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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가피 영험이 쏟아지는 비법, 그대는 아는가”

등록 2015-03-31 19:59수정 2015-04-01 14:55

좋은 일을 하는 것이 극락을 만드는 일이라는 무원 스님이 최근 삼광사 경내에 쉼터로 조성한 백천공원 안 다리에 서 있다.
좋은 일을 하는 것이 극락을 만드는 일이라는 무원 스님이 최근 삼광사 경내에 쉼터로 조성한 백천공원 안 다리에 서 있다.
삼광사 무원스님의 나눔 수행
부산시 부산진구 초읍동 131 백양산 기슭 삼광사는 거찰의 상징이다. 천태종 삼광사는 1982년에 세워져 30여년 역사에 불과하지만 천년고찰인 조계종의 부산 범어사나 양산 통도사 못지않은 신자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초고속 성장을 하는 종교단체들은 급증하는 신자들을 수용할 대형 건물을 짓는 데 주력하기 때문인지 천년고찰이나 성당이 가진 여유와 여백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삼광사도 그랬다.

그런데 최근 전에 없던 멋진 정원이 생겨났다. 백천공원이다. 조그만 연못 위에 그림 같은 다리와 정자까지 어울려 있다. 그야말로 108계단을 올라오느라 몰아쉰 숨을 내뿜고 쉬기에 그만이다.

천태종은 신자들이 기도실에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끊임없이 외는 관음주력신앙을 하는 종단이다. 이처럼 신자들이 눈을 감고 내면의 관세음보살을 찾는 데만 집중해왔기 때문에 사찰의 경치나 쉼터는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았다. 삼광사엔 기도주간이면 무려 3000여명이 동시에 밤샘 기도를 하지만, 이들이 산책을 하거나 쉴 만한 벤치 하나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삼광사에 현 주지 무원(57) 스님이 2년 전 부임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총무원장 직무대행에서 자리를 옮겨 온 그는 ‘힐링 사찰’을 표방했다. 다양해진 신자들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함이다. 이에 따라 대웅보전 뒤쪽 편백나무 숲엔 나무계단을 설치해 그 위를 산책할 수 있는 숲길을 조성했다. 대웅보전에서 참배한 신자들이 편백나무 숲길을 걸어 사찰 맨 꼭대기의 정원인 자비동산까지 10~20분 동안 걸으며 성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무원 스님은 아침 8시면 출근을 앞둔 직장인들과 이 길을 오른다. 그리고 밤 9시면 일주문에서 백천공원까지 108계단을 오르는 묵언수행을 이끈다.

국내 최대 기도 도량 부산 삼광사
나눔 보시의 산실로 변화 바람
쉼과 여유 있는 힐링 공간으로
사찰 가꾸는 데서 나아가
새로운 극락문화 설파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
그것이 부처의 진리다
외롭다 말고 남 도우면
행복이 쏟아진다”

천태종의 본산인 구인사만을 오가던 신자들이 다양한 순례를 경험하게 한 것도 변화라면 변화다. 무원 스님은 신자들과 함께 조계종의 천년고찰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와 동학혁명 순교지, 유교 향교 등도 순례했다. 종교인 연합기구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부산지역 대표다운 모습이다. 삼광사 신도들이 이웃 종단과 종교에 대한 편협함 대신 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천태신앙을 다졌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는 석가모니가 출가한 출가절과 열반한 열반절에는 신자들과 동해 정동진까지 가 해맞이를 하며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한다. 이날도 무원 스님은 9량의 기차를 빌려 340명과 무박 2일로 정동진으로 떠났다.

삼광사의 변화는 이런 외면만이 아니다. 이런 외적인 변화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내적인 지각변동이 지금 삼광사에서 일어나고 있다.

“왜 영험을 받으려고만 하느냐. 삶에서 영험을 만들어내라.”

몇날 며칠, 아니 백일, 천일을 빌고, 주문을 외워서라도 영험 가피를 입고 싶은 삼광사 신자들로선 귀에 익은 소리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한발 더 나아간다.

“좋은 일을 해야 좋은 일이 생긴다. 좋은 일을 한번 앞장서서 실천해보라. 마음 아픈 가족뿐 아니라 주위 어려운 사람을 도와줘보아라. 그러면 내 마음이 자라고 커지고, 우리 주위도 극락이 된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방광(빛을 발함)이다. 그것이 바로 영험이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이 부처님의 인과법이다. 그러니 그 좋은 일을 해 극락문화를 확산해 우리의 고통을 줄이고 기쁨을 늘리는 것만큼 큰 수행이 어디에 있겠는가.”

부산 삼광사의 전각들
부산 삼광사의 전각들
여전히 삼광사 수행의 주축은 관음주력이다. 그런데 그 기도의 힘이 외적 봉사로 이어지고 있다. 그가 부임하면서 청년 회원들이 홀몸노인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쌀과 먹거리를 나눠주는 봉사를 시작했다. ‘부처가 금불상 돌부처로 앉아서 중생들이 오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이제 부처가 힘든 중생을 찾아다니는 시대’라는 무원 스님의 가르침에 따른 실천이다.

삼광사의 색소폰힐링연주단은 ‘누이가 좋아야 매부도 좋다’는 무원 스님식 인과법의 구체적인 사례다. 할아버지, 할머니 신자들이 색소폰을 연습해 병원과 경로당 등을 찾아다니며 인기를 끌고 있다. 더구나 색소폰을 하면서 폐활량이 커져 건강까지 좋아지고, 봉사의 기쁨으로 인한 영험이 크다는 소문이 나면서 연주단은 1·2·3기를 거쳐 4기까지 결성될 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다문화인을 돕는 데 주저하던 삼광사 신자들이 이제 다문화인의 뮤지컬단과 베트남인의 법회를 지원하는 데 선뜻 나서게 된 것은 나눔이 가져다주는 영험의 맛을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극락문화의 확산은 경내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부산지역의 유지들에게도 그런 나눔문화의 동참을 호소하고 나섰다. 그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부산·경남 지역 대표다. 부산·경남 지역은 지금까지 북한 돕기를 가장 경계해온 지역 중 하나였다. 그러나 무원 스님이 대표를 맡은 뒤 동참자가 급증하고 있다.

무원 스님이 애초부터 비정부기구(NGO)를 대표할 만큼 활수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도 10여년 전까지는 구인사에서 수행만 해온 전형적인 산골 수행자였다. 그런 그가 종단의 대외 업무를 맡으며 서울에 나와 세상의 변화를 보게 되었다.

“정신적인 고뇌가 심한 요즘 젊은이들에게 경전 설법만으로는 공감을 얻기 어려웠다. 젊은이를 비롯한 대중은 경전의 이론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경험과 삶의 노하우를 듣기 원했다.”

그런 경청이 그가 사찰 내 수행만이 아니라 생동하는 삶의 현장을 간과하지 않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는 더 큰 대승보살도를 실행하고 싶은 생각이 자신만의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다.

“불교계 스님들 중에서도 쑥스러워서, 부끄러워서, 체면 때문에, 아니면 어떻게 할 줄 몰라서, 남을 돕는 일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분들이 한둘이 아니다. 돈이 있는데도 돈을 어떻게 써야 잘 쓰는 것인지 모르는 분들도 많다. 또 돈이 없다고 그런 일을 못 하는 것도 아니다. 나눔, 보시, 자비란 돈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좋은 마음을 쓰는 것이 결국 봉사고, 실천이고, 보살행이고, 부처행이다.”

무원 스님은 지난 2년 동안 신자들과 나눔문화를 실험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좀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그는 서울 관악구 청룡동 명락사 주지 시절 새터민과 외국 이주민을 위해 음식을 나눠주고, 한국 음식 만드는 법과 한글을 가르치는 학교도 열었다. 그때 무엇보다도 신자들의 호응이 의외로 컸던 게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새터민·이주민 자녀들의 인연을 맺어주는 결연 사업이었다. 처음엔 얼굴색이나 말투가 다른 아이들과 인연을 맺는 걸 꺼리던 노인들이 아이들과 인연을 맺자 “자식들도 노인을 외면하는 세상에 귀여운 자식, 손주들이 생겨 외로움에서 벗어났다”며 새 손주들을 도우며 행복해했다. 그는 그 경험을 살려 부산에서도 결연 붐을 일으켜볼 꿈을 꾸고 있다.

무원 스님은 “사회복지는 정부나 자선사업가만 하는 게 아니다. 극락은 우리 모두가 서로 도우며 사회복지를 실현해가는 것이다. 외롭다고만 할 게 아니라 자매, 형제, 손자, 손녀를 만들어 돕다 보면 외로울 새가 없어진다”며 보살의 너털웃음을 지었다.

부산/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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