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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민주화 상징 ‘스타 추기경’에서 보수의 ‘성역’으로 기우뚱 우려

등록 2005-12-20 16:29수정 2005-12-21 13:59

김수환 추기경이 지난 13일 사학법의 국회 통과 뒤 서울 혜화동 주교관으로 찾아온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김수환 추기경이 지난 13일 사학법의 국회 통과 뒤 서울 혜화동 주교관으로 찾아온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한국 가톨릭은 ‘정의의 종교’, 김수환 추기경은 ‘정의의 사도’. 이런 이미지는 암울한 한국 현대사에서 민초들이 그린 희망이자 기대였다.

가톨릭 근대사를 보면 ‘황사영 백서’를 통해 ‘종교의 자유’를 명분으로 외세의 조국 공격을 요청하고, 경술 국치의 원흉인 이토오 히로부미를 심판한 안중근 의사를 신자에서 축출하는가하면, 종교인들로 이뤄진 3·1운동 민족대표 33인에 단 한명도 포함되지 않는 등 ‘정의의 종교’로 불릴 만한 사항이 개신교나 불교, 천도교 등에 비해 너무 빈약하다.

그런데도 한국 가톨릭이 ‘정의의 종교’가 된 것은 1970년대 이후 지학순 주교와 함세웅, 김승훈, 문정현, 문규현 신부 등이 이끈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소리 없이 이들을 도왔던 수녀들, 이돈명·유현석 변호사를 비롯한 평신도 등이 이끈 반독재 민주화투쟁과 인권운동, 통일·평화운동 과정에서 보여준 헌신과 감동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김수환 추기경(83)은 민주화 고비 때마다 물꼬를 트는 발언으로 지역과 이념, 종교를 넘어선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정의의 사도’ 김수환 추기경…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하고
사학법 개정안 반대 선봉까지… 가톨릭 내부서도 비판 목소리

가톨릭이 어느 종교보다 보수성이 짙음에도, 이런 진보적 결단들이 ‘스타 추기경’ 탄생과 유래 없는 신자수 증가의 동력이 됐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가톨릭에서 그런 이미지가 급격히 퇴색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원인은 가부장적 가톨릭의 특성상 ‘1인 스타’이자 ‘어른’인 김 추기경의 언행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결정적 시초는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발언이었다. 대표적인 반인권법으로 유엔 인권위원회와 국제사면위원회조차 폐지를 요청한 보안법의 지탱에 그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에 많은 이들이 실망을 넘어 경악했지만, “감히 어른에게…”식의 정서는 비판을 잠재우고 그는 여전히 ‘성역’으로 남았다.

그러나 김 추기경이 사학법에서조차 반대의 선봉에 서면서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 진보단체인 정의구현전국사제단(sajedan.org), 우리신학연구소(wti.or.kr) 뿐 아니라 가톨릭의 대표적인 인터넷인 굿뉴스(catholic.or.kr)의 자유게시판에도 ‘성역’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정의구현전국사제단 홈페이지에는 “(추기경 발언 뒤) 두 아들에게 유아세례를 받게 한 가톨릭신자 아빠로서 한 동안 많이 힘들었다”(윤승용)거나 “천주교는 이런 종교가 아닌데, 너무 너무 슬프다”, “요사이 언론에 보도되는 일부 천주교인 입장이 교계를 대표하는 것이냐. 바른 길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것은 아주 큰 죄악이다”(나그네), “비겁한 것인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가. 왜 침묵하는가”(청파), 는 등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침묵을 비판하는 글들이 잇따랐다.

이 때문인지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19일 사학법 개정에 찬성한다는 성명을 냈다. 추기경과 상당수 주교들과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가톨릭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누리꾼들뿐 아니라 가톨릭 내부에서 말을 아끼던 이들도 우려를 나타냈다.

평신도단체인 우리신학연구소 박영대 소장은 “추기경께서 진보세력은 만나지 않고, 한 쪽 말만 들으면서 편중된 시국 인식을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김 추기경과 동갑으로 전 조선대 총장이자 가톨릭 평신도단체를 이끌어온 이돈명 변호사는 “학교를 직접 운영해본 입장에서 이번 개정안이 상당히 합리적으로 보인다”며 “어른이라면 단정적으로 얘기하기보다는 큰 틀에서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가까워진 TK 세력… 멀어지는 권위

가톨릭 내에선 김 추기경의 언행이 언제부터인가 전형적인 티케이(대구 경북) 보수 세력의 정서를 담기 시작했다는 말이 많다. 추기경은 박정희 유신 독재에 반대한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톨릭을 ‘정의의 종교’로 세운 언행조차 스스로 부정하면서, 가톨릭 내부에서 그의 권위는 예전같지 않게 된 지 오래라는 얘기들이 흘러나왔다. 진보적 인사들도 그의 발언에 대해 “그러려니”라고 애써 담담해 했다.

그러나 주요 시국 사안 때마다 정치권과 보수 언론이 그의 발언을 유도하며, 확대 재생산하면서, 결과적으로 추기경이 티케이의 보수적 정서만을 대변하고 나서는 데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추기경은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에 이은 이번 사학법 개정 반대 발언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만나는 자리에서 내놓았다. 특히 그는 자신과 함께 가톨릭 내 ‘티케이 3인방’으로 불리는 대구대교구장 이문희 대주교와 서강대 이사장인 박홍 신부 등과 함께 사학법 반대 투쟁의 선봉으로 비치고 있다. 이번에 개인 성명까지 따로 내며 ‘학교 폐쇄’와 같은 대구지역의 강경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이문희 대주교는 박근혜 대표와는 선대부터 각별한 인연이다. 그의 부친 이효상씨는 박정희 대통령의 선거 유세 때 ‘우리가 남이가’ 등의 최초 지역감정 발언을 해 선거 승리를 도왔고 국회의장까지 지냈다. 또 이 대주교가 수장인 대구대교구는 우리 나라 지역 교구 중 유일하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싹을 틔우지 못했다. 또 가톨릭 내 대표적인 극우파인 박홍 신부는 사학법이 개정되면 서강대를 폐쇄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해 서강대 동문들의 반발을 사며 강경 반대를 주도해왔다.

김 추기경도 박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새로 군에 간 젊은이들에게 주적이 어디냐’고 물으면 ‘미국’이라고 한다더라”며 박홍 신부식 이념 공세에 가세하면서 유대를 과시했다.

이에 대해 문정현 신부는 “종교인은 정치인이 아니기에 특정 정파에서 자유로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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