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필 평택시 팽성읍 송화2리 이장이 동네 하늘을 떠다니는 미군 헬기로 소음과 진동 피해를 입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고막이 찢어질 지경인데 대체 돈은 어디에 쓰는 거야…”
20일 낮 경기 평택시 서탄면 회화리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주민 김아무개(75)씨 등은 미군 전투기가 굉음을 내자 귀를 틀어막은 채 웅얼거렸다. 80여 가구가 사는 마을 앞 진위천 너머에는 K-55기지가 있다.
50여년을 이 곳에서 살아온 김씨는 “죽지 못해 사는 거야. 시에서 소음 없앤다고 나무를 심었는데 여름에 많이 죽었어”라며 화를 냈다. 진위천 둑에는 높이 4∼5m의 메타세쿼이아가 4m 간격으로 일자로 서 있다. 평택시가 4억여원을 들여 서탄면 적봉교와 세월교 사이 3㎞에 조성했다는데, 말이 방음림이지 방음 효과는 전연 없었다.
이곳에서 승용차로 30여분 떨어진 팽성읍 캠프 험프리(K-6)는 밤낮없이 뜨고 내리는 미군 헬리콥터들로 난리다. 기지에서 1㎞ 떨어진 팽성초등학교에서는 헬리콥터 소음에 미군들의 사격 소음까지 겹치면서 대화가 끊겼다.
문아무개(42) 교사는 “수업 중 시를 읽는데 갑자기 ‘따다다다’ 소리에 애기를 못한다. 체육수업 중에는 머리 위로 헬기가 날아가고…”라고 하소연했다. 참다못한 팽성초 총동문회 등은 “창문이 흔들릴 정도의 소음과 진동으로 수업이 중단되고 피해가 심한 2층 교실은 교사의 말이 전달되지 않아 수업 활동을 변경할 때도 있다”며 실내체육관 건립 요구서를 냈지만 거부됐다. 평택시 관계자는 “체육관 건립은 교육청의 교육사업이지 방음 사업이 아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평택시가 1100억원의 방음 사업비를 소음 피해와 상관없는 지역으로 빼돌리면서 정작 소음 피해 지역 주민들의 고통은 외면한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팽성초 동문인 이종수 해병대 평택시지회 회장은 “(학생들) 피해가 너무 크다. 지금도 이렇게 사격하고 (헬기) 소음도 있고. 말로만 해준다고 하지 예산은 다른 데 쓰고 (이게) 말이 되냐”고 말했다. 이 학교 동문회 김기상 사무국장은 “다른 데 돌린다는 예산이 1100억원인데 체육관 짓는 비용은 27억이다. 돈이 큰 것도 아니고 아이들 교육환경 개선이 우선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평택시는 이날 언론브리핑에서 “1800억원의 방음비 중 1100억원을 지역개발비로 쓴다”고 밝혔다. 1800억원은 국방부가 2006년 소음피해 영향도를 75웨클(WECPNL·항공기소음 평가단위) 이상으로 정해 2만6413세대의 가구의 방음시설사업비로 책정한 돈이다. 하지만 평택시가 소음피해 영향도를 80웨클로 축소하면서 피해 가구도 1/5 수준인 4762세대로 줄고, 사업비도 1100억원이 줄었다. 반면 평택시가 소음피해 지역 주민을 위해 지난 10년간 쓴 방음 사업비는 47억원이 전부다. 대신 1100억원은 K-55기지 정문 앞 도로 신설·확장과 팽성대교 확장, 근내∼원정 도로확장, 오성 농업생태공원 조성에 쓰인다.
시 관계자는 “군 소음법 제정기준에 맞추어 방음 사업을 추진하려 했으나 관련법 제정이 지연됨에 따라 19대 국회 정부 입법안 기준인 80웨클 범위로 방음 사업을 우선 시행하도록 사업비를 조정했다”고 말했다.
박환우 평택시 의원(국민의당)은 “방음 사업비는 방음시설 설치와 피해 보는 주민 보상이라는 2가지 성격을 지니는데, 평택시의 전용은 이 둘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피해 지역 주민들의 고통을 줄이는 데 돈을 써야 한다”고 비판했다.
평택/글·사진 홍용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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