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 1주년인 2013년 12월19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성공회대성당 앞에서 한신대, 성공회대 등 5개 신학대 학생들로 구성된 '민주주의를 위한 신학생 연합' 학생들이 시국선언을 한 후 기독교회관을 향해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파문’에 대한 통렬한 지적을 담은 전국 신학생들의 시국선언문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다.
감리교신학대, 장로회산학대, 한신대, 서울신학대, 성공회대, 연세대, 총신대, 에큐메니컬 등 전국의 신학대학 학생들이 모여 구성한 신학생시국연석회의는 지난달 18일 신학생시국연석회의 시국선언문을 펴냈다. 시국선언문은 사도 바울 일행이 귀신 들려 영험한 능력으로 점을 치는 여종을 마주친 성경 속 일화에서 시작한다. 사도 바울은 이 여성에게 붙어 있던 귀신을 쫓아냈는데, 문제는 이 때문에 돈벌이를 잃은 여종의 소유자들과 주민들이 바울 일행을 매질하여 감옥에 가둔 사건이 발생했던 것. 신학생들은 “이 일화를 통해 바울은 귀신들린 여종을 통해 돈을 버는 사회를 바라보지 않고 그 귀신만 쫓아내면 된다는 오만했던 과거에 영향받아 유독 겸손을 강조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어 “특검이니 탄핵이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정말 분노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며 “그들은 최순실이라는 귀신만 제거하면 박근혜라는 여종이 다시 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체제 자체에 귀신이 들려있다는 사실 말이다”라며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 씨는 대기업들로부터 수백억의 출연을 받아 자신의 재단을 세웠다고 한다. 서민 대중에겐 천문학적으로만 보이는 이 금액은 대기업들에겐 그리 어렵지 않은, 기도 응답이 빠른 헌금이었다”고 덧붙였다. 또 “대기업들은 헌금의 응답으로 세제 혜택, 규제 완화와 같은 축복을 받았다”며 “같은 시간 어떤 국민들은 물에 빠져 죽고, 어떤 국민은 물대포를 맞고 죽었다. 어느 한쪽이 헌금으로 인한 축복을 누리는 동안 어느 한쪽이 죽임을 당하는 체제를 우리는 인신 공양의 사교라고 부른다”고 지적했다.
시국선언문은 또 “공화국은 이미 끝났다”며 “이제 신앙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인신 공양 사교의 무당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고 신전을 폐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하나님의 선교로의 참여이다. 따라서 우리 신학생들은 불의한 정권과 불의한 체제에 대하여 맞서고자 한다”고 말했다.
누리꾼들은 “최근 본 시국선언 중 인상 깊었던 시국선언”이라며 글을 공유하고 있다. “진짜 명문”, “무교지만 이해가 잘 되는 글”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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