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과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복지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발인이 지난 8월2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서울의 한 전세임대주택에서 홀로 사는 ㄱ씨(76)씨는 기초연금 30만원으로 한 달을 버틴다. 끼니는 사찰에서 봉사한 뒤 챙겨주는 식사 등으로 때우기 일쑤다. 골다공증이 심한 그는 주기적으로 검사를 하고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7만원의 검사비 탓에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ㄱ씨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주거비를 지원하는 주거급여는 지원 받지만, 생계·의료급여 지원은 받지 못하고 있다. 생계·의료급여는 가족 가운데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재산이 있다면 지원 대상에서 탈락하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ㄱ씨에겐 가정사로 연락하지 않지만, 소득이 연 1억원이 넘는 아들이 있다.
ㄱ씨처럼 소득이 낮아 기초생활보장장제도로 주거비 지원을 받지만, 부양의무자·재산 등의 이유로 생계·의료 지원을 받지 못하는 가구가 4만3329곳으로 나타났다. 생계·의료 지원 탈락가구의 74%는 1인 가구였는데, 이들의 월 평균소득은 54만원 수준에 불과했다. 이는 1인 가구의 생계급여 소득인정액 58만원(기준 중위소득의 30%)에도 못 미치는 금액으로, 부양의무자와 재산 등 까다로운 수급 기준 탓에 기초생활보장제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과 기초법공동행동은 보건복지부로부터 2021년부터 올해 8월까지 주거급여 수급 가구 가운데 생계·의료급여 탈락 가구의 소득·재산 현황을 제출받아 이런 분석 결과를 내놨다. 기초생활보장제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지원해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사회 안전망 제도로, 정부는 일정 기준에 따라 교육·주거·생계·의료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강은미 의원실은 “주거급여는 소득인정액 기준이 중위소득의 46%로 생계(30%), 의료(40%)급여보다 높고, 2018년 10월 부양의무자 기준도 사라졌다”며 “부양의무기준으로 인한 탈락가구 추이를 확인하기 위해 주거급여 지급 대상자를 기준으로 생계·의료급여 탈락자를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분석 자료를 보면, 생계·의료 급여 탈락자 4만3329가구의 소득 평균은 각종 복지수당과 연금 등 공적이전소득을 포함해 68만1468원에 불과했다. 평균 재산 역시 3691만원에 불과했는데, 1인 가구로 한정할 경우 3000만원 이하 재산을 가진 가구가 62.9%에 달했다.
부동산 공시 가격 상승으로 생계·의료 급여에 탈락한 사람도 각각 2299가구, 3391가구였다. 기초생활보장 급여 지급 기준이 되는 소득인정액은 소득과 함께 재산 환산 평가액이 더해지는데, 소득이 낮더라도 부동산 가치 상승으로 재산 환산 평가액이 더해질 경우 극심한 빈곤 상황에도 생계·의료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공시지가가 상승하는데, 2009년부터 12년 동안 기초생활급여 수급자의 재산 기준은 멈춰 있다”고 지적했다.
부양의무자 기준 탓에 실제 소득이 적음에도 생계·의료 급여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생계급여는 지난해 10월 부양의무자 기준이 대부분 폐지(부양의무자 가구 소득 연1억원, 재산 9억원 이상인 경우 제외)됐지만, 의료급여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남아있다. 강은미 의원은 “소득이 기준중위소득의 3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재산 역시 대도시 쪽방 전셋값 3000만원 수준에 불과한데, 부양의무 기준과 처분이 어려운 재산으로 인해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탈락하는 것이 복지 사각지대의 현주소”라면서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 재산가액 현실화 등 제도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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