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조이빌리지 김미경 원장
경기 파주시 광탄면 광탄성당 바로 뒤에 자리한 조이빌리지는 성인발달장애인 주거 공동체다. 1998년 기도모임으로 출발한 발달장애인 부모 자조모임 ‘기쁨터’ 회원들이 천주교의정부교구 사회복지법인 대건카리타스(이사장 이기헌 베드로 주교)와 손을 잡고 3년 전 5월 문을 열었다. 현재 중증 발달장애인 27명이 국내 장애인 시설 중 유일하게 ‘1인 1실’에서 돌봄을 받고 있다.
기쁨터 활동을 초기부터 이끈 김미경 조이빌리지 초대 원장은 이 장애인 주거 공동체를 두고 “일찍 온 미래”라고 표현했다. “법적으로는 시설이지만 우리는 사회주택이라고 불러요. 비장애인들도 셰어 하우스를 하잖아요. 복지선진국 장애 시설 기준에 맞춰 1인 1실로 했고 독일 중증자폐성 장애인 시설을 참고해 개인방 여섯과 거실, 주방, 화장실, 샤워실 등 아파트형 주거 단위로 공간을 구성했죠. 또 중증 발달장애인들이 이웃 주민과 봉사자, 부모와 어우러지면서 주거나 의료서비스는 물론 직업 훈련도 받고 있죠. 격주에 한 번씩 부모 집에서 자고 오는 친구도 있어요. 저도 올해로 입주 2년째인 아들(정한준·34)과 함께 출퇴근합니다. 부모와 떨어져 사는 데 익숙해질 때까지 그렇게 하려고요.”
조이빌리지는 개원 3년을 맞아 4~10일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 1관에서 후원금 모금을 위한 자선 전시회를 한다. 서예 작가인 도현우 신부(대건카리타스 회장)의 서예 20여점과 발달장애인 김범진, 정도운, 한승기 작가의 작품과 어머니들 수예품을 만날 수 있다. 김범진 작가는 조이빌리지 가족이기도 하다. 지난 2일 조이빌리지 사무실에서 김 원장을 만났다.
기쁨터의 지난 24년은 한국 사회 발달장애인 복지의 궤적과 맞닿아 있다. 국립특수학교인 한국경진학교 학부모들이 주축인 기쁨터 회원들은 1999년에 처음 발달장애인 공부방을 열었고 2004년과 2005년에는 대건카리타스와 협력해 발달장애인 주간보호센터와 장애-비장애 통합지역아동센터도 잇달아 개소했다. 2009년에는 장애인 4명이 함께 거주하는 장애인 그룹홈 두 곳도 열어 주간보호센터와 함께 지금껏 운영하고 있다.
그러다 김 원장은 2015년께 성인이 된 기쁨터 자녀들의 안정적인 주거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바람을 품었단다. 이 꿈은 4년 뒤 현실이 됐다. 대건카리타스 기존 복지 시설을 리모델링하고 새 건물도 따로 지어 조이빌리지를 연 것이다. “기쁨터 43가족 회원들이 그동안 돈을 모아 사둔 집이 종잣돈이었죠. 천주교 법인에서도 상당한 재정 지원을 했어요.”
조이빌리지가 다른 시설과 남다른 점은 ‘1인 1실’이라는 것이다. “독일과 미국, 스웨덴 등은 이미 장애인 시설의 1인 1실을 법제화했어요. 자폐성 장애인들은 특히 감각이 예민해 남들과 떨어져 쉴 공간이 필요해요.”
그가 조이빌리지를 지을 때는 한국 사회에서 ‘탈시설’ 장애인 정책이 힘을 얻는 시기와 겹친다. 정부는 지난해 8월에 2041년까지 시설 장애인들의 지역사회 전환을 마무리한다는 ‘탈시설 로드맵’까지 내놓았다. 장애인들이 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 안착해 자립생활을 하는데 정책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장애인 부모모임 기쁨터 24년 이끌어
3년 전에는 천주교 복지법인과 협력
성인 중증발달장애인 주거공간 마련
국내 첫 1인1실에 아파트형 유닛
탈시설 추세에 국고보조 못 받아 어려움
10일까지 인사동에서 후원 전시회
이런 흐름에도 김 원장은 왜 조이빌리지라는 또 하나의 ‘시설’을 만들었을까? “저에게 불상사가 생기면 이미 성년이 된 우리 아이를 돌봐줄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봤어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떠오르지 않더군요. 탈시설 추세라 시설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고, 제가 운영했던 주간보호센터나 그룹홈도 엄마라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중증 발달장애인들에게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봤죠. 그룹홈은 직장을 다니는 장애인들이 주로 이용해요. 현재 기쁨터 부모 대부분이 60~70대입니다. 83살인 분도 있어요. 자녀들도 마흔을 넘기면서 백내장 등 성인병이 나타나더군요. 부모가 죽은 뒤 형제에게 돌봄의 부담을 떠넘기는 것은 절대 피하자는 게 기쁨터 부모들의 생각이었죠.” 이런 말도 했다. “기쁨터를 시작하면서 우리보다 장애인 정책이 50년은 앞섰다고 하는 복지선진국 사례를 많이 공부했어요. 하지만 그 나라들도 부모가 없을 때는 시설 외에는 현실적인 대안이 없더군요.”
“내가 없어도 안심할 자녀들의 주거 공간”은 일단 확보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그는 지난해 가을부터 마치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 같았단다. “지금껏 국고보조금을 한 푼도 못 받았어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죠. 시설 지원 재원이 부족하다는 등 여러 이유로 계속 지급이 늦춰지고 있어요. 탈시설 정책의 영향이겠죠. 국고 지원을 못 받으니 매칭해 나오는 시와 도비 지원도 못 받고 있어요. 장애인들이 개별적으로 부담하는 66만원과 천주교 법인 후원금 7천여만원이 재원의 전부라 직원 월급도 제대로 줄 수 없는 형편입니다.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자체 시설이 스무 군데나 되는 법인에 너무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는 조이빌리지는 “장애인 부모와 천주교 사회복지 법인이 연계해 이십년 이상 걸어와 닿은 곳”이라며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이보다 더 나은 길은 없다”고 단언했다. “탈시설 정책은 맞는 말이지만 이상과 현실은 많이 다릅니다. 지역사회에 나간다고 집에서 엄마랑 같이 지내며 온종일 아파트 베란다에서 지나가는 차만 바라보는 것은 엄마와 함께 고립되는 것이죠. 어떤 발달장애인 가족은 이웃의 편견으로 2년 동안 이사를 다섯 번이나 다녔답니다. 꼭 지역사회가 장애인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차기 정부에 바라는 장애인 정책을 묻자 그는 “세심함”이라고 했다. “장애인 스포츠도 지체장애인을 위한 패럴림픽과 발달장애인을 위한 스페셜올림픽으로 구분하잖아요. 장애 정책도 장애 유형별로 나눠 대처해야죠. 자폐성 장애인 70~80%는 언어로 자기 표현을 잘 하지 못해요. 그런데도 정부는 장애인을 뭉뚱그려 탈시설 정책을 펴고 있어요. 중증 발달장애인은 탈시설 정책 이전에 현 거주시설 환경이나 시스템 문제를 개선해 안전한 공동주택으로 탈바꿈시키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죠.” 그는 “장애인 부모들이 20년 이상 노력해 닿은 조이빌리지를 국가가 지지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김미경 원장이 인터뷰 뒤 조이빌리지 신관과 텃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전시포스터.
전시 첫날인 지난 4일 전시장 모습. 김미경 원장 제공
김미경 원장이 조이빌리지 신축 건물인 신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영문학을 전공한 대학 시절부터 7년 동안 가톨릭학생회에서 야학을 했다는 김 원장에게 대학 시절 꿈이 뭐였냐고 묻자 ‘글 쓰는 사람’이었단다. “전문 작가는 아니지만 기쁨터나 조이빌리지 활동을 하면서 제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글을 많이 썼어요. 꿈을 이룬 거나 마찬가지죠. 대학 시절 야학할 때 섬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부부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기쁨터 자원봉사자들과 함께하는 캠프 때 ‘내가 바로 사람들 사이에서 섬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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