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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동자동 블루스 “하룻밤이라도 쥐 없는 데서 자고, 거기서 죽고 싶어”

등록 2022-06-11 05:00수정 2022-06-11 22:31

[한겨레S] 커버스토리
동자동 쪽방촌의 불안한 미래

공공임대 절반 넘는 ‘공공개발’ 발표한 지 1년4개월이 넘었지만
민간개발·규제완화 요구하는 토지주 압박에 지구 지정조차 못해
“개발돼도 쫓겨나지 않고 이웃끼리 좋은 환경서 산다 좋아했는데…”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한 주민의 방. 대체로 1평 남짓한 이 동네 쪽방의 평균 월세는 23만4천원이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한 주민의 방. 대체로 1평 남짓한 이 동네 쪽방의 평균 월세는 23만4천원이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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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초여름 볕이 쨍쨍한 한낮인데도 방은 어두웠다. 아니, 이곳을 ‘방’이라 부르는 게 정당할까. 얼핏 봐선 뭔지 가늠이 되지 않는, 오래된 식당 건물 옆 쪽문을 여니 성인 한 명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좁은 통로가 보였다. 6~7m 남짓 되는 통로 왼쪽으로 식당 뒷문, 2층으로 향하는 계단, 공용 화장실, 식당 창고, 그리고 그 ‘방’이 꾸역꾸역 뭉쳐 있었다. 3.3㎡(1평)를 조금 넘을 듯한 크기의 공간은 작은 싱크대와 미니냉장고, 철 지난 이불만으로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층이지만, 싱크대 위로 난 창으론 해가 거의 들지 않았다. 싱크대는 물이 나오지 않아, 덩그러니 자리만 차지할 뿐이었다. 나무로 된 방문은 손잡이가 떨어져 나가 잠기지 않았다. 김선근(63)씨는 여기서 7년째 살면서 매달 월세 26만원을 낸다고 했다. 3층짜리 이 건물엔 이런 방이 7~8개쯤 된다.

방이라 불러도 되는 걸까

서울의 관문인 서울역 맞은편, 늘어선 고층 빌딩 뒤쪽 동자동엔 이런 쪽방 1163개가 건물 67동에 밀집해 있고 현재 1083명이 살고 있다(서울시 ‘2020년 서울시 쪽방 건물 및 거주민 실태조사’, 이하 실태조사). 건물 한 동을 쪼개 들어찬 방이 평균 17.4개, 다른 쪽방촌 주민들도 김씨와 사는 환경이 별로 다르지 않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2월5일 “전국 최대 서울역 쪽방촌”을 “명품 주거단지로 재탄생”시키겠다며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이하 공공주택사업)을 발표했다. 하지만 현실은, 자칫하면 깨질 것 같은 유리잔 같다.

동자동 쪽방촌에 들어온 지 24년 된 김정길(76)씨의 방은 월세가 25만원이다. 크기는 김선근씨네와 비슷하지만, 그가 사는 방엔 싱크대가 없는 대신 작은 현관이 있다. 신발, 세숫대야 같은 생활용품 사이로 음료수, 즉석밥, 도시락, 양념 같은 식료품과 냄비, 그릇 등을 쌓아뒀다. 위경화증이 있어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야 하는 그는, 밥에 뜨거운 물을 부어 불린 ‘죽’을 자주 먹는다. 조리하기 불편한 환경은 다른 집들도 마찬가지다. 실태조사에서 취사장을 갖춘 건물은 32.8%에 그쳐, 쪽방촌 주민 대부분은 방 안에서 휴대용 가스버너를 사용한다. 그나마 있는 취사장에도 설치된 수도꼭지의 수는 평균 2.6개에 불과하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주택당 평균 16.2명에 이르는 거주 인원이 2.6개의 수도꼭지를 나눠 쓰는 셈이다.

2. 동자동 쪽방촌 한 골목에 7일 오후 노인들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2. 동자동 쪽방촌 한 골목에 7일 오후 노인들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하지만 정작 김정길씨를 괴롭히는 건 따로 있다. 그는 “쥐랑 바퀴벌레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다”는 말을 신경질적으로, 수십 차례 반복했다. “밤마다 천장에서 쥐들이 쿵쿵대며 축구를 하는 통에 너무 힘들다. 화가 나서 효자손으로 천장을 치면 잠깐 조용하다가 다시 뛰어다닌다. 바퀴벌레는 수도 없이 나온다.” 층간소음에 시달려도 예민해지기 마련인데 쥐들이 내는 소리라니, 예민해지지 않는 게 이상했다. 실제로 한국도시연구소가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을 상대로 2020년 1월 실시해 발표한 ‘비주택 거주자 주거지원 희망 수요조사’(이하 수요조사) 결과를 보면, 주민들이 건강에 가장 위협을 느끼는 요소로 추위·더위(65.1%)와 쥐·해충(64.3%)이 엇비슷하게 가장 많이 꼽혔다(복수응답).

이와 관련해, 건강세상네트워크 등이 2012년 내놓은 ‘동자동 쪽방 주민 건강권 실태조사’에선 쪽방 주민의 주관적 기대수명이 당시 한국 남성의 평균 수명(77.3살)에 못 미치는 74.3살로 조사된 바 있다. 연구진은 “돈이 없어 필요할 때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열악한 주거환경이 주민들의 건강을 명백히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최저주거기준 이하의 열악한 쪽방에서 생활하고 있고 주거비 비중이 높으며 돈이 없어 쫓겨날까 봐 걱정한다. 또한 식비 부족, 열악한 구강 건강, 부엌 시설 미비로 인해 영양 상태가 부실한 경우가 많다. 이것만 보아도 동자동 쪽방 주민은 건강권이 아닌,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도 보장받고 있지 못하는 현실을 알 수 있다.”

이 조사를 벌인 지 10년이 지났지만, 쪽방촌 주거환경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건물은 세월의 흐름만큼 더 낡았고, 당시 55.2살이던 주민의 평균 나이는 2018년 59.7살로 올라갔다. 실태조사에서 주민 가운데 고혈압, 당뇨, 관절염, 우울증 같은 지병이 있다는 이는 82.5%에 이렀다. 주민 김영국씨는 “여기 대부분 집이 지은 지 60년을 넘었고, 방은 한 평도 안 돼서 누우면 꽉 찬다. 물도 새고, 햇빛 안 들고, 냄새나고, 주거환경이 말 그대로 비참해서, 안 아픈 사람도 여기 와서 살면 아프게 된다. 그래서 1년이면 죽는 사람이 40명이 넘는다”며 “가진 게 없으니까 그냥 여기서, 죽지 못해 사는 것”이라고 했다.

주거급여 노리는 ‘빈곤 비즈니스’

쪽방촌 주민들은 이런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집주인에게 아무리 요구해도 들어주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 자조조직인 ‘동자동 사랑방’의 정대철 사업이사는 “전기고 수도고, 고장 나서 뭐 하나 고쳐달라고 하면 집주인은 그냥 나가라고 한다. 따박따박 월세는 받아가면서 집수리는 안 해준다”고 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한 건물 옥상. 낡은 지붕을 천막과 플라스틱 슬레이트, 나무판자 등으로 덮어두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한 건물 옥상. 낡은 지붕을 천막과 플라스틱 슬레이트, 나무판자 등으로 덮어두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실태조사를 보면, 동자동 쪽방촌 주민의 평균 거주 기간은 10.3년으로 주민의 95.7%가 월세로 산다. 평균 월세는 23만4천원이고, 보증금은 없다. 한편, 주민의 74.6%가 기초생활 수급자고 평균 수급비 69만1천원이다. 백광헌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부위원장은 “수급비가 매달 20일에 들어오는데, 다음달 10일만 돼도 돈이 없다. 방값 27만원을 주고 나면 58만원 정도 남는데 전화요금, 전기료 같은 공과금이 8만원, 담뱃값이 15만원 든다. 요새 밥 한 끼가 1만원이 넘는데, 남은 돈으로 친구 만나 서너번 밥 먹으면 금세 돈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장실 하나를 10가구가 쓰는 이런 건물에서 집주인들이 주거급여를 노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엔 생계급여, 주거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 등이 있는데, 각각 지급 기준과 규모가 다르다. 이 가운데 1인 가구 생계급여는 올해 월 소득이 58만3444원(기준 중위소득의 30%) 이하일 때 58만3444원을 지급받는다. 1인 가구의 주거급여는 월 소득이 89만4614원(기준 중위소득의 46%) 이하일 때 최대 32만7천원(서울 기준)을 받는데, 임대차계약서에 명시된 방세가 이보다 낮으면 그만큼만 받을 수 있다. 주목할 대목은, 주거급여에 따라 쪽방촌 월세가 올랐다는 점이다.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활동가는 “2015년 주거급여가 생기면서, 그 전에 15만원 선이던 월세가 30만원 가까이로 다 올랐다. 그나마 월세에 공과금이 포함된 경우는 좀 낫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아 주민들의 부담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쪽방촌 건물주의 월세 운영이 빈곤의 고착화를 유도하는 ‘빈곤 비즈니스’로 비판받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착취도시, 서울>(이혜미 지음, 글항아리 펴냄)은 쪽방촌에 실거주하지 않는 건물주가 쪽방 월세로 매달 수백만~수천만원의 현금 수입을 올리는 구조를 생생히 밝혀낸 바 있다. 건물주의 70%가량은 쪽방촌이 아닌 곳에 살고, 강남에 거주하는 부유층도 적지 않다. 또한 건물주 가운데 20% 안팎은 여러 채의 건물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계약을 하고 월세를 받아가는 이는 집주인이 아니라 고용된 관리인이기 때문에, 쪽방촌 주민들한테선 “집주인 얼굴은 본 적도 없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건물주로선, 낡은 건물을 수리하지 않아도 싼 방에 들어오려는 ‘수요’는 늘 있고, 수급자를 세입자로 들이면 주거급여만큼의 월세를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데다 세금마저 안 내도 되는 현금 수입이 ‘쪽방촌 임대 사업’이다. 주민들이 “집주인은 무조건 월세가 들어오니 수급자를 좋아한다. 사람이 죽어나가도 금세 수급자를 들여 월세 받아가기 바쁘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덴 이유가 있는 셈이다.

공공주택 꿈에 부풀었지만

정부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다. 2020년부터 잇따라 쪽방촌을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른 공공개발 방식으로 재정비할 계획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2020년 1월20일과 4월22일, 서울 영등포 쪽방촌과 대전역 쪽방촌의 공공주택사업 추진계획을 각각 발표했다. 공공주택특별법은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된 구역에 공공임대 35% 이상, 공공분양 25% 이하 등으로 공공주택을 절반 이상 짓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간 재개발의 경우 공공임대 의무 비율이 15%(서울 기준)에 불과한 데 비춰보면, 공공주택 비중을 크게 늘린 것이다.

지난달 1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공공주택지구 지정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공공주택지구 지정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또한 정부는 재개발로 세입자가 쫓겨나지 않도록, 사업 진행기간 동안 쪽방촌 주민들에게 임시 이주 공간을 제공하고 이후엔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선(先)이주, 선(善)순환’ 대책도 내놨다. 이 때문에 주거권 운동단체 등에선 이런 변화가 ‘용산 참사에 대한 정책적 속죄’라는 평가도 나왔다. 어쨌든 영등포 쪽방촌은 2020년 7월17일, 대전역 쪽방촌은 다섯달 뒤인 12월7일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 정부가 지난해 2월5일 동자동 일대 4만7천㎡를 같은 방식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히자, 쪽방촌 주민들은 꿈에 부풀었다. 특히 공공임대주택을 전체 주택의 절반 이상인 1250호(전체 2410호, 공공분양 200호, 민간분양 960호) 짓겠다는 계획은 단순 수치로 볼 때 현재 쪽방촌 주민 대다수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백광헌 부위원장은 “여기 살던 사람이 임대 아파트 갔다가 되돌아오는 경우가 제법 된다. 이 동네에선 동자동사랑방에서 커피도 마시고, 왔다 갔다 하며 정드는 사람도 많은데, (연고가 없는) 다른 동네 임대 아파트에 가면 외롭고 수급자라고 무시당하니 그런 것”이라며 “생각도 못 했는데 갑자기 정부가 여기를 공공개발하겠다고 해서 전부들 꿈을 갖게 됐다. 쫓겨나지 않고 비슷한 이웃들끼리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됐다고 다들 좋아했다”고 말했다.

부딪치는 욕망들

하지만 주민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공공주택지구 지정은 지난해 말까지 완료됐어야 하고, 올해는 지구계획과 보상계획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올해가 절반 가까이 다 지나도록 공공주택지구 지정은커녕, 그 이전 단계인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조차 감감무소식이다. 사유재산 침해를 주장하는 건물주들이 공공개발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탓이다.

공공개발에 반대하는 건물주들은 정부 발표 한달 남짓 뒤인 지난해 3월18일 ‘서울역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 창립총회를 열었다. 당시 보도자료에서 이들은 “소유주 70~80%가 반대의견서를 모아 (정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엔 국토부에 민간개발 정비계획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들이 요구하는 핵심은 민간개발을 할 테니, 공공개발에 적용하기로 한 용적률 확대(250%→700%)와 고도제한 완화(6~18층→40층)를 똑같이 민간개발에 적용해 달라는 것이다. 동자동 일대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여러 차례 민간개발이 추진됐지만 주민 반발, 사업성 부족 등의 이유로 번번이 좌초됐는데, 이들은 그 원인이 ‘개발 규제’에 있다고 본다. 오정자 주민대책위원장은 “집수리 안 해주는 문제만 갖고 얘기하는데, 이 지역이 개발된다는 얘기를 듣고 누가 돈 들여서 수리를 하겠나. 지난해엔 용산구의 새로운 정비 용역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정부가 주민 동의도 없이 갑자기 공공개발 계획을 발표한 것”이라며 “명백한 사유재산 침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는 쪽방 분들을 위한 개발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뭘 원하는지도 조사해보지 않았다. 공공개발처럼 규제를 풀어주면, 우리는 민간개발을 하더라도 쪽방을 더 좋게 지어줄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2. 동자동 쪽방촌 한 건물의 공용 화장실. 이 건물에 거주하는 7명이 화장실 1개를 함께 쓴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2. 동자동 쪽방촌 한 건물의 공용 화장실. 이 건물에 거주하는 7명이 화장실 1개를 함께 쓴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공공개발에 찬성하는 건물주들도 있다. 이들은 오는 14일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앞에서 집회를 열어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 추진을 촉구할 예정이다. 이들의 이해관계는, 공공개발에 반대하는 건물주와는 다르다. 조재형 ‘서울역 쪽방촌 주민대책위’ 총괄본부장은 “그분들은 토지주의 다수가 민간개발을 원한다고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소유 면적으로 보면 (쪽방촌의) 반이나 될까 말까 할 정도인데, 선동에 가까운 행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공개발을 요구하는 토지주는 대체로 소유한 땅이 넓고, 동자동에서 30~40년씩 산 사람도 있다. 반대하는 쪽엔 작은 규모의 지주가 많고, 대부분 민간분양권을 받고 싶어 한다. 민간분양권을 받으려면 주거용 건물에 실거주를 해야 하는데, 대부분 외부에 살면서 차익을 실현시키려는 투기세력이다 보니 공공개발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욕망은 쪽방촌 주민들의 욕망과도 다르다. 조재형 총괄본부장은 “공공개발이냐 민간개발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사업수지 분석을 해 보니, 동자동은 여건상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되는 게 용적률, 건폐율, 고도제한뿐만 아니라 공사비, 세입자 명도·이주비, 각종 금융비용 등에서 토지·건물 소유주에게 훨씬 실익이 컸다”며 “사유재산을 지키고, 쪽방 주민의 주거복지에 헌신한 토지주에게 보상해줄 수 있는 게 동자동 공공개발”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주민, 세입자, 토지 등 소유자 세 축이 모두 피해가 없는 범위 안에서 공공개발에 찬성한다”며 ‘정당한 보상’을 요구했다.

사업에 책임을 진 국토부는 소유주들을 핑계로 좌고우면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땅값이 비싼 도심 한복판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라 다른 데보다 소유주들의 반대가 워낙 심하다. 찬성하는 소유주도 있다. 양쪽 의견을 다 듣고 설득하는 작업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반대 쪽이 제출한 정비계획안은 서울시와 용산구에 승인권이 있어 그쪽에서 검토 중”이라며 “국토부는 그 계획안에 쪽방 주민들의 이주대책이나 구제대책이 적절하게 마련돼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국토부의 이런 태도 자체가, 공공개발 계획을 바꿀 수 있다는 신호를 소유주한테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통해 권력이 교체됐다는 점도 주민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다. 김호태 전 동자동사랑방 대표는 “시장에 이어(계획 발표 당시는 권한대행 상태) 중앙정부까지 바뀌니까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하지만 공공개발은 현 정부가 아니라도 ‘정부’가 하기로 한 것 아니냐”며 “없는 사람들 농락하지 말고, 약속을 지키라는 게 우리의 요구”라고 말했다.

1. 동자동 쪽방촌의 한 방문에 붙어 있는 공공주택사업 촉구 포스터.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1. 동자동 쪽방촌의 한 방문에 붙어 있는 공공주택사업 촉구 포스터.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1900년 서울역이 문을 연 이후 동자동은 주택가와 상가가 밀집한 지역이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이 서울역과 용산구에 집중되면서 폐허가 됐다. 전후엔 피난민과 빈민이 몰려들어 판자촌을 이뤘고, 집창촌도 형성됐다. 서울역과 그 유동 인구를 따라 형성된 상권에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도시빈민 밀집 지역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1970년대에 들어선 정부의 단속으로 판자촌이 철거되고, 성매매업소 다수가 여관, 여인숙으로 바뀌면서 지금의 쪽방과 유사한 형태의 주거지가 됐다. 외환위기 뒤인 2000년대 이후엔 노숙인과 하층 노동조차 구하기 힘든 사람 등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버려지는 인구집단”이 모여든 공간으로 변했다. 그렇게 동자동이 변해가는 동안에도, 부동산 투기와 개발의 욕망은 멈추지 않았다.(정택진, <동자동 사람들>, 빨간소금)

동자동 공공개발은 이 ‘버려진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존엄을 되찾아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림 그리는 게 취미이자 특기인 김선근씨가 말했다. “공공주택에 갈 수 있으면 아휴, 감사하죠. 인물화, 추상화, 풍경화, 그림 그리는 게 내 특기니까, 거기서 살면 훨씬 더 많이,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정길씨가 이어받았다. “나도 그렇고, 주민들도 그렇고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몰라요. 하룻밤이라도 쥐 없고 바퀴벌레 없는 데서 자고, 그 집에서 죽고 싶어요.”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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