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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수라상’ 식판 한끼에 어르신들 ‘사랑’ 포식

등록 2005-12-13 17:14수정 2005-12-14 13:58

서울 종로성당에서 늘 친구처럼 보살피는 노인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는 최성균 신부
서울 종로성당에서 늘 친구처럼 보살피는 노인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는 최성균 신부
종로성당 최성균 신부

낙엽마저 떨구고 물기 없이 바짝 말라 눈바람을 맞이하는 겨울나무처럼 날이 추워지면 어느 누구보다 마음이 얼어붙는 이들이 바로 노인들이다. 이렇게 강추위가 계속되어도 서울 종로3가 종묘공원엔 노인들이 몰려든다. 외로워서다.

종묘공원 옆엔 예수 그리스도가 두 팔을 벌리고 있는 하얀 색의 성당이 서있다. 종로성당이다. 10일 오전 10시30분. 300여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예배당에 빼곡히 않아있다.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몸…”

미사를 드리고, 최성균 신부(53)가 영성체를 입에 넣어 준다. 대상자들은 하나 같이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지만, 최 신부 앞으로 입을 쭉 내민 모습이 마치 어미 새가 물어다준 먹이를 받아먹는 어린 참새들을 닮았다.

영성체 뒤 최 신부는 “아들 딸이나 며느리가 좀 부족해도 용서하고 기도하자”고 당부한다. 그러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착한 초등학생처럼 “예!”하고 큰소리로 대답한다.

미사가 끝나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식사시간이다. 앉은 순서대로 앞줄부터 4층으로 향한다. 그런데 잠시 최 신부가 한눈을 팔자 한 할머니가 새치기에 나선다. 최 신부가 다시 어린 아이 대하듯 어르고 달래며 자리의 노인들에게 묵주 기도를 시킨다.

4층으로 차례 차례 올라간 노인들은 70여명의 봉사자들이 정성스레 준비해 차려준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아 수라상이라도 되는 양 감격스럽게 식사를 한다. 어떤 노인들은 식판을 뚝딱 비우곤 다시 밥을 받아와 먹는다.

외로운 노인들 모여들면
미사 뒤 따뜻한 무료급식
용돈·쌀·집세·틀니 지원도
“작은 관심도 큰 희망 돼”

최 신부가 이 성당에 부임해 5년 전 처음 무료 급식을 할 때만 해도 이런 질서는 없었다. 행려자들이 가끔은 서로 싸우며 식판을 던지기도 해 식당이 난장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이곳을 애용하는 노인들이 하나 같이 이곳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보금자리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10여년 전 경기도 부천의 가톨릭 양노원에 살던 중 “노인들이야말로 나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든 최 신부는 그 뒤 부임한 서울 공릉동성당과 독산동성당, 성수동성당 등에서 노인들에게 무료 급식을 시작했다. 4년 전 최 신부는 서울대교구 노인사목위원장으로 임명돼 가톨릭에서 노인 사목의 선봉장이 되었다.

종로성당에서 월요일과 토요일 점심을 먹는 노인은 550명 가량이다. 최 신부는 미사와 식사 뒤 노인들을 상담해 특히 어려운 노인 214명에게 한 달에 5만원씩의 용돈을 드리고, 쪽방이나 고시원에서 살아가는 노인 10명에겐 월세보증금 100만원도 지원했다. 또 자식들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노인 120명에겐 한 달에 두 번씩 쌀 3㎏과 밑반찬도 제공하고, 류훈 치과와 백제 치과 등의 지원으로 이가 상한 노인들에게 틀니와 보철을 해주는가하면 무료 진료도 실시한다. 선종 뒤 갈 곳 없는 노인들에게 경기도 광탄에 마련한 납골묘에 안치해주기까지 하고 있다.

“작년에 노인들 3653명이 자살했지요. 올해는 그보다 많은 3800여명으로 추산되고 있어요.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빈곤하고 비참한 처지에 놓인 노인들이 너무 많아요.”

최 신부는 “종로성당에서 해 주는 게 별 게 아니지만 노인들에겐 자신들도 누군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 큰 위로가 되고, 삶의 희망이 된다”고 말했다.

종묘 옆 종로성당을 노인들의 안식처로 바꾼 최 신부는 몇달 뒤면 임기를 마치고 종로성당을 떠나야 한다. 그는 하루 평균 6500여명이 찾는 종묘공원 인근에 노인 쉼터를 마련하기 위해 기도 중이다. 글·사진/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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