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으로보다는 색깔론 파문으로 더 유명했던 박홍 신부가 9일 오전4시40분 선종했다. 향년 78.
가톨릭 예수회 소속인 박 신부는 2017년부터 신장 투석을 받다가 당뇨 합병증까지 얻어 치료해왔고, 신체 일부가 괴사해 이를 절단하기도 했다. 고인은 상태가 악화되자 최근 서울아산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박 신부는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신부였다. 1971년 전태일이 분신으로 사망하자 추모 미사를 집전하다가 중앙정보부에 학생들과 연행되기도 했고, 1982년에는 '반미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가 검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1989년부터 8년간 서강대 총장을 지낼 당시의 색깔론의 선봉에 섰다. 1991년 명지대 재학생 강경대가 쇠파이프로 무장한 백골단에게 길거리에서 구타당해 사망하고, 이에 항의하는 대학생, 노동자들이 연달아 분신자살하자 그는 서강대 메리홀 기자회견에서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고인은 이어 1994년 김영삼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 14개 대학 총장 오찬에서 "주사파가 (학원 내에) 깊이 침투해 있다"며 학생운동 세력의 최후 배후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지목했다. 그는 발언 파장이 커지자 "고백성사를 하러 온 학생들로부터 들었다"고 해명했지만, 신도들로부터 고백성사 누설 혐의로 고발당했다.
고인은 1996년 1월에는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을 만나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인간적으로 훌륭한 분이니 가능한 한 용서를 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사면을 건의했다.
고인은 학생운동권과 재야세력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기 위한 음해에 앞장섰기에 1998년 서강대 재단 이사장에 내정됐으나 학생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2002년에도 재단 이사장에 내정되며 학교가 한바탕 내홍을 겪었으나 이듬해 학생들 반대 속에 이사장에 취임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11일 오전 7시30분 장례식장에서, 장례미사는 이날 오전 9시30분 서울 마포구 서강대길 19 예수회센터 3층 성당에서 각각 있을 예정이다. 장지는 용인천주교묘지 내 예수회 묘역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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