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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병든 어르신들 돌보느라 늘 새벽 4시에 잠들던 푸른 눈의 성자”

등록 2018-05-03 22:37수정 2022-03-17 12:16

[가신이의 발자취] 맥글린치 신부를 떠나보내며

고 패트릭 제임스 맥글린치 신부.
고 패트릭 제임스 맥글린치 신부.

“제2, 제3의 맥글린치 신부님 고대”

‘푸른 눈의 성자’ 패트릭 제임스 맥글린치(한국 이름 임피제) 신부님이 지난 27일 자신의 고향보다 더 사랑한 제주에서 영원한 안식의 길을 떠났다.

아일랜드 출신의 신부님은 한국전쟁 시기였던 1953년 4월 목포에 왔다가 이듬해 제주도 한림성당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해 제주 생활을 시작했다. 만 25살 때다. 그뒤 평생을 한림지역에서 보냈다. 햇수로 65년이다.

원래 선교사 신부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선교를 한다. 하지만 신부님은 한 곳에만 머물렀다. “왜 그는 제주의 농촌 한림에서만 평생을 보냈을까?” 신부님의 장례미사를 집전한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의 질문이다.

신부님은 제주4·3과 한국전쟁으로 곤궁한 삶을 살던 주민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고통을 나누고, 그들과 함께 지역개발과 사회사업을 실천했다. 그분의 취침 시간은 새벽 4시였다. 직원이 퇴근한 뒤에는 밤새 신부님의 손길이 필요한 가축 수만 마리와 병든 노인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분이 추진한 사업들은 대부분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일이었다. 60~70년대 조성한 대규모 양돈농장은 한림지역 10대 청소년 25명과 함께 시작해 일군 것이다. 한국 최고의 명품이란 소리를 들은 양털옷을 만들던 ‘한림수직’은 이 지역 소녀 4명과 아일랜드에서 어머니가 보내준 낡은 베틀로 시작해 1천명이 넘는 일자리를 만들었다. 신자 몇명과 함께 제주에 처음으로 설립한 한림신협은 오늘날 제주의 서민 중심 은행이 되었다. 마을공동 목장을 개간하고, 양돈조합과 축산조합의 기틀을 만드는 일도 공동체와 함께 했다.

외국인 수녀 의사와 동네 청년들로 시작한 이시돌병원은 1년에 5만명 이상을 진료했다. 갈 곳 없는 노인 한 분을 모셔와 직원 사무실 한 칸을 줄여 침실을 만든 것으로 시작한 양로원은 이제 100여명을 수용하는 요양원이 되었다. 시골이기 때문에 더 필요하다는 역발상으로 시작한 호스피스 병동을 비롯해 노인대학, 유치원 등은 모두가 개발이익을 공동체 복지로 활용한 사례들이다. 모두 신부님이 길을 닦은 것이다.

오랫동안 신부님의 활동을 연구해온 연구자로서 나는 그분의 ‘더불어 사는 삶’에 주목해왔다. 신부님은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같이 배우고, 같이 힘을 모으면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줬다. 신부님의 철학은 “지역개발은 주민 공동체가 함께 개발을 주도해야 진정한 지역개발이며, 여기서 얻는 이익은 공동체 복지를 위해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까이에서 본 신부님은 범상치 않은 용기와 도전정신을 지녔다. 27살의 외국인 신부가 새끼를 가진 요크셔 돼지 한 마리를 트럭에 싣고 인천에서 용산역까지, 다시 열차로 목포역까지 그리고 배로 제주항까지, 다시 트럭으로 한림까지 직접 품고 온 모습에서 그의 주민에 대한 사랑, 도전, 용기가 함축되어 있음을 본다. 돌아가실 때까지 제주도민 공동체가 힘을 합치면 외국 자본과 기술을 충분히 넘을 수 있다고 설파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제2, 제3의 맥글린치 신부님을 기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디 신부님의 영면을 기원한다.

양영철/제주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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