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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인권위, 노숙인 인권 실태조사

등록 2006-02-21 21:15

행인 발에 걷어채이기 일쑤…이름 도용·철거현장 동원도
노숙인들이 위험하다는 통념과는 달리 오히려 노숙인들이 일반 시민들의 언어적·물리적 폭력에 노출돼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1일 성공회대 사회복지연구소에 맡겨 지난해 10~11월 노숙인 60명을 면접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한 ‘노숙인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노숙인의 인권 침해 유형을 일반적 기본권, 주거권, 노동권, 건강권으로 나눠 사례와 함께 제시했다.

일반적 기본권 침해=일반 시민들이 거리에서 노숙인에게 언어적·물리적 폭력을 행사하거나 주민등록을 매매하고 명의를 도용하는 등 노숙 상황을 악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쉼터에서 생활하는 노숙인 ㄱ씨는 “2000년 초 영등포역 앞에서 술을 마시다 누군가가 이유없이 때려 저항하다 흉기에 찔려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 노숙인 ㄴ씨는 “공원에 누워 있는 노숙인을 지나가던 사람이 ‘일어나라’며 발로 걷어차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말했다.

ㄷ씨는 자신의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다른 사람한테 팔았다가 신용불량자가 됐다. ㄷ씨는 “노숙하는 사람들 80~90%는 신분을 도용당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며 ”돈을 얼마 줄테니 휴대전화나 신용카드를 만들라고 유혹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주거권 침해=노숙인들을 위한 쉼터는 대부분 과밀상태이고, 개인의 사생활(프라이버시) 보장이 안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숙인의 주거 실태를 조사한 남기철 동덕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노숙인들이 쉼터에 들어가려 하지 않아 정원이 미달된다고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대부분 쉼터들이 1인당 시설면적 기준을 지키고 있다지만 이는 시설 전체 면적을 수용인원으로 나눈 것일 뿐 실제 노숙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비좁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또 일부 노숙인 보호시설은 종교행사를 강요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권 침해=노숙인들은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이 없어 취업을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노숙인 ㄹ씨는 “공공근로를 하려고 했는데 주민등록이 없다며 일을 시켜주지 않았다”며 “주민등록번호를 대라고 하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 결국 일을 못했다”고 했다. 일을 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불법적인 일에 동원되는 경우도 있었다. ㅁ씨는 지난해 10월 서울역에서 지내는 노숙인 200여명과 함께 강제 철거현장에 동원됐다. ㅁ씨는 “일당 5만원을 준다고 해 따라갔더니 강제철거 현장에서 주민들과 싸우는 일을 시켰다”며 “맨몸으로 맞으면서 막아야 했고 낫에 찔려 병원에 실려간 노숙인도 있었다”고 말했다.

건강권 침해=응급구조대에 신고해도 돈이 없으면 노숙인 환자를 병원으로 후송하지 않는다는 진술도 나왔다. ㅂ씨는 “같이 지내는 노숙인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해 구급차를 불렀더니 구조대원들이 도착해서 처음 묻는 말이 ‘돈이 있느냐’는 것이었다”며 “환자를 먼저 후송해야 할 것 아니냐고 따졌더니 구조대가 곧 가버렸다”고 말했다. 또 알코올중독 노숙인들이 전문적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로 지적됐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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