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시간이 지난 후 학교 기숙사에서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과도한 기본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 아동권리위원회는 기숙형 ㄱ고등학교 교장에게 기숙사 학생들의 휴대전화와 태블릿피시 등 전자기기 소지와 사용을 전면 제한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기숙사 생활 규정을 개정하라는 권고를 내렸다고 11일 밝혔다.
앞서 ㄱ고등학교 재학생 ㄴ씨는 학교가 수업시간뿐 아니라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시간에도 개인 휴대전화 소지와 사용을 금지하고, 일요일 일부 시간에만 예외적으로 사용을 허용한다며 “학교가 학생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ㄴ씨의 진정내용을 보면 학교는 휴대전화는 물론, 노트북과 태블릿피시 등도 기숙사 내의 지정 와이파이 구역에서만 사용을 허용했다. 이외 구역에서 개인 전자기기를 사용하면 한 달간 기기를 압수하거나 ‘청소 40시간’, 기숙사 퇴거 등 벌을 내렸다고 한다. 이에 학교는 “지정된 시간, 장소 이외에 전자기기를 사용할 경우 학업과 무관하게 사용할 소지가 많고, 주변 학생들에게 소음을 유발할 수 있어 금지하는 것”이라고 인권위에 설명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학교 안에서 학생의 전자기기 소지와 사용을 제한할 필요가 인정된다고 해도, 일과 시간 이후 기숙사 생활에서까지 전면 제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일반적 행동의 자유와 통신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또 “현대 사회에서 전자기기는 학습 수단일 뿐 아니라 개인의 관심사나 취미 등에 대한 정보를 얻고, 이를 통해 적성을 개발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누리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학교 쪽은 학부모와 학생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기숙사 입사 전 동의서를 받았다고 인권위에 해명했다. 지정된 시간이 아니더라도 학생이 요구하면 담임 교사의 허가 아래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고 교내에 공중전화도 여덟 대 설치해, 필요한 경우 얼마든지 보호자와 연락할 수 있다는 설명도 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이 같은 조처가 절차의 정당성은 갖췄더라도, 헌법과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등이 보장하는 학생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 정당성은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학생이 휴대전화를 사용해야 할 불가피한 사유를 담임 교사에게 알리는 과정에서 사생활이 노출될 수 있고, 짧은 휴식시간 동안 공중전화를 쓰는 것으로는 일상적인 통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학교 쪽에 “전자기기 사용의 부정적 효과만을 부각해 전면 금지하기보다, 공동체 내에서 토론을 통해 규율을 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본인의 욕구와 행동을 통제, 관리하는 역량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면서, 개인 전자기기 소지와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기숙사 생활 규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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