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뿌리의 집’ 대표 김도현 목사
국외입양인을 위한 게스트하우스이자 권익옹호 단체인 사단법인 뿌리의 집이 오는 7월7일 개원 20년을 맞는다. 단체 창립 이사장이기도 한 김길자 경인여대 명예총장의 서울 종로구 청운동 사저에 자리한 뿌리의 집은 올해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김 총장 쪽 사정에 따라 무상임대 기간이 끝나 새 보금자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뿌리의 집이 그간 해온 입양인과 한국사회의 소통 역할은 계속 이어질 겁니다. 지금처럼 고국을 방문한 입양인에게 숙소를 제공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을 만들려고 합니다. 밥이나 차를 함께 나누며 대화하고, 자유롭게 만나고 헤어질 수 있는 그런 공간이죠.”
설립 이듬해인 2004년부터 뿌리의 집을 맡아온 대표 김도현 목사의 말이다.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나온 뒤 뒤늦게 신학대에 들어가 목사 안수를 받은 김 대표는 서울 새문안교회 부목사를 거쳐 1992년부터 9년 동안 스위스 국가교회 목사로 사역했다. 스위스에서 8년가량 한국계 입양인 지원 활동을 했고 이 체험 등을 바탕으로 2004년 영국 버밍엄대학에서 ‘문화간 입양과 한국의 생모들’ 주제의 석사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무렵 김 이사장의 권유를 받고 귀국해 지금껏 아내 공정애씨와 함께 입양인들을 품어온 그를 지난 18일 뿌리의 집에서 만났다.
지난 20년간 뿌리의 집에 머물다간 국외입양인은 약 5천명을 헤아린다. 대부분 가족을 찾기 위한 고국 방문이었다. “한해 한국을 찾는 국외입양인 3천명 중 약 10%가 뿌리의 집을 들러요.” 그중 얼마나 가족을 찾느냐고 묻자 그는 “약 30%”라고 답했다. “뿌리의 집에 머무는 분들은 앞서 여러 차례 한국에 왔고 가족을 찾으려는 노력도 많이 하는 편이라 가족과 만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죠.”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그는 “슬픈 일들이 그렇죠”라며 말을 이었다. “노르웨이 국적의 40대 입양인이 5년 전 고향 김해의 고시원에서 고독사했을 때 많이 슬펐어요. 가족을 찾겠다고 고국을 찾아 처음엔 뿌리의 집에 한 달 묵었고 나중엔 여기서 김해를 오가며 친부모를 수소문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어요.” 그는 “젊은 나이에 죽는 입양인들이 많다”며 “그동안 뿌리의 집이 나서서 고인들을 위한 추모회를 7~8차례 한 것 같다”고도 했다.
김 대표 외에 상근자가 5명이고 후원자는 300명가량인 뿌리의 집은 입양인과 친생모 권익 옹호를 위한 연대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사적 기관에 맡겨진 아동입양 결정을 법원이 맡도록 해 국내 아동입양 법제상 획기적 변화를 가져왔다는 평을 받는 ‘2011년 입양특례법’ 개정도 논의가 처음 시작된 곳이 뿌리의 집 회의실이었단다. “2011년 법 개정 이후 국외입양이 5분의1 수준으로 떨어졌으니 효과가 있었죠.”
그는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인 입양특례법 개정안(김성주 민주당 의원 발의) 통과에도 큰 기대감을 보였다. “아동이 원 가정과 처음 분리되는 단계에서 국가가 책임을 지고 친생부모 상담과 지원을 하고, 정부 위원회에서 입양 결정을 심의·의결한 데 이어 사후 관리까지 하도록 했죠. 국가가 판단해 입양이 불가피하다고 입증될 때만 보낼 수 있게 했어요.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채택하는 제도입니다. 아동 이익을 최우선하도록 한 유엔아동권리협약 취지에 한층 다가선 안이죠.”
국외입양인 환대시설 ‘뿌리의 집’ 20돌
2004년부터 부부 함께 운영 맡아와
“무상임대 끝나 새 보금자리 찾는 중” 1980년대 새문안교회 부목사 그만두고
스위스에서 8년간 한국계 입양인 지원
“가짜 고아호적 등 국가가 사과해야” 뿌리의 집이 앞장서 2011년 시작한 ‘싱글맘의 날’(5월10일) 행사는 5년 전부터는 정부가 받아 그날을 법정기념일 ‘한부모가족의 날’로 지정했다. 김 대표는 ‘입양되어야 하는 아동이 최소화되도록 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싱글맘의 날’ 행사를 9년 동안 이끌어오다 3년 전엔 ‘입양진실의 날’로 이름을 바꿔 입양아동 출생 기록이 훼손·인멸되는 문제 등을 다룬 국제회의를 열기도 했다. 이 회의 참석자이기도 한 피터 뮐러 변호사 등 덴마크 국적 입양인 50여명은 지난 8월 한국 정부가 국외 입양 과정에서 부모가 있는데도 가짜 고아호적을 발급하는 등 인권침해를 저질렀다며 진실화해위에 조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김 대표는 진실화해위가 지난달 입양인 34명에 대한 조사 개시를 결정한 데 이어 “추가로 입양인 330명에 대한 조사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진실위 조사가 나오면 국가는 인권훼손에 대해 입양인과 친생부모에게 사과하고 그 다음에 배·보상과 치유센터 건립 등에도 나서야죠.” 그는 국외입양을 위해 아동에게 고아호적을 발급한 것을 두고 “국가와 입양기관이 공모해 입양인이 자신의 뿌리를 알 권리를 전면 훼손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입양인 세계에서는 고아호적을 두고 ‘아이들을 팔기 위해 신분세탁을 한 것’이라고까지 말하죠. 이런 아동 출생의 진실 지우기는 사실 난민 아동이나 인신매매 아동, 용병 아동, 국내보육원 아이들 모두에게 해당합니다.” 뿌리의 집은 입양인들이 직접 엮은 <인종간 입양의 사회학:이식된 삶에 대한 당사자들의 목소리> 등 국외입양의 실상을 여러 측면에서 짚는 책도 10권 가까이 출간했다. 김 대표는 이런 출간 활동을 두고 “입양은 아름답고 귀한 것이라는 우리 사회 담론 교체를 위한 밑바닥 작업이었다”고 자평했다. “입양의 성공 담론은 찬란한 광휘를 가지고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과장된 일면의 진실입니다. 사실 입양의 본질은 입양인과 친생부모가 느끼는 상실과 이별입니다. 입양인이 잘 된 것은 입양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차별과 편견 속에서도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성장 노동을 해 성공한 거죠.”
김 대표에게 뿌리의 집은 입양인을 위한 환대 공간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입양인에게 어떤 공간일까? “(입양인을) 환대하는 능력이 아직은 부족해요. 저는 우리 사회가 입양인들의 말을 먼저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는 그들에게 입양으로 잘 자란 게 아니냐고 얘기합니다. 그렇게 그들이 내면의 이야기를 할 기회를 빼앗아버리죠. 이는 입양인에게 이중의 상처입니다. 지난 역사에서 우리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고백하고 그들과 만나는 게 진정한 환대이죠.”
재작년 보건복지부 입양 통계를 보면 입양 아동 414명 중 45%인 189명이 국외로 나갔다. 왜 국외입양은 계속될까? “지금도 미국이나 유럽에 가면 잘 사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한국 사회에는 강한 것 같아요. 사실 한류도 다르게 말하면 ‘서구의 인정’이잖아요. 우리는 아직도 서구의 인정에 배고파하는 나라입니다. 자신들에게 실익이 없으면 잘 나서지 않는 공무원들의 태도도 영향이 있죠.”
그는 ‘뿌리의 집 2기’ 체제에서도 입양인 권익옹호 활동이나 자료집 발간 등 출판 활동을 이어갈 생각이라고 했다. “이사회도 입양에 대한 이해도가 깊은 학자나 변호사를 모셔 내실을 기하려고 합니다.”
김 대표는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책임진 아내와 함께 뿌리의 집에서 거주하며 입양인들과 하루 24시간을 함께했다. 오랜 시간 입양인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동력이 뭘까? 그는 이런 질문을 몇 번 받았다며 조심스럽게 답했다. “일하는 것 다음으로 제가 좋아하는 게 신학 서적 보기입니다. 사실 교리체계 같은 기독교의 거대한 도그마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책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것이죠. 그런 책들을 보고 주일에 새문안교회 대학생회 청년들이 개척한 서울 망원동 새민족교회에서 설교를 하기도 했죠. 예수가 그 시대의 관념이나 이데올로기, 권력체계에 맞서 어떻게 고통받는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도록 해방으로 이끌었는지, 다른 말로 예수의 사회정치적 외연을 보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죠. 제 일에 확신도 하게 되었고요. 제가 이 자리에 계속 있게 하는 가장 큰 동력입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김 대표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2004년부터 부부 함께 운영 맡아와
“무상임대 끝나 새 보금자리 찾는 중” 1980년대 새문안교회 부목사 그만두고
스위스에서 8년간 한국계 입양인 지원
“가짜 고아호적 등 국가가 사과해야” 뿌리의 집이 앞장서 2011년 시작한 ‘싱글맘의 날’(5월10일) 행사는 5년 전부터는 정부가 받아 그날을 법정기념일 ‘한부모가족의 날’로 지정했다. 김 대표는 ‘입양되어야 하는 아동이 최소화되도록 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싱글맘의 날’ 행사를 9년 동안 이끌어오다 3년 전엔 ‘입양진실의 날’로 이름을 바꿔 입양아동 출생 기록이 훼손·인멸되는 문제 등을 다룬 국제회의를 열기도 했다. 이 회의 참석자이기도 한 피터 뮐러 변호사 등 덴마크 국적 입양인 50여명은 지난 8월 한국 정부가 국외 입양 과정에서 부모가 있는데도 가짜 고아호적을 발급하는 등 인권침해를 저질렀다며 진실화해위에 조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김 대표는 진실화해위가 지난달 입양인 34명에 대한 조사 개시를 결정한 데 이어 “추가로 입양인 330명에 대한 조사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진실위 조사가 나오면 국가는 인권훼손에 대해 입양인과 친생부모에게 사과하고 그 다음에 배·보상과 치유센터 건립 등에도 나서야죠.” 그는 국외입양을 위해 아동에게 고아호적을 발급한 것을 두고 “국가와 입양기관이 공모해 입양인이 자신의 뿌리를 알 권리를 전면 훼손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입양인 세계에서는 고아호적을 두고 ‘아이들을 팔기 위해 신분세탁을 한 것’이라고까지 말하죠. 이런 아동 출생의 진실 지우기는 사실 난민 아동이나 인신매매 아동, 용병 아동, 국내보육원 아이들 모두에게 해당합니다.” 뿌리의 집은 입양인들이 직접 엮은 <인종간 입양의 사회학:이식된 삶에 대한 당사자들의 목소리> 등 국외입양의 실상을 여러 측면에서 짚는 책도 10권 가까이 출간했다. 김 대표는 이런 출간 활동을 두고 “입양은 아름답고 귀한 것이라는 우리 사회 담론 교체를 위한 밑바닥 작업이었다”고 자평했다. “입양의 성공 담론은 찬란한 광휘를 가지고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과장된 일면의 진실입니다. 사실 입양의 본질은 입양인과 친생부모가 느끼는 상실과 이별입니다. 입양인이 잘 된 것은 입양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차별과 편견 속에서도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성장 노동을 해 성공한 거죠.”
뿌리의 집이 2016년에 입양인과 함께한 추석잔치. 김도현 대표 제공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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