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모스크바영화제’ 초청 감독 대해 스님
직접 각본·감독을 맡은 영화 <산상수훈>으로 모스크바영화제에서 호평을 받고 온 비구니 대해 스님.
기독교 금기 ‘불순한 질문’에 답변
관객 호평에 러시아 언론 대서특필 10년전 ‘대중 포교’ 위해 영화 선택
91편 만들어 61편 국제영화제 수상
“인간 본질 다룬 철학적 작품 원해” <산상수훈>은 신학대학원생 8명의 문답으로 이뤄졌다. 배경도 대부분 동굴로 단순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들이 던지는 질문이 단순하지 않다. ‘정녕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최고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면 빨리 얼른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다면서 왜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하나님은 인간이 따 먹을 줄 알면서 왜 선악과를 만들었는가’, ‘아담이 죄를 지었는데, 왜 내가 죄가 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어떻게 내 죄가 사해지는가’ 등이다. 하나같이 기독교에서 금기시하거나, 궁금해도 물을 수조차 없던 것들이다. 이렇게 ‘불순한’ 질문으로 가득한 영화를 기독교 국가인 러시아의 대표 영화제에서 ‘스펙트럼 섹션’에 초청했다. 국제적인 거장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섹션이다. 또 대해 스님은 영화제 심사위원으로도 참가했다. 실제 영화제 시사회에서도 예상외의 반응이 나타났다. 통상 15분 정도인 ‘관객과의 대화’가 한시간 넘게 이어졌다. 뒤이어 러시아의 대표적인 신문·잡지에서 대서특필되고 방송에도 소개됐다. 러시아정교회와 가톨릭 사제, 수도자들도 “놀라운 영화”라며 경탄했다. 이로 인해 에스토니아의 ‘탈린영화제’, 불가리아의 ‘소피아영화제’ 등 6개 국제영화제에서도 그를 초청했다. 러시아철도청은 고속열차에서 2개월간 이 영화를 상영하기로 결정했다. 대해 스님은 “우리 자신도 영화계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고 했다. 모두가 재미있는 상업영화만을 좋아할 것 같지만 실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답하는 철학적이고 지적인 작품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평범한 승려의 길을 걷던 그는 10년 전 돌연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중국 선양에서 4년간 포교활동도 했던 그는 어떻게 진리를 널리 알릴 수 있을까 고심하다가 가장 대중적인 영화를 선택했단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신학도 철학도 따로 공부한 적이 없는 그가 이런 시나리오까지 직접 써서 영화를 완성해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의 작품들은 인류 정신사의 핵을 뚫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그의 말대로 성서나 철학서를 읽는다고, 그것들을 끼워 맞춘다거나 요약한다고 만들어지는 수준이 아니다. 한마디로 심봉사가 눈을 뜨는 개안이 아니고는 설명되기 어렵다. 그는 출가 뒤 보통의 스님들처럼 화두를 들지도 않았다. 대신 불경을 읽고 자신만의 수행법을 실행했다. “나를 버리는 수행을 했다. 좋은 것도 놓고, 싫은 것도 놨다. 선악을 모두 놨다. 뒤돌아봐서도, 목적을 둬서도 안 된다니 그저 놨다.” 그렇게 해서 그는 ‘일체가 둘이 아닌 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선도 악도, 부처도 중생도, 하나님과 피조물도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적 질문도 창조주와 피조물을 구분한 상태에서는 의문에 의문을 더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의 영화들은 마치 천강이 하나의 강이 되듯 본질로 귀의하고 있다. 그는 “현상과 본질이 합일되면 의문이 풀리고, 본질의 특성인 전지전능하고 무죄하고 자유로운 본래 삶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영화 문외한’인 그가 10년간 <색즉시공 공즉시색>, <소크라테스의 유언>, <무엇이 진짜 나인가> 등 무려 91편의 작품을 쏟아낸 것이 그런 본질의 힘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가운데 무려 61편이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산상수훈>에 출연한 배우 백서빈은 크리스천이다. 그는 이 영화 촬영을 마치고 “마늘만 안 먹었다 뿐이지 동굴에서 사람이 되어 나왔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대해 스님은 다음 작품에서는 ‘인간은 변하는가’를 다룰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연금술사’를 꿈꾸고 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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