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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상처입은 이웃종교 도왔다고 파면이라니 씁쓸”

등록 2017-02-28 19:04수정 2017-03-07 14:51

[짬] ‘절돕기 모금’으로 중징계 당한 손원영 교수
손원영 서울기독대 교수.
손원영 서울기독대 교수.

선승들이 겨울집중참선 동안거를 끝낸 강원도 인제 백담사에 최근 갔을 때다. 밖에서 자물쇠를 잠그고 3개월간 두문불출한 채 수행하고 나온 한산사 선원장 월암 스님과 일지암 주지 법인 스님과 만남에서 다종교가 화제로 올랐다. 이들은 “대만 자재공덕회 성엄 스님은 자연재해로 파괴된 교회와 성당과 이슬람사원까지 지어줬다”며 “그런 자비가 종교의 본모습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들이 말한 본모습을 보이며 화답한 이가 개신교에도 있었다. 서울기독대학 손원영(51) 교수다. 그는 지난해 1월 한 개신교도가 경북 김천 개운사 법당에 들어가 불상 등을 훼손한 것으로 알려지자, 에스엔에스에 대신 ‘사과의 글’을 게재하고, 개운사 돕기 모금운동을 벌였다. 그런데 최근 서울기독대 이사회는 이것이 우상숭배 행위라며 손 교수를 파면했다.

개신교도의 개운사 불상 훼손에
대신 사과하고 모금운동 펼쳐
서울기독대, ‘우상숭배’라며 중징계
연대 신학과 동문들 ‘파면철회’ 성명

“기독교, 사랑의 종교다운 실천 필요
대학후배 아들, 자랑스러워해 용기”

27일 만난 손 교수는 의외로 표정이 멀쩡하다. 파면은 해임보다 큰 벌이다. 파면되면 연금액이 절반으로 줄고, 5년 동안은 타 대학에서도 교수로 임용될 수 없다.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께서 이를 통해 한국 교회에 하시고 싶은 일이 계시는 모양”이라고 담담하게 얘기했다.

파면된 뒤 에스엔에스에서 학교 쪽 조처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연세대 신학과 동문들 230여명이 파면철회를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낸 것도 위로가 됐음직하다. 지금까지 신학교에서 해직 사태가 적지 않았지만 연대 동문들이 대거 나선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이들은 원로 목사와 신학자들까지 함께한 성명에서 “기독교인에 의한 이웃의 피해를 원상회복시키려 한 손 교수의 행위는 오히려 타 종교를 존중하고 성숙한 신앙을 지향하는 기독교인의 존재를 알림으로써 그 배타성으로 인한 세간의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한 행위로서 오히려 칭찬받을 만하다”고 손 교수를 옹호했다. 손 교수도 “모처럼 만에 착한 일 한번 했는데…”라고 허허롭게 웃으며 말했다.

“우연히 페북에서 개운사 주지 스님 글을 보고 충격을 받았지요. 제 전공이 기독교교육, 종교교육이에요. 기독교는 늘 사랑과 평화의 종교라고 가르치는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죠. 절이 1억 이상이나 재산 피해도 보았다고 하고, 비구니 스님이 정신치료까지 받았다고 하니, 위로하고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에스엔에스를 통해 모금을 했는데, 100여명이 십시일반해 267만원이 걷혔다. 그런데 개운사 주지가 비구 스님으로 바뀌고 무슨 내부 사정이 있었는지, 절 쪽에서 “마음만 받겠다. 돈은 종교평화를 위해 쓰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모금한 돈은 종교 간 대화를 지향하는 레페스포럼에 기부했다. 레페스포럼은 이 기부로 기독교인 6명과 이웃종교인 6명이 함께 모여 가톨릭 시튼수도원에서 1박2일간 밤샘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 내용은 곧 책으로 출간된다.

이웃종교에 대한 배타성의 우려는 그의 현장 목회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그는 1999년 서울기독대에 부임한 바로 그해 학교 내에 대학교회를 개척해 다른 목사와 함께 공동목회를 했다.

“교회를 개척해보면 새 신자 한명 모시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기존 교인들도 떠나는 판국이죠. 떠나는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교회가 이웃종교에 대해 너무 배타적이고, 폭력적이고, 언행이 불일치한 데 대해 실망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랑과 평화의 종교다운 실천이 필요하다고 늘 생각했어요.”

학교 이사회는 왜 신학토론회 한번 없이 경고나 감봉도 아닌 최고 중벌을 내린 것일까. 연세대 신학과 동문회가 “학문의 자유,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의 헌법적 가치는 국민의 존엄한 기본권”이라며 “더구나 만약 손 교수의 학문적 태도가 서울기독대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면 그가 지난 23년간 교수직을 수행하며 교무연구처장, 신학전문대학원장 등의 보직을 맡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을 만하다.

파면의 표면적인 이유는 ‘개운사’이지만 내막은 따로 있다는 게 손 교수의 생각이다. 2015년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서울기독대는 E등급을 맞아 퇴출 대상이 되자, 80년 역사상 최초로 교직원과 동문들까지 나서 ‘총장 사퇴’를 요구하고, 70%의 학생이 자퇴서를 쓰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때 학생들 편에 선 교수대표와 교무처장 등이 모두 사실상 ‘해임’됐다는 것이다. 특히 대학 총장의 주도로 사들인 학교 부지가 각종 규제로 묶여 사용이 어렵게 돼 교육부가 환수조처하라고 한 50억원이 환수가 안 된 게 퇴출 학교 지정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는데, 손 교수는 그 건으로 총장과 갈등을 빚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서울기독대에선 손 교수가 파면된 것 말고도 1명은 해임되고 4명은 재임용이 거부됐다고 한다. 손 교수는 이를 두고 학내 사태에서 총장에 밉보인 결과라고 보고 있다.

손 교수는 “앞으로 복직을 위한 지난한 소송이 기다리고 있지만, 종교개혁 500돌인 올해 한국기독교가 본질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대학 재단인 ‘그리스도교회협의회’가 예수정신으로 돌아가자는 환원운동을 주창하며 출범했는데, 자신의 시련이 환원운동의 조그만 초석이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는 또 “대학 후배이기도 한 대학생 아들이 아빠가 누구보다 자랑스럽다고 말해줘 용기가 난다”며 다시 한번 웃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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