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매일 성경 말씀 묵상을 에스앤에스 등에 올리고 있는 정병오 대표는 모태 기독교인으로 현재 보수적인 교파(예장 고신) 교회에서 장로를 맡고 있다. 그의 마음을 가장 잡아끈 성경 대목은 뭘까? “하나님은 악인이나 선인이나 모두에게 햇빛을 비춰주신다는 마태복음 내용이죠. 하나님은 세상을 크게 보고 있으며, 교회에만 있지 않고 세상 역사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구절이죠.” 강성만 선임기자
정병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 공동대표는 스스로 보수적 기독교도라고 생각한다. 동정녀 탄생이나 예수 부활 등 성경 내용을 그대로 믿고 하나님이 지금도 세상에 개입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지난 3년 동안 매일 성경 내용을 묵상한 글을 페이스북 등에 올리고 있다. 모태 신앙인인 그가 현재 마음에 품고 있는 최고 열망은 마음껏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뼛속까지 기독교인지만 그는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대학 4학년이던 1987년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 등이 만든 기독시민운동단체 기윤실에 학생 신분으로 참여했고 3년 전에는 공동대표를 맡았다. 1995년엔 기독교사운동단체인 좋은교사운동을 설립해 2008년부터 5년간 대표로 이끌었다.
그가 최근 신앙인이자 깨어있는 시민으로 살아온 삶의 여정과 그 기간 얻은 통찰을 글로 푼 에세이집 <기독시민으로 산다>를 냈다. 지난 8일 서울 동묘역 근처 오디세이학교에서 저자를 만났다. 그가 6년째 교사로 있는 오디세이학교는 서울시교육청이 만든 공립형 대안학교다.
올해 설립 33년인 기윤실은 후원 회원이 600여명이며 후원 교회는 60여 곳이다. 정 대표가 이끈 지난 3년은 주로 ‘부채해방운동’에 힘을 쏟았다. “열심히 일해도 학자금 빚 이자도 갚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교회 후원으로 무이자대출을 받아 빚을 탕감해주었죠. 최근엔 코로나19로 청년들이 더 고통을 겪고 있어요. 내달엔 기윤실 안에 기독청년센터를 만들어 청년들에게 재무교육이나 심리상담을 해주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사회를 바꾸는 운동을 하도록 도와주려고 해요.”
가짜뉴스와의 투쟁도 중점 사업이다. 지난 3년간 온라인 소식지 ‘좋은 나무’를 매주 세 차례 구독자 2천여명에게 보내고 있다. “십계명 중 하나가 ‘거짓말하지 말라’인데 지금 기독교계 카톡이 가짜뉴스 진원지입니다. 목회자들도 성경은 알지만 세상은 잘 몰라요. 올바른 정보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죠. 그간 평신도 전문가 필진 94명이 사회나 정치, 경제 이슈를 주제로 깊이 있게 쓴 글을 보냈죠.” 기독교계 대표적인 가짜뉴스 중 하나가 기윤실 창립자인 손봉호 교수가 ‘빨갱이’라는 비방이다. “기윤실이 전광훈 한기총 회장과 명성교회 세습을 비판하자 손 교수를 비난하는 가짜뉴스가 퍼졌죠. 처음엔 손 교수가 교계에서 존경받는데 누가 믿겠냐고 무시했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많은 사람이 믿어요.”
올해 창립 25년인 좋은교사운동은 회원이 4500여명이며 상근자도 9명이나 된다. 정 대표가 92년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이사장 등과 함께 만든 기윤실 교사분과가 이 단체 모태다. “종교에 기반을 둔 교육운동이지만 기도나 성경 읽기는 교사들끼리만 합니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교육의 본질 추구가 활동의 중심이죠.” 회원은 꾸준히 늘고 있단다. “좋은교사운동은 2년에 한 번씩 3박4일 일정으로 기독교사대회를 합니다. 이때 비회원 교사가 천명 정도 와요. 이중 200~300명이 새 회원이 됩니다.”
이 단체의 최근 주요 관심사는 수업코칭과 학생 생활지도다. “수업하면서 교사들 내면이 무너지는 일이 있어요. 교사들이 서로 수업을 공개하고 봐주면서 격려도 하고 좋은 점도 이야기해줍니다. 같은 학교에서 맘이 맞는 비회원 선생님들도 함께해요. 이를 통해 서로 성장할 수 있죠. 학생지도는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처벌 단계로 가기 전에 서로 대화로 갈등을 푸는 데 중점을 둡니다.” 그가 5년간 대표를 할 때는 특별히 학습부진아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단다. 읽기나 계산을 어려워하는 난독·난산 학습장애 교재를 좋은교사운동이 따로 개발한 것도 그의 뜻이 작용했다. “지금 학교는 20~30%인 학습부진 학생들이 구조적으로 외면받을 수밖에 없어요. 중학생 중에도 못 읽는 아이들이 꽤 있어요.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난독 학생용 교육을 따로 받지 못해서죠. 난독 교육을 위한 교사 연수 등 정책적인 노력이 필요해요.”
87년 대학생 때 창립멤버로 참여
3년 전 대표 맡아 청년 부채탕감
교계 가짜뉴스와의 전쟁 등 집중
90년대 초부터 기독교사운동 주도
‘기독시민으로 산다’ 에세이집 펴내
“서구 기독교는 시민성 보루이나
지금 한국은 시민 상식에도 미달”
그는 이번 책 제목에 ‘기독시민’이란 말을 붙였다. 어떤 의미? “서구 사회에선 시민성 자체가 기독교와 뗄 수 없어요. 서구 부르주아 시민들이 다 기독교도였거든요. 그들은 세상의 권력인 왕이 불의할 때 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과 맞섰어요. 천부인권 사상도 기독교에서 왔죠. 한국은 초기 기독교도들이 서구 민주주의를 도입했지만 해방 이후엔 기독교도들이 시민성을 잃어버렸어요. 이승만 정권에 부역하고 박정희 시절엔 일부 기독교인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지만 다수는 국가권력에 순응했어요. 그렇게 교세를 키우는 대신 시민성을 잃어버렸죠.” 오늘날 서구에선 기독교가 시민성의 보루이며 민주주의를 이끌고 있지만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기총 회장인 전광훈 목사 같은 이들이 나오면서 지금 기독교는 일반 시민의 건전한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었어요. 전 목사가 한국 기독교를 과잉 대표하면서 일반 시민들이 ‘저 집단은 다른 종족인가’ 그렇게 느낄 정도로 기독교가 정체성을 잃어버렸어요. 한국 기독교가 하나님 욕을 먹이고 있는 거죠. 기독교계의 동성애 반대 운동을 보면 기독교가 게토화한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는 기윤실이나 좋은교사운동, 기독법률가회, 토지정의시민연대 같은 기독시민운동을 두고 “영성이나 종교성을 바탕으로 사회보편적 가치를 실천하는 운동”이라고 규정했다. 이런 운동은 사람들이 기독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해 기독교 교세 확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기독교인들이 많이 참여한 태극기 부대로 젊은이들이 기독교를 떠나고 있어요. 태극기 부대로 젊은이들이 기독교를 불신하고 수준 낮게 보는데 기독교로 왜 들어오겠어요. 기독교가 주장하는 가치나 교인들의 삶이 일반 사회의 상식 기준보다 더 탁월하다고 사람들이 느낄 때 들어오겠죠.”
정병오 대표가 오디세이학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기윤실이 87년 출범하며 내세운 구호가 도덕적 타락과 물질주의 배격이었다. 창립자 손봉호 교수는 2010년에 정직과 검소, 절제를 강조한 기윤실 운동의 실패를 선언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손 교수의 말은) 우리가 열심히 활동했지만 한국 교회의 물질주의화로 전체적인 흐름이 반대로 갔다는 취지죠. 하지만 그런 상황이기에 우리 운동의 필요성이 더 있다고 생각해요. 운동 방식의 문제도 있죠. 30년 전에는 검소나 절제를 강조하며 작은 차 타기나 유산 안 물려주기 운동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 방식이 20~30대 청년들에게는 낯설어요. 예전에는 열심히 일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양극화가 훨씬 더 심해져 청년들에게 검소하게 살라고 말할 수 없어요. 지금 젊은이들의 아픔을 담아낼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해야죠.”
그는 책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라도 기독교인들은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역시 바쁜 시간을 내어 2004년 북한대학원대학교에 들어가 석사 학위를 땄다. 왜 공부일까? “전두환 정권 시절인 80년대 중반 대학을 다니면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시대의 영향을 받은 거죠. 그때는 왜 살아계시는 하나님이 불의한 정권에 벌을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학생들이 희생당하는데 하나님이 침묵한다는 느낌도 받았죠. 그러다 깨달았죠. 우리가 불의가 있는 곳에 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 하나님의 다스림이 세상에 드러나도록 해야겠다고요. 그러려면 세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죠. 세상의 변화를 알아야 하는 거죠.” 그가 성경 공부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은 종교개혁의 정신을 잃어버렸어요. 종교개혁의 정신은 만인사제설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는 거죠. 중세 때는 사제를 거쳐 나아갔지만 종교개혁 뒤로 사제는 하나의 역할에 불과해요. 세상의 빠른 변화 속에서 하나님 말씀의 원뜻이 뭔지 이해하고 그 말씀을 세상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알려면 성경을 깊게 공부해야죠.”
그는 올해로 33년 차 교사다. 서울대 윤리교육과를 나와 88년부터 교단에서 윤리를 가르쳐왔다. 그가 2015년 설립 때부터 참여한 오디세이학교는 고1 과정 학생들에게 대안적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민관협력 학교다. 꿈틀과 하자, 민들레 등 기존 대안학교 교사 7명과 공교육 교사 10여명이 함께 5개 반을 꾸리고 있다. 그는 통합사회를 가르치면서 학교 운영기획도 맡고 있다.
지난 5년간 뭘 배웠나? “우리 학교 교육과정은 대안교육에서 가져왔어요. 5년 전 처음 대안교육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어요. 한국에서 대안교육이 20여년간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며 해온 게 귀한 것이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공교육은 교과과정을 충실히 잘 가르치는 걸 중시합니다. 생활교육도 두발이나 교복 단속 정도죠. 하지만 여기선 교육활동이 아이의 삶과 어떻게 연계되는지 봐 주고 또 아이의 배움이 어디서 막히고 뭘 제공해야 하는지도 살핍니다. 배움이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도 짚어주죠. 교사와 학생들이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 스스로 배움을 선택합니다. 책도 많이 읽고 표현도 많이 해요. 제 경험으로 공교육에서 학생 30명 중 서너명이 배움에 진전이 있다면 여기는 다 성장해요.”
이런 이유로 오디세이학교 모델의 확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설립 초기엔 1년 놀다 일반 고교 2학년 과정으로 돌아가면 따라가겠냐는 우려를 많이 했어요. 기우였어요. 중3 때 성적 기준만 보면 오디세이학교 출신 아이들이 대학을 더 잘 갑니다. 언니나 형, 사촌을 따라 우리 학교에 들어온 동생들도 많아요. 오디세이학교 모델이 공교육 안으로 퍼질 수 있는 변형 모델에 대해 요즘 많이 생각하고 있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