다. 집을 잃은 것은 하느님만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허공에 집을 지었다. 전광판 위, 공장 굴뚝 위, 마치 지상에는 더 이상 안전한 거처가 없다 웅변하듯 앞다투어 하늘에 매달렸다. 그때마다 저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단 하나였다. 여기 사람이 있다!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폐허 위에 다시 집을 짓는 일이었다. 사람들을 위한 집과 하느님의 거처, 성전의 재건이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볼품없이 재건된 성전은 로마 제국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더 이상 하느님은 사람이 지은 집을 거처로 삼지 않으셨다. 하느님 자신을 위한 새롭고 ‘유일한’ 집은 이제 ‘사람’인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수, 몸소 인간 안에 깃든 하느님, ‘강생’의 의미다. 이로써 살기 위해 죽기를 각오한 저 허공 위에 매달린 이들의 극한의 외침은 숭고하다 못해 종교적이다. 보라 이 사람을! 엑체 호모!(요한 19, 5) 가장 인간적인 언어가 구원의 언어로 거듭나고, 저 밑바닥 아무렇게나 버려진 말들이 자신의 창조주를 닮은 사람에 의해 다시 빛나는 언어로 제련되는 순간이다. 인간의 절규 속에 다시 자신의 집을 짓는 하느님의 소리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묵시 21, 3)

장동훈 신부, 인천가톨릭대 교수
장동훈 신부, 인천가톨릭대 교수
집 잃은 인간과 하느님에게 허락된 유일한 거처는 결국 ‘사람’이다. 우리가 인간이 된 신의 사연을 한낱 허망한 이야기로 듣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고, 성탄 나무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이들을 기억해야 하는 까닭이다. 저 높고 비좁은 곳에 집을 지은 것은 인간만이 아니었다.

장동훈 신부, 인천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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